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돌 문턱
트라클의 잘츠부르크 / 인스브루크
"교회에서 왕관들이 빛을 뿜고……"
아름다운 도시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고 자란 트라클은,
세기말을 온몸으로 앓으며 고해의 수정알과도 같은 영롱한 시편들을 남겼다.
잠시라도 독일에 머무르게 될 때면 쉬지 않고 읽고 쓴다. 일터를 떠나 나만의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독일을 떠나기 전날 하루를 비워본다. 한 시인의 묘지에 다녀오기 위해서다. 오랜 시간 사랑해온 시인인 만큼 그가 살았던 곳을 다시 들러보고 싶은 마음이 늘 앞섰다. 하나 이 짧은 여정을 바로 결정하게 된 것은, 어느 시인이 그 묘지를 찾아갔다는 글을 읽고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몇 년 뒤, 홀로코스트의 와중 나이 스물셋에 이미 세상의 모든 것을 잃고 참혹한 맨손으로 머물 곳을 찾아 헤매던 유대인 시인 파울 첼란이, 오스트리아의 한 조그만 마을에 있는 옛 독일 시인의 무덤을 찾아 꽃을 놓고 갔다는 것이다. 첼란은 고통 어린 생애를 살다가 센 강에 투신하기까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나라의 언어이며 살인자의 언어였던 독일어로 시를 남겼다. 그 언어가 모국어였고 ‘문학어’였던 것이다. 그 험악한 일들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어머니와 함께 독일 문인들의 글을 읽으며 꽃과 나무를 사랑하며 자랐다. 이제 막 홀로코스트를 헤쳐나온, 아직 시인이 될지 무엇이 될지 물론 알 수 없었던, 스스로 세상의 한 점 티끌 같았을 스물일곱 청년이, 자신과 같은 나이에 불행했던 삶을 마감한 옛 시인의 외진 무덤을 찾아 그 위에 버드나무로 엮은 꽃다발을 놓던 순간을 떠올린다. 더없이 불행했던 두 생애가 겹쳐진다.
트라클의 집으로 들어가는 건물의 입구.
육신의 한줌 잔재 위에 한순간이나마 그런 뜻 깊은 꽃다발이 놓였던 시인 게오르크 트라클은, 세상에 ‘시인’이 누구냐고 누가 묻기라도 한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오를 만한 사람 가운데 하나다. 주옥같은 시를 남긴 그의 짧은 생애는 온갖 파국과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다. 유복한 사업가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시민적인 삶에는 일찍부터 적응하지 못했다. 좋은 학교에 보내졌으나 유급 끝에 퇴학당했고, 약제사 일을 배워 생계를 삼으라고 약국에 보냈더니 약물중독자가 됐다. 자원해서 간 군대에서는 전혀 견디지 못했고, 관청에 취직을 시켜놓아도 역시 며칠 견디지 못했다. 약물과 과도한 음주, 누이동생과의 근친상간……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징집당해, 약제사 경력 덕분에 폴란드 크라카우의 야전병원에 위생병으로 배치되었다가 죽었다. 전사가 아니라 자살이었다. 부상병들의 고통을 보는 것이 견딜 수 없어서였다. 외적으로 보면 파행 그 자체인 그의 생애는, 결국 세계대전이란 파국으로 이어진 세기말, 그 한 시대의 문제들을 온몸으로 앓은 듯 보인다. 짧은 생애동안 그는 두 편의 희곡 습작을 제외하곤 얇은 시집 한 권을 남겼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가 남긴 이백 편 남짓의 시편들은 하나같이 모두 절창이다. 부패와 사멸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가운데 온통 가을이고 겨울인 그의 시들. 부패 직전의 과일 같은 향기와 만추 같은 아름다운 색깔로 가득한 가운데 더없이 투명한 영혼이 내비쳐온다. 그의 시는 영롱한 구슬 같다. 고해의 수정알인 양.
「어느 겨울 저녁」은 내가 각별히 좋아하는 시이다. 시인 첼란이 좋아했고, 철학자 하이데거가 좋아했으며(하이데거는 트라클에 관해서 두 편의 논문을 썼는데, 그중 한 편인 「언어」는 바로 이 시의 해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이기도 하다.
