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인자仁者의 수壽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히 제자리에 머문다. 지혜로운 사람은 삶을 즐기며 어진 사람은 수를 누린다.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 『논어』, 「옹야」 -
논어에는 인자仁者와 지자知者가 상대되는 말로 쓰이는 경우가 종종 나온다.
먼저 「이인」편에는
“지자는 인을 이롭게 여기고 인자는 인을 편안하게 여긴다”子曰 不仁者 不可以久處約 不可以長處樂 仁者 安仁 知者 利仁
고 했다. 인은 말할 것도 없이 공자가 가장 중시했던 가치다. 그런데 그런 인을 지자는 이롭게 여긴다利仁고 한 것이다. 이인利仁이란 인을 베푸는 것이 남에게 이로울 뿐 아니라 나에게도 이롭다고 여기는 거다. 다시 말해 이롭지 않으면 인을 베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자는 지자와 달라서 인을 그저 편안하게 여길 뿐 애초에 이·불리를 따지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인자가 지자 위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헌문」편에서도
“인자는 근심하지 않고 지자는 의심하지 않고 용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仁者不憂 知者不惑 勇者不懼
고 하여 인·지·용의 순서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자한」편에서는 인자와 지자의 순서를 바꾸어서
“지자는 의심하지 않고 인자는 근심하지 않고 용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子曰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고 한 예를 보면 지·인·용에 따로 서열을 매기지는 않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훌륭한 덕을 가진 자는 반드시 훌륭한 말을 하지만 훌륭한 말을 하는 자가 반드시 훌륭한 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자는 반드시 용기를 가지고 있지만 용기 있는 자가 반드시 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子曰 有德者 必有言 有言者 不必有德 仁者必有勇 勇者不必有仁
라고 한 대목을 보면 대체로 인을 용보다 우선하는 가치로 여겼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논어』 전편에 걸쳐 인을 강조한 사례가 108차례이고 지를 강조한 경우는 10여 차례에 지나지 않는 걸로 보아 인을 지와 용에 앞서는 가치로 여겼음이 틀림없다. 무엇보다 안인安仁은 인을 편안한 거처安宅로 여긴다는 뜻이고 보면 인을 이롭게 여겨서 추구하는 이인利仁과는 격이 다르다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옹야」편에는 지자와 인자의 차이점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은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히 제자리에 머문다. 지혜로운 사람은 삶을 즐기며 어진 사람은 수를 누린다.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물과 산을 비유로 들어 지자와 인자의 차이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다지 어려운 비유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읽으면 고개가 끄덕여질 만한데,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맨 마지막의 인자수仁者壽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 이 무슨 말인가?
정현, 하안, 주희, 유보남 등등....한다 하는 주석가들의 의견을 찾아보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답답해서 후세의 문집을 뒤져보니 “인자는 마음에 미움이 없기 때문에 오랜 산다, 인자는 낙천적이라 근심이 없기 때문에 오래 산다, 인자는 마음이 천리에 부합하기 때문에 오래 산다.” 는 따위의 주장이 보이는데 말이 안 된다.
공자가 스스로 말했듯이 인자도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 인자야말로 사람을 제대로 미워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또 맹자는 사람은 모름지기 “안락에 죽고 우환에서 산다死於安樂 生於憂患”고 하면서 유자가 가져야 할 우환의식을 강조했으니 인자에게 근심이 없다는 것도 꼭 맞는 말은 아니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지는 않더라도 세상을 근심하는 것은 유자의 운명이라 할 것이다. 마음이 천리에 부합하기 때문에 오래 산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천리가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힘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게다가 공문에서 석 달 동안 인을 어기지 않는다고 칭찬받았던 안연은 가난하게 살다가 일찍 죽었고, 역시 덕행으로 이름 높았던 염백우도 나병으로 단명했다. 오히려 날마다 도적질하면서 사람 죽이기를 일삼았던 도척은 장수했다. 또 공자가 한 말은 아니지만 자하가 일찍이 사생유명子夏曰 商聞之矣 死生有命 富貴在天 「안연」이라 한 것처럼, 요수夭壽는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것이다.
