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곧은 자를 굽은 자 위에 둔다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굽은 사람을 다스리면 백성들이 복종하고 굽은 사람을 등용하여 정직한 사람을 다스리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는다.
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 擧直錯諸枉則民服 擧枉錯諸直則民不服
굽은자枉者도 승복하는 복종의 조건
논어를 이해하는데 정직은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다. 공자가 보기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정직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공자는 정직한 사람을 곧은 사람이라 표현하고 부정직한 사람을 굽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공자가 생각한 정직과 부정직의 기준은 흔히 말하는 것처럼 진실과 거짓으로 나누어지는 기계적인 기준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공자는 정직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부정직한 사람은 버린다는 법가식의 주장을 선택했을 것이다.
「위정」편의 이 부분과 똑 같은 표현이 「안연」편에도 나오는데 「안연」편의 내용이 더 자세하다. 내용은 이렇다.
제자 번지가 공자에게 인이 무엇인지 물었다.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인愛人이라고 대답했다. 다시 번지가 지(知)가 무엇인지 묻자 공자는 사람을 아는 것이 지라고 대답했지만 이번에는 번지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공자는 다시 “정직한 사람을 등용해서 굽은 사람을 가르치면 굽은 사람을 바르게 할 수 있다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고 대답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 知라는 쉬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번지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번지도 공자의 제자였던 만큼 호학의 정신은 어느 다른 제자 못지않았다. 번지는 궁금한 걸 그냥 놔두지 않고 자하를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
“얼마 전에 선생님을 뵙고 知에 대해 여쭈었더니 선생께서 ‘정직한 사람을 등용해서 굽은 사람을 가르치면 굽은 사람을 바르게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인지요?”
자하는 이렇게 대답했다.
“참으로 훌륭한 말씀입니다. 옛날 순임금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고요를 선택하여 등용하자 불인한 사람들이 멀리 떠났고, 탕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여러 사람 가운데서 이윤을 뽑아서 등용하자 불인한 사람들이 멀리 떠나갔습니다.”
순임금의 시대나 탕임금의 시대에는 정말 자하의 말처럼 어진 사람만 남고 불인한 사람들이 멀리 떠나갔을까? 그게 아니라 그전까지 불인했던 사람들도 어진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진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면 사람들은 어질게 살기 마련이다.
주희 또한 이 대목을 두고 “사람들이 모두 교화되어 인을 실천하게 되었기 때문에 불인한 사람을 찾아볼 수 없어서 마치 멀리 떠난 것 같았음을 말한 것이니 이것이 바로 굽은 자를 바르게 펼 수 있다는 말이다言人皆化而爲仁 不見有不仁者 若其遠去爾 所謂使枉者直也”고 풀이하고 있다.
만약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고 부정직한 사람을 버린다면 정직한 사람인들 제대로 살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은 정직한 사람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만약 정직한 사람만 살고 부정직한 사람은 한 사람도 살지 못하는 사회가 있다면 그야말로 끔찍한 세상일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부정직한 사람을 가르쳐서 정직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부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부정직한 사람을 바로 잡으려면 부정직한 사람들이 말을 들을 리가 없다. 아마 “저도 굽은 주제에 누구를 바로잡으려 들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심지어 부정직한 사람이 정직한 사람을 바로 잡으려는 경우에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어지는 문장에서 계강자가 백성들에게 경과 충을 스스로 실천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공자가 “당신이 공경하는 태도로 다른 사람을 대하면 백성들도 공경할 것이고, 당신이 스스로 효와 자를 실천하면 백성들도 충성할 것이고, 뛰어난 사람을 등용하여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르치면 백성들이 스스로 경과 충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季康子 問使民敬忠以勸 如之何 子曰 臨之以壯則敬 孝慈則忠 擧善而敎不能則勸”고 대답한 말도 같은 뜻이다.
맹자는 “중도를 실천하는 훌륭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길러주며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길러준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에 뛰어난 사람이 있는 것을 즐거워 한다. 만약 중도를 실천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버리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버린다면 어질고 어질지 못한 차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직한 사람만 사는 사회, 뛰어난 사람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굽은사람, 재주없는 사람도 함께 할 수 있는 세상이 바로 공맹이 바라던 세상이었다.
