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청춘도 영원하진 않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얼마 전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25살 김혜자가 갑자기 70세 노인이 된 이야기. 청춘은 노인의 몸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게 청춘과 노인은 갈등하고 거리를 유지하다가 결국 화해한다. 드라마의 설정처럼 청춘과 노인은 한 몸이다. 드라마는 고단한 청년 취준생의 이야기, 힘겨운 자영업자의 삶, 장애를 가진 가난한 가장의 무게 등을 보여주지만 무엇보다 ‘노인’특히 치매노인에 관한 이야기다.
깜빡깜빡할 때마다 “나도 치매야”라고 말하지만 우리에게 치매는 남의 일이다. 삶이 버거운 청년들에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우리나라 치매노인65세 이상의 수는 이미 75만 명을 넘어섰다2018년 기준. 치매환자는 앞으로 17년마다 두 배씩 증가하여 2024년에는 100만 명, 2039년에는 2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이들이 “치매에 걸리면 집에서 돌볼 생각 말고 요양시설로 보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막상 노인요양시설에 가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노인, 치매환자를 집단으로 수용하는 시설은 그 자체로 인권적이지 않다. 학대가 일어나기 쉽다. 여기서 노인은 그저 관리의 대상이 된다. 기저귀가 일률적으로 쓰이고, 신체를 결박하는 수단신체억제대도 쉽게 사용된다. 사생활은 존중되지 않고 치매환자의 수치심은 무시된다.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 노인요양시설의 대부분은 민간이 운영한다. 생계를 위해 장기요양시장에 들어온 민간 사업자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노인을 돌보라고 요구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다.
시설문제가 아니라도 치매노인의 실종, 학대와 방임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간병살인’도 발생하고 있다. 홀로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이 간병에 지쳐 환자를 살해하는 것이다. 치매 아내를 4년간 간병해온 80대 남성이 아내를 승용차에 태운 뒤 저수지로 뛰어들어 함께 숨진 사건, 80대 치매 노모를 모시던 50대 아들이 연탄불을 피워놓고 동반자살을 한 사건 등 무수하다. 치매환자를 가정에서 존엄하게 돌볼 수 있는 세상은 어려운 것일까? 치매노인을 시설에 두고 관리하는 대신 간섭을 최소화하고 함께 모여 자유롭게 지내도록 한 네덜란드의 치매마을이나 치매환자의 자존감을 중시하고 스스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기저귀 없는 시설을 만든 일본의 모리노카제 노인홈 같은 모델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3월 보건복지부장관과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치매노인 인권보호를 위한 제도개선’을 권고하였다. 치매노인을 가족과 민간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은 치매노인을 인권의 사각지대로 몰아간다. 국가가 치매를 책임지고 관리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핵심은 치매노인의 인권이다. 치매로 죽음을 앞둔 김혜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다.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치매노인의 존엄한 삶과 죽음을 꿈꾼다.
★ 본 기고글은 법률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