옥상에서 만나요
63빌딩과 남산타워와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멋진 삼각형의 꼭짓점에 서 있어도 전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너라면 알겠지. 너라면 가장 잘 알 거야. 나는 그 회사 옥상에서, 다리 사이로 뜨거운 에어컨 실외기 바람을 느끼며 오래오래 앉아 있었어. 옥상에 벤치를 놔주는 인간적인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빗물 자국으로 더러워진 실외기를 의자 삼아, 몰래 가지고 올라온 비싸고 달달한 디저트를 먹었지. 초코 바나나 타르트, 블루베리 슈크림, 꽃처럼 피어나는 다양한 이름의 설탕을. 하지만 설탕조차도 내가 점프를 생각하는 걸 멈추게 할 수 없었어. 달고 신 것으로 녹일 수 없는 나쁜 생각들이 있잖아.
원, 투, 쓰리, 포, 점프. 사선으로 스텝을 밟아 가로대를 뛰어넘는 높이뛰기 선수처럼 그 옥상 난간을 뛰어넘고 싶었어.
아니면 양손으로 난간을 무지개색 철봉처럼 쥐고 스핀, 스핀 돌아 뛰어내리기를 하고 싶었지. 배꼽 밑에서 단단한 강철이 느껴진 다음 시원한 활강일 거라고.
당장 등을 떠미는 강렬한 욕구는 아니었어. 그보다 언제나 잔잔한 듯 느껴지지만 천천히 작은 눈금을 타고 오르는 위험 같은 것이었지. 방 안에 쌓이는 유해가스나 매년 높아지는 해수면처럼. 충동도 없이 무심하게 언젠가는 정말 점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불안마저도 둔하고 먼 것이었어. 대개의 날엔 난간에 다가서는 대신, 주변 다른 빌딩의 옥상에 올라오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어. 마치 바다 한가운데에서 마주친 선원들처럼 손을 흔들고 싶은 마음이었지. 하지만 그 멀리서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 사람들은 부담스러워하며 얼른 내려가곤 했어.
지금 나는 너에게 손을 흔들고 있어.
“너 나랑 내 러시아 여자친구랑 한번 안 만날래?”
최 피디가 손등으로 내 뺨을 쓰다듬으며 되도 않는 쓰리섬을 제안했을 때, 나는 화도 내지 못했어. 그런 수모를 당하려고 졸업과 취업의 혹독함을 견딘 건 아니었는데. 최 피디는 아무나 피디가 될 때 피디가 되어서는, 똑똑한 후배들한테 밀리는 것을 인정 못하고 우리 같은 을한테나 진상을 부리는 인간이었어. 케이블에서 한창 피디들 데려갈 때 쏙 빼놓고 갔으니 할 말 다했지.
내가 한숨을 쉬며 화제를 바꾸려 할 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수가 고개를 돌리는 걸 보았어. 많이도 아니고 7.5도쯤. 나는 왜 그 7.5도를 감지하고 마는 것일까? 점점 나빠져가는 간수치가 그대로 드러나는 선배의 얼굴이, 병적으로 나쁜 체취가 걱정되어서 7.5도의 비겁함은 눈감아주기로 했어. 선배가 간경화라도 걸리면 선배의 와이프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두 번인가 마주쳤던 선배의 와이프까지 걱정하며 진창 속에 빠져 있었어.
유명 스포츠신문의 광고사업부였어. 혹독했던 취업난 속에서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회사에 다닌다는 건 언뜻 괜찮아 보였을지도 몰라. 친구들은 나더러 웬만하면 견디라고 그랬지. 그런데 한 회사 안에서도 부서별로 격차가 크잖아. 수상쩍은 물건을 파는 수상쩍은 회사 임원들 접대가 끝도 없이 이어졌어. 대체 왜 그런 자리에 날 뽑았는지…… 아마 분명 어떤 할당량 때문이었을 거야. 인사부가 잠깐 미쳤던 거였거나. 내가 언제 그만두는지를 두고 내기가 있었다는 걸 입사 반년 후에 알게 됐어. 누군가 농담처럼 말해줬는데 농담이 아니었더라고.
사무실에서 일한 시간보다 룸살롱에서 접대한 시간이 훨씬 길었던 것 같아. 망할 접대 문화…… 나는 네로 황제처럼 온 강남의 룸살롱을 불태우고 싶었어. 지금도 누가 적당한 도구만 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여튼 나도, 부서 사람들도, 회사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었어. 우리가 더러운 관행이지만 아무도 바꿀 의지가 없어 계속되는 일을 하며 돈만 까먹을 뿐, 생산적인 일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는 걸. 업계와 회사의 수챗구멍쯤으로 여겨지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상황이란 껄쩍지근하지. 만약 광고사업부 사원이 아니라, 기자였다면 상황이 나았을까? 기자들 위주로 돌아가는 회사니까? 이제 와선 그것조차 확실할 수 없어.
