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백성百姓의 사전적 정의는 ‘국민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다. 한자를 풀어보면 ‘백 가지 성씨’가 된다. 다양한 성을 가진 사람들의 무리. 글자의 뜻만 본다면 오늘날의 사람들을 백성이라고 불러도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인가 어색하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대국민 TV 연설 중에 우리를 백성이라고 칭한다면 무언가 이상할 것이다. 실제로 백성은 왕이 존재하는 사회의 피지배층을 지칭하는 어간이 강하다. 오늘날의 사람들을 지칭하기에 적절한 어휘가 아니다.
다음으로 국민國民은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많이 사용하는 단어로 매우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수의 사람들을 지칭하기에 그렇게 자연스러운 단어는 아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국가는 사라지거나 변화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동질감을 유지할 것이다. ‘국가’와 ‘국민’은 시대의 변화를 따르는 가변적인 정치 개념이다.
국민에 비해 다수를 지칭하기에 더 자연스러운 단어는 인민人民이다. 인민은 한자 그대로 그저 ‘사람’을 말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자연인들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전적 의미만 고려했을 때는 가장 무난한 단어다. 다만 분단으로 인한 정치적 상황이 인민을 가장 정치적인 단어로 만들었다. 북한에서 지속적으로 인민이라는 말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감으로 우리는 이 단어를 사용하기 껄끄럽다. 좋은 단어 하나를 잃었다.
인민 이외에 자연인을 지칭하는 가장 무난한 단어가 민중民衆이다. 민중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무리’를 지칭한다. 다만 사람들 전체를 지칭한다기보다는 소수의 지배자들을 제외한 다수의 피지배자들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자주 사용된다. 특히 근대의 노동자 계급을 지칭할 때 많이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특성으로 민중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회의 부조리를 함축하는 측면이 강하다. 민중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면 그 사람은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거나 세금의 인상을 강조하거나 복지 국가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자신이 국가의 성장이나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국민 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단어가 없을 것이다. 혹은 어떤 사람이 대중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면 그는 엘리트주의자일 가능성이 있다.
당신은 지금까지 어떤 단어를 즐겨 사용했는가?
괜찮은 단어가 없다. 어떤 단어는 이념적이고 어떤 단어는 수동적이다. 이러한 단점들이 없는 더 괜찮은 단어는 없을까? 그런 단어가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자세히 다룰 ‘시민’이다.
일단 여기서는 대략적인 의미만 기억하고 넘어가자. 시민은 ‘권리를 갖고 있는 주체’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