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는 적어도 공식적인 정의에 따르면 수백 년 동안 성공적인 체제였으며, 구소련과는 유사하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는 매일 그것을 연습한다. 우리 경제의 큰 부분은 민영화된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공산주의 모델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이는 너무 정상적이고 명백해서 더 이상 눈에 띄지도 않는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식탁에 앉아 있고 소금은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놓여 있다. “소금 좀 건네주세요”라고 말하면 누군가 무료로 소금을 건네준다. 인류학자들은 이것을 일상적 공산주의everyday communism라고 일컫는다. 인류는 공원과 광장, 음악과 이야기, 해변과 침대를 공유하면서 이런 종류의 공산주의에 열광한다. 아마도 이런 관대함의 가장 좋은 예는 가정일 것이다. 전 세계의 수십억 가정이 공산주의 원칙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부모는 자신의 소유물을 아이와 공유하고 능력껏 기여한다. ‘경제economy’라는 단어가 여기서 생겨났다. 이는 ‘가정 경영’을 뜻하는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우리는 직장에서 끊임없이 우리의 공산주의적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을 쓰는 동안 나는 한 푼도 요구하지 않는 동료 수십 명의 비판적인 시각이라는 혜택을 받았다. 기업도 내부 공산주의의 열렬한 팬이다. 단순히 그것이 매우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낯선 사람에게는 어떨까? 결국 우리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공유하지 않는다. 길을 물어보는 사람들을 도울 때 우리가 비용을 청구하는가? 아니면 누군가를 위해 문을 열어놓거나 다른 사람이 우산 아래에서 비를 피하도록 허용했을 때는 어떤가? 이러한 행위들은 맞대응 거래가 아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품위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며, 또한 낯선 사람들이 당신에게도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이러한 종류의 공산주의적 행동으로 가득 차 있다. ‘공산주의communism’는 라틴어 ‘코뮤니스communis’에서 유래했으며, ‘함께 사용한다’는 뜻이다. 공산주의는 시장, 국가, 관료제를 포함하는 다른 모든 것이 구축되는 기반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는 2005년 뉴올리언스와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일어나는 협동과 이타주의의 폭발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재앙이 발생하면 우리는 스스로의 근본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