오죽하면 어진 사람이 꼭 오래 사는 것도 아니더라仁者未必壽라는 말, 누가 어진 사람이 오래 산다 하였는가誰云仁者壽, 孰言仁者壽, 어진 사람 오래 산다는 말을 다시는 하지 말라莫言仁者壽는 따위의 원망 섞인 시구가 나왔겠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공자는 어진 사람이 오래 산다고 했을까? 줄잡아 3년 정도는 이 구절을 가지고 고민했는데, 어느 날 『노자』를 읽다가 이런 대목과 마주쳤다.
죽어도 잊혀 지지 않는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이다死而不亡者壽 [『노자』제33장]
이 구절을 보는 순간 바로 인자수仁者壽의 참뜻을 알았다.
아하, 실제로 죽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죽어서도 잊혀 지지 않는 것을 수壽라 했구나!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잊혀 지지 않는 건가.
『대학』에,
“문채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구나有斐君子 終不可諠兮.”하고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뒤에 ‘이 구절은 성덕과 지선(성덕과 지선은 모두 임금을 지칭)을 백성들이 잊지 못함을 말한 것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이라 했다.
그럼 여기의 군자는 누구인가?
『시경』 「烈文」편에,
“드러나지 않는 커다란 덕을 모든 임금들이 본받네. 아! 전왕을 잊을 수 없구나不顯維德 百辟其刑之 於乎前王不忘.” 했다.
다 주나라 문왕文王이야기다. 그럼 문왕이 뭘 어떻게 했기에 백성들이 잊지 못하는가?
역시 『대학』에,
“거룩한 문왕이시여! 아! 끊임없이 덕을 밝혀서 삼가 머무셨도다. 임금人君이 되어서는 인仁에 머물고, 신하가 되어서는 경敬에 머물고, 자식이 되어서는 효孝에 머물고, 어버이가 되어서는 자慈에 머물고, 사람들과 사귈 때는 신信에 머물렀다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爲人君 止於仁 爲人臣 止於敬 爲人子 止於孝 爲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고 했다.
이 중 문왕이 백성들에게 잊혀 지지 않는 까닭은 ‘인군이 되어서 인仁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문왕은 죽고 난 뒤에도 백성들에게 잊혀 지지 않는 ‘수壽’를 누렸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자수仁者壽가 완전하게 이해된다. 그러면 그렇지 공자가 어진 사람이 육체적으로 오래 산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했을 리가 있나. 뜻도 모르고 이런 걸 갖고 공자를 비판한 왕충은 헛발질했다.
물론 『중용』에는
대덕은 반드시 지위를 얻고 천록을 얻고 이름을 얻고 수를 얻는다大德 必得其位 必得其祿 必得其名 必得其壽고 했는데, 여기서 대덕을 가진 사람은 순임금을 가리킨다. 그런데 순임금은 실제로 110세를 살았다고 한다. 문왕 또한 98세를 살았다고 하니 실제로도 수壽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간혹 어진 사람이 육체적으로 오래 산 적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 인자는 왜 산을 좋아하는가? 나도 산 좋아하는데 그럼 나도 인자인가? 아니다. 이건 비유일 뿐이다. 비유의 뜻은 이렇다.
산은 높고 큰 사물高大之物이자 무거워서 옮길 수 없는 존재厚重不遷之物이다. 그래서 고전에서는 산을 큰 덕德을 비유할 때 쓴다. 예컨대 『주역』의 겸謙☷☶괘는 산이 땅 속에 있다. 그래서 겸손한 덕을 상징한다.
