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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는 앞을 볼 수 없어요.
내가 태어나기 오래전 어느 날, 할머니는 열이 나고 머리가 매우 아프셨대요.
그 후 할머니 눈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깜깜한 눈이 되었다고 했어요.
‘나는 세상이 환하게 다 보이는데, 나보고 깜깜한 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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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이렇게 좋으니 곧 꽃이 많이 피겠구나.”
“맞아 할머니, 꽃들이 필락 말락 하고 있어.”
할머니와 나는 마당에서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함께 앉았어요.
“정이야, 달력을 뒤집어 보렴.”
나는 달력을 뒤집어서 하얀 면이 보이도록 활짝 펼쳤어요.
“어때? 커다란 공책 같지 않니?”
“우아, 진짜 커다란 공책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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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글자 쓰기를 한 후 할머니는 내 손을 할머니 손 위에 올려놓으라고 하셨어요.
“옆으로 쭉, 아래로 쭉, 기역.” 할머니를 따라 말했어요.
할머니가 글자를 쓰니 내 손이 할머니 손과 함께 춤을 추는 것 같았어요.
다음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할머니와 나는 달력과 초록색 색연필을 가지고 마당으로 나갔어요.
“정이야, 기쁨이가 어떤 소리를 내지?”
“멍멍!”
“그렇지. 강아지가 ‘멍멍’ 하고 소리를 내는 것처럼 글자들도 모두 제각기 다른 소리를 낸단다.”
‘멍멍 소리에 기쁨이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줄 알고 꼬리치며 짖었어요. “멍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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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매일와슈퍼’가 보였어요.
‘매’ ‘일’ ‘와’ ‘슈’ ‘퍼’
먼저 글자를 하나씩 읽고, 손바닥에도 써 보았어요.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할머니 손바닥에 ‘매’ ‘일’ ‘와’ ‘슈’ ‘퍼’라고 적었어요.
“정이가 오늘은 슈퍼 앞을 지나왔구나?” 할머니가 미소 지으셨어요.
나는 할머니에게 ‘매일와슈퍼’ 앞에 산처럼 높게 쌓여 있던 딸기 이야기도 해 드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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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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