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이란 어휘에는 오랜 역사가 담겨 있지만, 하버마스Habermas가 얘기하는 모더니티 프로젝트는 18세기에 전면에 등장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계몽사상가들이 ‘객관적 과학, 보편적 도덕률, 자율적 예술들이 본연의 논리를 따라 발전되도록’ 하기 위해 구사한 독특한 지적 노력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고는 인간해방과 일상생활의 풍요를 위해 자유로이 창조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수많은 개인들의 축적된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자연에 대한 과학적 지배는 희소성, 결핍, 변덕스러운 자연재해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해주었다. 합리적 형태의 사회조직과 합리적 사고방식이 발전함에 따라 신화와 종교, 미신의 비합리성에서 해방되었으며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으로부터, 그리고 권력의 자의적 전횡으로부터도 벗어나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거쳐야만 휴머니티의 보편적이며 영원불변한 자질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었다.
계몽사상Cassirer(1951의 설명에 따름)은 진보관을 담고 있었으며, 모더니티를 탄생시킨 과거 역사 및 전통과 단절하고자 적극 노력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인류를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자 지식과 사회조직의 탈신비화·탈신성화를 추구한 세속화 운동secular movement이었다. 따라서 계몽사상은 알렉산더 포프A. Pope가 말한 ‘인류에 대한 연구는 인간으로부터’라는 명제를 심층적으로 받아들였다. 인간의 창조력이나 과학적 발견, 개인적 성취의 추구가 인류 진보란 이름으로 예찬되기도 했던 만큼, 계몽사상가들은 변화의 소용돌이를 기꺼이 수용했다. 그들은 일시성과 찰나성, 분절성을 모던화 프로젝트를 이룩하기 위해 거쳐야 할 필수조건으로 보았다. 인간지능에서의 평등과 자유, 믿음의 원리(교육의 혜택으로 가능해졌다). 그리고 보편적 이성이 풍미했다. 프랑스혁명의 격동 속에서 콩도르세Condorcet는 ‘참된 명제가 언제나 진실되듯, 좋은 법法은 모두에게 좋은 것이어야 한다’고 하여 놀라울 정도의 낙관론을 펼쳤다. 하버마스Habermas(1983: 9)에 따르면 콩도르세 같은 논자들은 ‘예술과 과학이 자연의 힘에 대한 통제력뿐만 아니라 세계와 자아의 이해, 도덕적 진보, 제도의 정의正義, 심지어 인류의 행복까지도 드높이리라는 터무니없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20세기 - 대량학살과 암살대, 군국주의와 두 차례의 세계대전, 핵파멸의 위협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경험 - 는 분명 이러한 낙관주의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설상가상으로 계몽 프로젝트가 자기 적대로 치달려 인간해방에 대한 요청을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미명하에 보편적 압제체계로 바꾸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도 생겨나게 된다. 이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The dialectic of Enlightenment, Adorno & Horkheimer, 1972』에서 표명한 과감한 명제였다. 히틀러 집권기 독일과 스탈린의 러시아라는 시대배경하에서 그들은 계몽의 합리성 아래 숨겨진 논리가 다름 아닌 지배와 압제의 논리라고 설파했다. 자연自然 지배의 욕망은 인류人類 지배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결국 ‘자기自己 지배의 악몽상태Bernstein’(1985: 9)로 귀결될 뿐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유일한 탈출구로 생각한 자연nature의 저항은 문화와 개성을 억누르는 순수 도구적 이성의 압제적 권력에 대항하는 인간 본성human nature의 저항으로 인식되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