게다가 산이야말로 오래 사는 존재다. 고려말 조선초의 유학자 이색에 의하면 십장생十長生의 두 번째 서열이 산山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산이 옮겨가지 않는다는 것, 또 옮길 수 없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고요히 한 곳에 머물러 있다. 더 이상 옮겨갈 선善이 없을 만큼 최선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런 덕을 지닌 인자仁者는 고요히 머물러仁者靜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 지자는 아직 옮겨가야 할 곳이 많다. 그 때문에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래서 지자를 유동적인 성질을 지닌 물水에 비유하고 동적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들은 이야기이지만 이 나라 대통령 관저의 정문 이름이 인수문仁壽門이라고 한다. 이름 하나는 잘 지었다. 문 이름에 걸맞게 부디 이 나라 통치자 중에 잊혀 지지 않고 수壽를 누리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
23. 군자는 가난을 걱정하지 않는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도를 추구하지 먹을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먹고 살기 위해 밭을 갈더라도 굶주리는 수가 있고 벼슬하지 않고 배우더라도 그 안에 녹봉을 받을 길이 있다. 군자는 도를 걱정하지 가난을 걱정하지 않는다.
子曰 君子謀道 不謀食 耕也 餒在其中矣 學也 祿在其中矣 君子憂道不憂貧
- 『논어』, 「위령공」 -
인간은 누구나 풍요로운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근대사회가 도래하기 전까지 인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빈곤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먹고 사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문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삶의 지침으로 받아들였던 동아시아 문명권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백성들은 먹을 것으로 하늘로 여긴다民以食爲天’거나 ‘농사가 천하에서 가장 중요한 일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표현은 때로 유학이 추구하는 가치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늘 우위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절박함의 표출이다. 이는 백성들을 널리 구제하는 것이 성인의 충분조건이라는 공자의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계에 자본주의가 등장한 이래 적어도 서구를 비롯하여 근대를 이룬 몇몇 나라에서 인류는 더 이상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막대한 물질적 성취를 이루었다. 자본주의가 이룩한 유례없는 풍요는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구축한 것으로 개인의 사적인 이익 추구와 부의 축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서구 근대의 자본주의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구인들의 삶을 지배해 왔던 기독교는 본래 “부자는 천국에 가기 어렵다.”고 한 나자렛 예수의 산상수훈 이래 부의 축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신교의 교리를 바탕으로 부의 축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면서 서구사회는 시장경제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새로운 논리를 세웠다. 자본주의가 축적한 막대한 부의 배경에는 사적 이익 추구의 정당성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신교의 교리가 있었다는 점은 막스 베버 이후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이 동의하는 기본적인 관점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유학의 경우는 개인의 사적 이익 추구나 부의 축적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이론적 기초를 찾기 어렵다. 한 때 유교를 수용하였던 동아시아의 몇몇 국가가 이룬 경제성장을 두고 유교의 근검절약이나 높은 교육열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고 유교자본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유학과 시장의 만남을 주선하는 견해가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신교자본주의라는 유사한 논리에 기대어 꿰어 맞춘 결과론이라는 혐의를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유학의 본질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상업적 이익의 추구는 유학에서는 늘 사리사욕으로 비판받았으며 군자가 잠시도 마음에 두어서는 안 될 도덕적 금기였다. 때문에 유학과 시장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것처럼 보인다. 시장은 이익을 추구하는 곳이고 유학은 이익의 추구를 부정시해 왔다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유학의 담론 안에서 생산을 증진시키는 방안이나 부의 축적을 정당시하는 주장을 찾으려 한다면 할 이야기가 많지 않다. 하지만 경제란 생산뿐 아니라 분배라는 차원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굳이 J. S. 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합의하느냐에 따라 분배방식은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와 맹자가 다 같이 강조한 “이로움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見利思義, 見得思義.”는 말은 정의로운 부의 축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정의로운 분배와 공정한 거래를 촉구하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아울러 유학과 경제의 관계를 가장 절실하게 고민한 학문적 노력은 실학에서 찾을 수 있다. 실학의 슬로건이라 할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實은 실용이나 실리와 쉽게 연상할 만큼 이익과 가까우며, 경세치용이나 이용후생을 중시하는 실학의 정신은 그 어느 유학보다도 경제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사구시를 실용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태도로 이해하는 것은 오해다. 실사구시의 궁극적 목표인 ‘시是’는 옮음 또는 진리에 가까운 개념으로 실용이나 실리와 상당한 거리가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배문제를 기준으로 ‘시是’를 추구한다면 공평한 분배를 이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이 풍부하다. 분배는 유학의 본령을 벗어나지 않고도 유학에 내포된 경제관념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실마리라고 할 수 있다.
