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건강해야 사람들이 건강하다
신영전은 『퓨즈만이 희망이다』한겨레 출판, 2020라는 책을 펴냈다. 지난 15년간 한국 사회 건강정치학이라는 공간에서 이슈가 됐던 사건들을 기록했다. 제목의 퓨즈는 취약한 존재들을 뜻한다. 과부하가 걸리면 가장 먼저 끊어져 전체 전기 시스템을 살리는 존재들의 죽음을 현대사회는 그저 부수적 피해로 간주한다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비판에서 착안했다. 이렇듯 그의 글에는 전공 분야만이 아니라 건강정치학을 관통하는 철학, 문학, 정치, 역사에서 빌려온 지식과 사유들이 촘촘히 꿰어져 있다. 다독가인 그에게 물었다. 책을 왜 읽는지.
“전 행복이 건강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건강은 우생학적 개념이에요. 행복은 장애가 있어도 행복할 수 있죠. 다만, 구조적 모순을 놔두고 마취제같이 행복을 말하는 건 비판받아야 하지만요. 행복감은 직전의 나보다 그 후의 내가 더 풍성해졌단 느낌이거든요. 복권에 당첨됐어도 내가 풍성해지지만, 그건 올 확률이 거의 없죠. 그에 비해 좋은 책을 읽으면 반드시 행복해져요. 그런데 누가 모르냐,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 라는 말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읽고 싶어도 못 읽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에서 그치지 않고 그는 다시 사회구조의 문제를 짚었다.
“미안해서 그래요. 나만 누리니까. 읽고 싶어도 못 읽는 사람이 떠오르는 거예요. 신동엽 시인이 쓴 산문에 보면 스웨덴 노동자들이 바지 뒷주머니마다 하이데거, 러셀, 헤밍웨이, 장자의 책을 꽂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거든요. 노동시간 준수가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책 읽으면 행복해진다고 이야기하는 건 낯 뜨거워지잖아요.”
그게 당신의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 물었더니, “내 잘못이라니까요. 제가 좀 더 힘이 있고 잘했으면 노동시간도 단축하고 그렇게 했을 텐데”라고 했다. 아니 대관절, 한 개인이 노동시간을 어떻게 단축한다는 걸까. 자신의 역할을 너무 크게 보는 거 아닌가.
“그렇게 사회화된 것 같아요. 절 움직이는 동력은 미안함이거든요.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미안함. 제가 어떤 걸 하는 건 미안함을 덜기 위한 행위일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근데 이 얘기도 사실은 밥맛 떨어지는 얘기죠.(웃음)”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말하고 사회구조의 문제로 언어를 추상화하다가 자기부정으로 끝내는 패턴으로 답했다.
“제가 자꾸 추상적이 되는 데에 대해 변명하자면, 헤겔의 말대로 ‘진리는 전체’라고 생각해요. 다 관련이 있고, 전부 다 말해야 되는 거죠. ‘글 읽는 행복’과 ‘노동조건’과 자본주의를 연결을 해야지, 한쪽만 얘기하면 성에 안 차요. 그래서 사회의학자의 기본이 ‘홀리스틱 어프로치holistic approach’예요. 병은 의료로 하는 게 아니고, 사회가 건강해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건강하다. 그게 사회의학이거든요.”
― 은유, 『크게 그린 사람』, 한겨레출판2022, 190~192쪽, 신영전한양대 의대 교수 인터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