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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속 놀이터 같은 곳
책을 담다
모이는 곳
부산 서면 내 스터디카페
모이는 사람들
20 30 40 직장인
추천 도서
①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 김금희 외 9명 지음 / 미디어버스 펴냄
② 『초조한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이유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펴냄
③ 『30년 전쟁』 C. V. 웨지우드 지음 / 남경태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④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 안정효 옮김 / 소담출판사 펴냄
⑤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일반적으로 동아리가 모이는 장소는 카페지만, 이 독서동아리는 그렇지 않다. 에어컨과 큼지막한 책상 그리고 의자가 딱 갖춰져 있어 회의실 느낌이 나는 장소를 대관하면서 모임이 시작됐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느꼈던 첫인상은 ‘책에 대해 한바탕 제대로 이야기해보자’는 분위기였다.
2017년부터 모임을 이어온 ‘책을 담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책 바구니에 실제로 책을 담는다는 의미와 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담는다는 의미다. 처음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지만, 집에서 혼자 읽으면 심심하니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면 좋겠다 싶어 소모임 앱을 통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독서 모임을 통해서 즐기는 취미 생활
Q. 오랫동안 모임을 이어온 만큼 만들어나가고 싶은 동아리의 모습이 있나요? 이 모임은 각자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박준민
만들어나가고 싶은 동아리의 모습은 그냥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면 즐거우니까, 즐거운 취미 생활을 하나씩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모임은 저에게 ‘놀이터’입니다.
조문주
제가 좀 게으르고 아무 것도 안 하는데, ‘책을 담다’는 그런 저를 억지로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동기 부여’입니다.
허진훈
‘해방’이죠. 늘 소속되어 있는 회사나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멀리 여기까지 취미생활을 즐기러 나오니 ‘해방’입니다.
이태호
‘책을 담다’는 저에게 ‘취미 생활’입니다.
Q. 힘든 점은 없었나요?
박준민
지금이죠. 모임이라는 것이 자주 가져야 유대 관계가 유지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아무래도 모임이 연기되고, 사람들도 잘 안 모이니 힘들죠.
이태호
확실히 그전보다 밀도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에요. 전에는 10명 이상 복작거리며 모이다가 텐션이 좀 낮아진 것은 맞아요.
『지리의 힘』 에 관한 솔직한 생각을 나누다
이번 10월 모임에는 총 네 명의 회원이 참석해 팀 마샬의 『지리의 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책을 가져오는 것에는 크게 연연하는 분위기가 아닌 듯했다.
Q. 취재를 준비하면서 책을 중반까지 읽었는데, 저는 작가분의 필체가 과감하고 솔직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글에서 느껴지는 작가분의 인상이 어땠나요?
박준민
저널리스트의 직업병인 것 같습니다. 언론사 생활을 해서 그런지, 신문의 칼럼을 모아놓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관심을 끌만 한 각 지역의 칼럼을 모아둔 것 같아서 그렇게 깊이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얕게 읽기 좋습니다.
허진훈
저도 비슷한데, 본인이 연구한 느낌은 아닌 것 같았어요. 학자는 아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문주
영어 수능 특강의 지문을 애들에게 가르치는데, 그 지문과 똑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기저기 긁어 모은 내용을 똑같이 반복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글 솜씨는 좋지만, 아는 내용을 적어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Q. 책에 나오는 여러 나라 중 자신에게 가장 인상 깊은 나라는 어디인가요?
박준민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를 많이 알게 됐습니다. 중국이나 일본 같은 경우엔 그 나라들 틈바구니에 있으니까 익숙하고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지만, 아프리카는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으면 역사와 사건들을 알기 힘들잖아요. 구글맵의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자로 잰 듯 국경선이 되게 반듯반듯한데, 이 책을 보며 식민지에서 일어난 제국주의 잔재구나 싶었습니다.
이태호
중국 쪽을 보면서 중국의 사고 방식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마인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또 이 책에는 원래 알고 있던 내용이 많았지만, 그림이 잘 그려져 있어 평야 지역과 산맥 지역 등을 알기 쉬웠습니다.
허진훈
저자가 영국 사람인데, 저는 유럽 쪽을 보면서 전통적으로 영국인들이 어떻게 대영제국을 만들었고, 몰락한 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유럽을 보는 시각과 섬나라의 시각을 많이 느꼈습니다.
책과 작가를 구분할 필요성에 관한 묵직한 물음표
Q. 살면서 꼭 만나보고 싶은 작가가 있나요?
조문주
기회가 된다면 프랑스의 소설가 아니 에르노를 뵙고 싶어요. 제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글을 정말 잘 쓰세요.
박준민
저는 작가를 만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책을 통해서 갖게 되는 작가의 이미지가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책만 놓고 보면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지만, 개인 정보와 함께 판단하면 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책을 즐기는 처지에선 작가를 개인적으로 만나는 게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책으로써만 판단하고 싶습니다.
이태호, 허진훈
저도 동감입니다.
Q. 그럼 고인이 되신 작가 분도 지금 한 번 만나보고 싶지 않은가요?
박준민
존경하는 사람을 찾는 건지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을 찾는 건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말 그대로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좋은 글을 통해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도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위인을 찾는 게 아니잖아요? 작품이 훌륭해도 개인적 삶이 별로일 때, 그걸 모르면 작품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이태호
훌륭한 분이 쓴 책이라도 책이 별로면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는지, 제가 되묻고 싶습니다. 진짜 좋은 작품인데 지은이가 히틀러라면 그 책이 명작이고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는 딱히 공감을 못 하겠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그다지 만나보고 싶지 않습니다.
작품과 작가를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 좋은 글을 썼다고 좋은 작가인가에 관해 물음표를 던짐으로써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다. 좋은 책을 썼다고 작가를 무조건 존경해야 할까? 그건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책에서 꼭 작가의 인생과 성격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책은 작가에게 일종의 부가 캐릭터 같은 것”이라는 말을 다시금 곱씹어보게 된다.
마스크 때문에 말을 알아듣기 힘들어하자 “그럼 카톡으로 인터뷰를 하자”며 장난치는 모습과 중간중간 모르는 책이 나와도 서로 돌아가며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에서 이 동아리의 개성 있는 분위기를 많이 느꼈다. 앞으로도 마음 맞는 회원들과 모임을 잘 이어나가길 바라며 취재를 마무리했다.
★취재단 사고뭉치(김세진, 배온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