공자가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더없이 강조했던 군자는 ‘도를 걱정하지 가난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憂道不憂貧’이다. 또 스스로 “이루지도 못할 부를 추구하느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從吾所好.”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게다가
부귀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지만 올바른 도리로 얻은 것이 아니면 머물지 않고, 빈천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마땅한 도리로 초래된 것이 아니더라도 떠나지 않는다.子曰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 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 得之 不去也(里仁)
고 하여 사리사욕의 추구를 거부하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공자는 스스로 부의 축적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었고 공자가 강조한 군자 또한 부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부를 부정시하는 이런 태도는 어디까지나 개인적 차원의 이야기일 뿐, 이로써 공자가 일체의 부를 모두 부정했다고 결론짓는 것은 성급하다. 오히려 공자는 제자 염구의 질문에 대답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백성들을 위한 부의 축적은 적극적으로 인정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子適衛 冉有僕 子曰 庶矣哉 冉有曰 旣庶矣 又何加焉 曰富之 曰旣富矣 又何加焉 曰敎之(子路).
논어에 따르면 공자는 군자라는 인간상을 생산물의 공정한 분배를 통해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편안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는 노하우를 가진 인물로 표현하고 있다. 이를테면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君子 喩於義 小人 喩於利(里仁).”, “군자는 이익을 함께 나누지만 소인은 이익을 독차지 한다.”, “군자는 급한 사람은 도와주고 부유한 사람을 이어주지는 않는다.”고 한 것이 모두 그런 예다. 아울러 “생산량이 적은 것을 걱정하지 말고 생산물이 고르게 분배되지 않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고 하여 사회적 문제는 생산물의 부족이 아니라 생산물의 불공정한 분배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공자는 통치자가 백성들과 함께 이익을 다투면서 부를 사적으로 축적하는 행위는 부정했지만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경제적 추구는 긍정했을 뿐만 아니라 공평한 분배를 강조함으로써 부의 재분배를 촉구하는 경제관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자공이 정치에 대해 여쭙자 공자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먹을 것을 풍족하게 하고,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하고 백성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자공이 다시 여쭈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한다면 세 가지 중에서 어떤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국방을 포기해야 한다.” 자공이 다시 여쭈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한다면 두 가지 중에서 어떤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먹을 것을 포기해야 한다. 예부터 누구든 죽을 수밖에 없지만 백성들이 믿어주지 않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 何先 曰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 何先 曰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顔淵>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바로 식량과 군대와 신뢰다. 여기서 공자는 백성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식량이 없으면 백성들이 먹고 살 수가 없고, 군대가 없으면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다. 이 두 가지가 보장되지 않는데 어떻게 백성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자신들을 먹여주지 않고 보호해주지 않는 나라의 통치자를 어떤 백성이 믿고 따를까? 당연히 이런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하지만 공자의 생각은 다르다. 통치자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고 백성들을 위해 나라를 다스린다면 백성들이 그를 믿고 부지런히 생업에 종사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 백성을 먹여 살릴 식량을 생산하는 것도 다름 아닌 백성이고, 백성들을 보호해 줄 사람도 다름 아닌 백성들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친다면 공자의 이 이야기에 담긴 속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을 것이 아니라 신뢰다. 지금의 정치는 그런 신뢰를 얻기에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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