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상수는 운동복에 미경이 사 준, 얌전하고 착실하고 어느 모로 보나 은행원 같은 패딩 코트를 걸친 다음 쓰레기봉투를 들고 내려왔다. 분리수거를 한 다음 한쪽 구석에 서서 그제 저녁 슬그머니 나가 편의점에서 산 전자 담배를 꺼내 물었다. 층층이 불 켜진 아파트를 올려다봤다. 고작 9일이었는데 9년 동안 산 집처럼 풍경이 익숙했다. 상수는 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이런 것이 갖고 싶던 행복일까. 결혼한 선배, 상사들이 권태로운 한숨과 함께 발음하던 행복. 상수는 첫날 마트에서 본 남자들을 떠올렸다. 세련되고 뚜렷한 인상 속의 그 남자들도 실은 이런 행복 속에 살고 있던 걸까? 농가에서는 쓰지도 않는 나무 궤짝에 담긴 유기농 사과, 지푸라기 둥지는 구경도 못 해 봤을 닭이 낳은 유정란처럼 행복이란 꾸미고 연출한 인상뿐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모두 엇비슷해 보이는 것인지도. 상수는 팔을 들어 좋은 옷, 하지만 더 좋을 것도 없고, 조금 싫기도 한 옷을 흘깃 봤다. 마음에 든다던 거짓말이 스쳤다.
행복에는 늘 거짓이 그림자처럼 드리우기 마련인 듯했다. 아니, 어쩌면 거짓은 조명일지도 몰랐다. 행복이라는 마네킹을 비추는 밝고 좁은 조명.
― 이혁진, 『사랑의 이해』, 민음사2019, 147~1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