창 유리에 눈송이 뚝뚝 떨어지고
저녁 종 길게 울리는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는 저녁상이 차려져 있고
살림은 넉넉하다.
떠도는 어떤 사람, 문으로 다가온다,
어두운 오솔길들을 지나서.
황금빛으로 찬연히 꽃피고 있다, 은총의 나무
대지의 써늘한 수액에서 솟아.
나그네는 가만히 들어선다.
고통이 문턱을 돌로 굳혀놓았었다.
거기 빛을 뿜는다, 맑은 밝음 속에서
식탁 위에, 빵과 포도주가.
눈이 내리는 겨울 저녁 풍경은 밖에서는 만종이 울리고, 집안에는 식탁이 차려진 평화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집밖에 나그네가 나타난다. 그의 헤맴이 길었던 것은 “어두운 오솔길들”이라는 복수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러고는 아마도 실내에서 비쳐나온 빛을 받고 서 있는 한 그루 나무가 그려져 있다. 눈을 맞고 선 추운 겨울나무가 따뜻한 집안으로 비쳐나오는 불빛을 받기에 “은총의 나무”로 보인다는 건, 나그네의 헤맴이 어떠한 심신의 방황이었는지, 또 나그네는 은총으로부터 얼마나 먼 곳에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그 나무가 그저 축복받은 나무로, 선망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묘사에는 은총의 나무 역시 차가운 대지에서 뿌리박고 자라났음을 들여다보는 통찰이 담겨 있다. 서늘하다.
나그네는 마침내 “가만히 들어선다”. 들어서는 것은 쉽지 않다. “고통이 문턱을 돌로 굳혀놓았었다.” 이 마지막 연 둘째 행만이 과거 시제다. 나그네가 문턱을 넘어서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언젠가 그것에 사로잡혀 어쩌면 이 문턱을 넘어나갔을 큰 고통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다만 문턱을 돌로 굳힌 것이 고통이었노라 말한다. 아마도 애초에 돌이었을 문턱에 실린 이 큰 고통의 집약, 압도적이다. 그 넘지 못하는 문턱 ‘너머’ 무언가가 반짝이기 시작한다, 빛을 뿜는다, 티 없이 “맑은 밝음 속에서”. 무엇일까 하는 긴장감을 준다. 행을 넘어가서도 다시 “식탁 위에”가 먼저 나온다. 맨 마지막, 문장의 끝, 시의 맨 끝에서야 나오는 주어 “빵”. 거기에 모든 무게가 실려 있다. 빵이 반짝이기 시작한다erglänzen는 묘사는 바라보는 사람의 배고픔을 더할 나위 없이 간절히 표현해낸다. 그런데 그토록 간절한 것이 빵에 그치지 않고 “빵과 포도주”라 한다. 나그네의 허기가 육신의 것만이 아닌 것이다. 빵과 포도주란 분명한 기독교적 구원의 이미지이므로.
바로 이런 문턱, 이런 절체절명의 문턱이 아니라 하더라도, 누군들 문턱에 서보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고통 어린 문턱 앞에 서보지 않았겠는가. 헤맴이 클수록 그 너머 빛나는 것이 내뿜는 빛 또한 눈부시다. 한 그루 나무에서 지상의 고통과 하늘의 은총이 만나고 있고, 나와 삶을, 혹은 나의 삶과 그 너머를 가르는 이 고통의 문턱이, 또는 문턱에서의 고통이 다시금 만남의 집약이 되고 있다. 문턱은 가르기도 하지만, 또한 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므로, 그리고 그 고통의 지점에서 세상의 아픈 이들이 만나므로. 짧은 생애를 살다간 시인 게오르크 트라클 자신 또한 그런 나그네였다.
