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늙은이가 30년 전 참선을 하지 않았을 때는, 산을 보면 곧 산이었다. 선리를 조금 깨쳐 눈이 열리니,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었다. 이제 불법 도리를 완전히 깨닫고 나니, 산은 그저 산이더라.
혜능선의 후세 법손인 송대 임제종 황룡파의 청원유신선사가 설한 상당 법어로 선림에 회자되어오는 유명한 공안이며, 불성론의 평등사상을 설파한 결정판이다. 이 화두는 ‘부정의 미학’이라는 불성론의 논리구조를 통해 도달하는 력금불이礫金不二·귀천일여貴賤一如의 평등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부처는 마른 똥막대기”라는 화두도 이같은 불성 평등사상에서 나온 설법이다. 미혹迷에 빠져 있으면 부처도 똥막대기에 불과한 존재이고, 깨달음悟을 얻으면 똥막대기처럼 아무 가치 없는 중생도 곧 부처가 된다는 금시법金屎法은 불성론의 평등사상을 이 같은 극단적인 표현으로 설파한다.
유신선사의 설법을 잠시 심미해보자.
범부의 차별의식과 분별심에서 보면 제1단계처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돌은 돌이고 금은 금이다. 여기에는 오직 ‘차별성’만이 있을 뿐이다.
제2단계는 공관空觀의 부정에 집착해 돌을 금으로 보고, 산을 물로 보는 무조건 평등주의에 함몰돼 있다. 이렇게 되면 돌을 가지려는 절도·강도가 횡행하는 웃지 못 할 희극이 벌어진다. 이는 명목적인 ‘평등성’만이 존재하는 불행한 사회이자 세계다. 제1, 제2의 단계는 평등과 차별이라는 두 변邊의 한쪽에만 매달려 대립과 혼란을 빚고 있는, 깨닫지 못한 중생의 세계다.
제3단계는 산과 물, 금과 돌을 있는 그대로 구분한다. 그러나 1단계와 다른 점은 금의 기품을 지닌 성인이 돼 금을 돌처럼 보고 산을 물처럼 보아, 일체를 탐내거나 어떠한 소유의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제3단계는 ‘차별과 평등’이 공존하는 세계다. 여기서는 차별과 평등이 충돌하거나 대립하지 않고 원융무애한 공존으로 각자의 영역을 지켜나간다.
흔히 반야의 공관사상이 제2단계에 머물면서 공·열반에 집착하는 데 반해, 선학의 열반 불성론은 열반에 대한 집착이라는 ‘또 하나의 집착’까지를 버리는 부정의 부정, 이른바 불락공不洛空·부주열반不住涅槃을 통해 만유萬有의 절대긍정으로 한 단계 올라선다. 이것이 바로 평등 속의 차별, 혼란 속의 질서, 동動 중의 정靜, 죽음 속의 삶 등과 같은 ‘역설의 진리’를 가능케 하는 불성론의 평등사상이 가지고 있는 논리구조다.
돌과 금은 일방면(본체계)에서는 원융불이의 평등성을 가지지만 다른 일방면(현상계)에서는 각기 자신의 고유성과 차별성을 갖는다. 이런 논리가 인정되지 않고는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는 성립할 수 없다. 형이상학적인 본체계에만 집착, 우리가 사는 형이하학적인 ‘현상계’를 끝내 부정만 한다면 번죄와 갈등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사실상 본체계의 평등, 곧 만법귀일의 ‘일一’이 상징하는 지평선 같은 평등은 인간의 현실세계에는 불가능하다. 삼라만상의 각기 다른 존재가 인정되는 게 우리가 사는 현상계다. 그리고 그 만법은 고유의 가치와 위치를 갖는다. 이른바 ‘개성’이라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산과 물을 똑같은 것으로만 보는 평등사상의 허구성과 공상空相에 집착하는 허무주의, 염세주의를 만나게 된다. 눈먼 거북이가 바다 위에서 나뭇조각을 붙들고 있는 형국이다. 반야공관의 공·무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공상에만 매달린다. 혜능의 불성론은 여기서 반야의 파상破相은 사물의 영원성·진실성을 부정하고 모든 것이 인연 화합의 산물임을 알기 위한 것이지, 가유假有(현상계)의 가치와 의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공空과 유有 어느 쪽에도 집착하지 않는 ‘출몰즉리양변出沒卽離兩邊’의 중도이자 불이不二다. 이 대목은 선의 올바른 이해, 불교의 바른 신앙을 위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불성론의 결론이다.
혜능의 불성론과 반야학은 개성의 절대자유와 만물의 독립적 개체성을 중요한 가치로 긍정한다. 혜능의 불성론은 《열반경》의 불성론에 창조성을 발휘해 경문經文이 내함하고 있는 의미를 선적 깨달음에 연장시켜 독창적인 논리를 개발, 전개했다.
선종은 혜능의 이러한 불성 평등사상에 입각한 자아 긍정을 한껏 고양시키면서 명심견성明心見性을 특별히 강조한다. 선이 추구하는 해탈의 구체적인 내용은 역량(자오자도自悟自度의 능력), 창조(기존 규범 준수의 거부), 초월(자유 왕국의 건설)이다. 선수행이란 각자가 자력으로 자신의 심성을 정화해, 마치 조각가가 조각품을 만들 듯 숭고한 정신세계를 소조塑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산은 산이로다”라는 설법은 유신선사 이전에도 황벽희운선사, 운문문언선사 등 수많은 선승들이 설파했고, 오늘에도 거듭 회자되는 공안이다. 성철 전 조계종정도 1981년 1월 종정 취임식 법어에서 이 일구를 수시垂示해, 막연히나마 선심禪心을 동경하는 세인들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