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들은 미스터리를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런 스포츠에는 선수의 실력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경기 규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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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역사는 이 미스터리를 사수하려는 노력의 역사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1893년 미국 야구계는 당시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이 스포츠를 살리기 위해 대대적인 규칙 변경에 나섰다. 당시 야구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타자들이 공을 못 친다’는 것이었다. 1887년 이후 내셔널 리그 선수들의 타율은 0.269에서 0.245로 낮아졌고 각 팀의 삼진 기록은 41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가장 성적이 좋았던 보스턴 빈이터스 팀이 한 시즌 동안 친 홈런은 다 합해도 서른네 개밖에 되지 않았다.
타자들이 추락한 이유는 투수들의 부상 때문이었다. 1890년대 초반 들어 투수들의 기량은 날로 향상됐다. 직구의 구속은 더 빨라졌고뉴욕 자이언츠의 에이모스 루시는 160킬로미터에 육박하는 공을 던졌다, 새롭게 개발된 ‘스크루볼’ 커브에 타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그 결과 예측 가능한 경기가 펼쳐졌다. 경기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을 보이는 선수들은 공을 던지는 쪽뿐이었다. 훌륭한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면 그 팀이 거의 100퍼센트 승리했다. 덕분에 게임은 지루해졌고, 이는 심각한 사업상의 문제로 이어졌다. 야구장을 찾는 관객의 숫자가 급감한 것이다.
영세한 팀들은 출혈이 심각했다. 이들은 도산을 막기 위해 1893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선수들의 연봉을 거의 40퍼센트 삭감했다. 야구는 벼랑 끝에 선 것처럼 보였고, 얼마나 더 버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구단주들은 경기 관람객 수를 늘리기 위해 경기 규칙을 바꾸기로 했다. 전에는 투수들이 홈플레이트에서 17미터 떨어진 구간에서 공을 던졌다. 구단주들은 이 간격을 18.5미터로 늘리기로 했다. 논리는 간단했다. 타자들에게 공을 칠 시간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면 신세대 에이스 투수들을 상대로 승산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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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규칙은 효과가 있었다. 마운드와 홈플레이트 사이 간격을 18.5미터로 늘리자 실력과 운의 균형이 거의 완벽에 가까워졌다. 타자들은 이제 공을 맞힐 수 있었고, 그렇다고 공이 날아가는 방향까지 자유자재로 조절하지는 못했다. 1893년의 구단주들이 통계 변량까지 고려했을 것 같진 않지만단순히 공격이 더 활발해지길 바랐을 것이다 어쩌다 우연히 공과 방망이 사이의 ‘모순의 최적지’를 발견해낸 것이다.
― 조나 레러, 「지루하면 죽는다」, 윌북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