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벽 너머로
― 곽소진
촬영 감독으로 영화 「기억의 전쟁」에 합류하고, 프로덕션이 끝난 지 3년이 지났다. 고백하자면 많은 순간들이 기억 너머로 지워졌다. 어쩌면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촬영자의 일이란 이미지를 촬영하는 순간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후에는 촬영한 이미지를 열심히 잊어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는 편이 영화가 완성되는 데에 조금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중략)
이 책에서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저자가 수미일관하게 드러내고 또 강조하고자 한 것은 전쟁과 평화의 문제는 운명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인간 사회의 사회 및 정치적 제도, 그리고 인간과 집단의 일련의 선택들의 역사적 결과라는 관점이었다.
― 이삼성, 『20세기의 문명과 야만』, 한길사, 1998, p.119.
이 문장은 영화를 준비하며 제작진과 함께 『20세기의 문명과 야만』의 서문을 읽다가 적어 놓은 것이다. 1998년 쓰인 이 책의 서문은 “한 세기의 폐허 앞에 선 자기 성찰”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영화를 만들자는 감독의 제안에 일단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으나 막상 전쟁사와 세계사 공부를 할수록 가슴이 뜨거워지기보다는 점점 식어가기만 했다.
20세기의 폐허 앞에서 왜 내가 자기 성찰을 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이를 우리 세대가 해결해야만 하는 숙원 사업처럼 짊어지는 것도 어색한 기분이었다. 이런 내 마음이 미묘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은 영화를 준비하며 세 개의 다른 장면을 다시금 배열하게 된 이후이다.
(중략)
내가 베트남전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에 합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하미 학살 위령비에 얽힌 이야기 때문이었다. 학살로 희생된 마을 주민 135명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 건립 과정을 듣고 나는 무언가 ‘참을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2000년 12월, 월남참전전우복지회의 지원으로 하미 마을에 위령비가 착공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위령비에 새겨질 비문을 적었다. 학살의 과정을 묘사한 비문이었다. 그러나 완공을 앞둔 2001년 복지회는 마을 사람들이 적은 비문을 지울 것을 요구했다. 하미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서 벌어진 일을 자신들의 언어로 서술한 비문을 지우라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으나, 복지회는 비문을 지우지 않는다면 위령비 건립을 취소할 것이라는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고 마을 주민들이 외부의 압력에 저항한 끝에 결국 비문은 수정되지 않았으나, 비문 위에 연꽃 문양이 그려진 대리석을 덧씌운 상태로 제작되었다.
하미 학살 위령비 건립에 얽힌 이야기는 베트남 민간이 학살에 대한 한국의 ‘협상적’ 태도를 상당히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 이전에 내가 울컥했던 이유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둘러싼 복잡한 맥락을 넘어, 이 대리석 벽이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연꽃 그림을 보게 된 후로 나는 어떤 마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보고 싶지 않은, 그래서 보이지 않도록 가려두는 마음에 대해서. 그 마음은 현재의 내가 20세기와 완전히 선을 그을 수 없게 만드는 마음이었다.
2014년 겨울, 하미 마을에서 그 대리석을 직접 마주했다. 연꽃 문양이 새겨진 단단한 대리석 벽을 보고 있을 때에, 그림 너머를 응시하는 눈들이 있었다. 연꽃 밑에 가려진 글자를 볼 수 있는, 아니 기록 이전의 사실을 보았던 눈들이었다. 벽 너머의 세계를 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벽이 너무 단단하고, 오래된 것이라면? 그러기 위해선 먼저 벽 뒤로 돌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보기 위해서는 볼 수 있어야 하니까.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를 볼 수 없게 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야 하니까.
― 이길보라·곽소진·서새롬·조소나, 『기억의 전쟁』, 북하우스2021, 44~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