‘소금성’이라는 이름의 잘츠부르크. 모차르트의 도시이고, 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그 아름다움이 많이 알려진 덕분에 관광객들이 많다. 배낭여행 하는 학생들의 루트이기도 하다. 내게는 시인 트라클의 도시인 이곳은 그의 시처럼 아름다운 색채로 채워져 있다. 석회가 섞여 흰빛이 도는 연초록 강물이 먼저 손님들을 맞는다. 흰빛이 가득한 도시. 분홍, 노랑, 파랑의 건물들도 석횟가루를, 혹은 이름 그대로 소금가루를 조금씩 뿌려놓은 듯, 한 톤씩 낮추어진 색깔이 칠해져 있다. 그 가운데 위로 솟은 녹슨 청동의, 오래된 양파 모양의 교회 탑들은 흐르는 강물 같은 선명한 연초록이다. 그 탑을 머리에 인 하얀 대리석으로 된 바로크 교회의 눈부신 흰빛 전면에는, 천사들이 받쳐들고 있는 왕관 하나만이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하얀 대리석 건물에서 이 유일한 색조, 눈부신 황금의 한 점이 뿜어내는 힘은 압도적이다. 오랫동안 나는 “맑은 밝음 속에서” 빛나는 왕관과 첨탑을 쳐다보았다. 처음 갔을 때도, 그리고 다시 가서도. 트라클의 시 「아름다운 도시」의 한 구절 “교회에서 왕관들이 빛을 뿜고”는 이렇게 교회 바깥에서까지 빛을 내며 걸려 있는 관이 없었더라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구원이 구체적 형상으로 거기 있었다. 낮은 곳에서 쳐다보는 이들을 내려다보면서.
조금 걸어가면 화단처럼 장식된 아름다운 작은 묘원이 있다. 후문 입구 벽의 대리석 석판 위에 트라클의 시가 새겨져 있는데, 그 시 「성 베드로 묘원」은 소박한 교회 하나가 “기도처럼 서 있는” 묘원의 모습을 단어 하나도 더하거나 뺄 수 없을 만큼 정확하게, 깊고도 아름다운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시어의 운율도 유난히 아름다워 몇 번이고 나직이 소리내어 읊조리게 되고, 그러다보면 저절로 독일어 ‘시학’이 되는 그런 글이다. 언젠가 아득한 시절 저 석판 앞에 서서 어린 딸에게 독일 시의 운율을 가르쳐주며 그 얼굴에 떠오르는 경이를 바라보던 행복의 한순간이 눈앞을 스쳐간다. “사방에는 바위의 외로움/ 죽음의 창백한 꽃들이 몸을 떨고 있다/ 어둠 속에서 슬퍼하고 있는 무덤들 위에서─/ 하지만 이 슬픔에는 아픔은 없다……”
트라클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소금가루를 살짝 뿌린 듯한 그 아름다운 색조의 건물들이 이어진 좁은 골목길들은 동화 속처럼 아름답다. 골목길 안에 사각형의 안뜰을 에워싼 한 회랑형의 사오층 건물이 있다. 왼쪽 이층 끝집이 트라클의 생가이다. 마당에는 아주 오래된 우물도 하나 있다. 왼쪽 편에 있는 계단을 올라 얼른 이층으로 향했다. 아치식 기둥이 늘어선 난간들이 아름답다. 생가는 닫혀 있다. 오랫동안 그 집 앞 낡은 돌계단에 앉아서 아름다운 안뜰과 그의 집을 바라보았다. 그 오랜 돌계단이 ‘고통으로 굳어진 문턱’ 같기도 했으리라, 더 이상 그 안에 속하지 않는 자에게는.
길에는 인파가 넘치는데 여기는 아무도 없다. 내가 유일한 관람객이다. 그래도 혼자 기다렸던 나를 위해, 안내인은 트라클의 생애를 담은 영화도 틀어주고 안내도 해준다. 자녀들보다 골동품 수집의 취미 쪽이 훨씬 더 중요했다는 트라클의 어머니가 모았을 아름다운 가구와 집기 들이 잠시 눈을 끌지만, 주로 유리장에 진열된 트라클의 편지와 엽서 들을 본다. 편지 글귀들은 직설적이어서 삶의 고통이 절실하게 배어 있다. 트라클 관련 책들이 꽂힌 책장도 본다. 한국어 번역본 『귀향자의 노래』(손재준 옮김)도 있어 매우 반갑다. 그러나 무엇보다 창밖을 보니, 바로 강 너머에 산이 보인다. 카푸치너베르크. 이 집에서 트라클은 태어났고 또한 여러 차례 이사했다.
1912년에 나온 시집 영인본과 엽서 한 장을 사들고 생가를 나섰다. 시내에서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에 트라클이 견습 약제사로 일하던 약국이 있다. 그 약국을 지나 도착한 역에서 인스브루크행 기차를 탄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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