공자의 통곡慟哭
권위 있는 베르그송 평전의 저자로 유명한 장켈레비치Vladimir Jankelevitch, 1903~1985는 《죽음La Mort》이라는 책에서 죽음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가 1인칭 죽음이다. 1인칭 죽음은 ‘나의 죽음’으로, 경험할 수 없는 죽음, 수수께끼 같은 죽음이다.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3인칭 죽음이다. 3인칭 죽음은 ‘그의 죽음’, 곧 나와 직접 상관이 없는 타인의 죽음이다. 그의 죽음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만 그가 맡았던 기능이나 역할을 다른 사람이 대신하면 극복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2인칭 죽음이 있다. 2인칭 죽음은 ‘너의 죽음’이다. 2인칭 죽음도 어디까지나 타인의 죽음이지만, 한쪽 팔이 잘려나간 듯이 아파하거나 망연자실하게 하는 죽음이다. 너로 지칭되는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켈레비치는 “우리는 2인칭 죽음을 겪을 때 비로소 죽음을 이해하고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했다. 그는 “죽지 않는 것은 살아 있지도 않다.”는 말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죽음의 절대성 앞에서 삶의 의미를 묻게 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공자의 태도와 닮아 있다.
공자는, 도를 듣는다면 죽음 또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지만 막상 죽음에 대해 말한 적은 거의 없다. 공자의 제자 중 죽음에 관해 질문했던 사람은 오직 자로뿐이었고 그의 질문에 공자는 흡족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래서 흔히 공자는 죽음에 관해 말하지 않았으며 삶에 집중하는 태도를 지녔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바로 그런 모습에서 죽음에 관한 공자의 독특한 관점을 엿볼 수 있다. 확실히 그에게 삶은 죽음보다 무거운 것이었다. 그가 일생 동안 추구했던 인간다운 삶, 곧 인仁은 목숨을 던져서라도 이루어야 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삶의 중시한 그의 태도가 죽음을 가볍게 받아 들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논어에는 세 번의 죽음이 나온다. 그 중 두 번의 죽음은 공자가 경험한 제자의 죽음이다. 덕행에 뛰어났던 제자 염백우가 병에 걸려 죽게 되자 공자는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하고 두 번 외치면서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겼다. 제자의 죽음 앞에서 공자는 어떤 기적도 보여주지 못한다. 그저 창문을 통해 제자의 손을 잡고 슬퍼할 뿐이다. 염백우의 죽음 앞에 선 공자는 2인칭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인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제자 안연의 죽음에 이르러서는 공자의 슬픔이 더욱 깊게 드러난다. 공자는 평생 동안 중용적 삶을 실천했던 사람이며 그런 점은 감성적 차원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중용이란 더도 덜도 말고 꼭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슬픔이나 기쁨 따위의 감정을 표출할 때도 마찬가지다. “즐거워하되 지나치지 않고 슬퍼하되 몸을 해치지 않는다[낙이불음 애이불상樂而不淫 哀而不傷].”고 말한 것도 마땅히 즐거워하고 마땅히 슬퍼할 때라도 그런 감정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예를 중시한 것도 중용의 덕목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사치스럽거나 검박한 것은 모두 예가 아니다. 그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예에 맞게 곡哭하고 읍泣한다. 그런데 이런 공자를 완전히 무너뜨린 것이 사랑하던 제자 안연의 죽음이었다.
가장 사랑했던 제자 안연이 죽자 공자는 “하늘이 나를 버렸다. 하늘이 나를 버렸다.”고 거듭 외치면서 하늘까지 원망하는가 하면 통곡을 하며 절망하는 모습을 보인다. 스스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공자가 아닌가. 제자들이 지나치게 애통해 한다며 스승을 말리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체 저 사람을 위해서 애통해 하지 않으면 누구를 위해서 애통해 한단 말이냐?”
안연의 죽음을 통곡하는 모습에서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고통과 진한 슬픔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공자에게 죽음은 분석이나 성찰의 대상이라기보다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으로 근본적으로 한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사태로 다가온다.
그 때문에 공자는 상을 당한 사람 곁에서는 배불리 먹지 않았고 곡한 날에는 노래도 부르지 않았다. 또 상복을 입은 사람을 보면 비록 나이어린 사람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었다. 슬픔에 빠진 사람을 지극하게 배려한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이 죽은 이의 장례를 오랜 시간 후하게 치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죽은 이를 전송하는 절차를 통해 슬픔 속에서도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의 참모습이 드러난다고 생각해서다.
얼마 전 세월호 참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애통해 하고 있다. 그들의 가없는 슬픔을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게다가 희생된 꽃같은 그들은, 우리에게 3인칭 죽음이 아니라 이미 2인칭 죽음이다. 통절한 슬픔에 빠진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도리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