“이직은 어때? 어디 옮겨 간 선배한테 너 좀 불러달라고 그래.”
“그만둬버려. 굶어죽기야 하겠냐? 이제 경력이 있으니까 또 금방 취직될 거야.”
주변 사람들의 그런 말에 설득될 때도 있었지만, 나는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했어. 서른개쯤 넣으면 하나쯤 다음 단계로 통과되는 이력서를 가지고 두려움이 없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게다가 혼자가 아니었어. 아빠는 혈액 투석을 매주 세 번 받아야 하고, 아빠를 돌보는 엄마는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고생 중이고, 그런 부모님과 함께 사는 남동생은 아무리 봐도 우울증인 거 같았어. 나는 가족 중에 유일한 경제인이었으니, 의료보험이고 뭐고 다 나한테 달렸던 상황이었지. 이직이고 재취직이고 엄두가 안 났다고.
언니들이 아니었으면 난 정말 뛰어내리고 말았을 거야. 경리부의 맏언니 명희 언니, 편집기자인 소연 언니, 제작물류부의 예진 언니. 세 사람은 마치 운명의 마녀들처럼, 다정하게 머리를 안쪽으로 기울이고 엉킨 실 같은 매일매일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함께 고민해주었어. 내가 처음 머리카락을 짧게 치고 왔을 때 놀라서 입을 벌렸다 다시 입술을 깨문 언니는 셋 중에 누구였더라.
입사 때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던 머리를, 스포츠머리보다 조금 길게 깎아버렸어. 어느날 계획 없이 그래버렸는데, 포마드를 바르니까 제법 어울리긴 했어. 비명을 지르고 싶은데 지를 수 없으니 머리를 잘랐던 것 같아. 그런 머리에 칼 같은 바지 정장을 입고, 나도 너희와 다르지 않으니 온당히 대해달라고 몸부림치며 요구했던 거지. 내가 예상치 못했던 부분은 어둠속에서 내 씰루엣이 남자처럼 보이니 더 브레이크 없이 행동하는 인간들이 늘게 된 거였어. 왜 잘랐느냐고 거슬린다며 시비 거는 인간들도 늘었고 말야. 옥상에 서 있으면 두피에 스산한 바람이 느껴졌어. 모든 게 점점 나빠지고 있었고, 자기방어기제 같은 무감각에 빠져들었던 건지 그 즈음에 대한 기억은 불연속적이야. 더러운 이미지들만 스틸숏처럼 남아 있어. 회사 언니들과 나는 한달에 한번씩, 회사에 남아도는 영화표나 공연표로 외출을 했어. 그런 날에만 잠깐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 우리는 입안의 쓴맛을 누그러뜨려줄 기름진 음식을 먹었지. 울다가 웃다가 욕하다가 탈진한 채 늦은 밤 귀가하면 내가 사람 같았어.
그러므로 친애하는 세 언니가 두세달 간격으로 차례차례 결혼을 해버리자, 내가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한 것이었어. 처음 명희 언니가 90년대 풍의 가죽점퍼를 입은, 어딜 봐도 난 형사요, 온몸에 쓰여 있는 사람을 데리고 왔을 때는 떨떠름했지. 소연 언니가 400을 친다는 준 프로급 당구돌이를 데리고 왔을 때는 뜨악했고, 마지막으로 예진 언니가 전통 악기를 만든다는 장구돌이를 데리고 왔을 땐 대체 이게 무슨 사태인가 싶었던 거야. 앞의 둘은 그렇다 쳐도, 마지막은 대체 어디서 만났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어.
“결혼해서 막 좋은 건 아닌데…… 어쨌든 집에서 훌라후프는 돌아가.”
“훌라후프요?”
“결혼 전에 어릴 때 생각나서 훌라후프를 샀다가, 나 막 울었잖아. 원룸에서 아무리 자리를 옮겨봐도 훌라후프가 안 돌아가는 거야. 싸구려 옷걸이니 부직포 서랍이니 온통 걸려서…… 이러니저러니 해도 둘이 합쳐 살면 집에서 훌라후프 정도는 돌아가니까, 숨이 쉬어지더라고.”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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