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없는 자유
에밀 시오랑, 《태어났음의 불편함》
에밀 시오랑 ㅣ202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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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시오랑
1911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에밀 시오랑은 1937년에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 살며 글을 썼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의 이름은 ‘치오란’이 아니라 ‘시오랑’으로 더 익숙하게 알려졌다. 1928년부터 1932년까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베르그송’에 대한 논문으로 학사 과정을 마쳤다. 1933년에 독일 훔볼트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베를린 대학교에서 수학했지만 체계로서의 철학에서 멀어져 철학적 에세이, 개인 사상가로서의 글쓰기에 경도된다. 1934년 첫 책 『절망의 정점에서(Pe culmile disperării)』를 출간했고, 1936년에는 루마니아로 돌아가 잠시 고등학교 철학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1937년에 프랑스 문화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파리로 가 소르본 대학교 철학과에 등록했지만 수업과 논문 쓰기를 접어두고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모국어로 쓴 책 『사유의 석양(Amurgul gândurilor)』(1940년)을 출간하고 난 다음 1947년 이후에는 루마니아어와 결별하고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49년 프랑스어로 쓴 첫 책 『해체의 개설(Précis de décomposition)』이 출간되었고,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 『고통의 삼단논법(Syllogismes de l’amertume)』(1952), 『존재의 유혹(La tentation d’exister)』(1956), 『역사와 유토피아(Histoire et utopie)』(1960), 『고백과 저주(Aveux et anathèmes)』(1987) 등의 책을 출간하며, 고독과 처절하게 맞선 글쓰기, 절제된 아포리즘적 절규로 많은 독자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여러 차례 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되었지만 수상을 모두 거부했고, 단 한 차례 1950년 리바롤(Rivarol)상을 받았는데, 생계가 어려웠기에 그 상이 아니었다면 노숙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1995년 6월 20일, 파리에서 숨을 거두어 몽파르나스 묘지에 안장되었다.
에밀 시오랑 지음 | 김정란 옮김ㅣ 현암사, 2020-12-23
부정적이고 해로운 책들과 그 해로운 힘에 저항할수록, 우리는 자신을 더 잘 되찾을 수 있고, 존재에 더욱더 밀착하게 된다. 요컨대 그 책들은 그 책들을 부정하는 에너지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책들이다. 독을 지니고 있을수록, 그 책들은 유익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그 책들을 일반적 이해와는 다르게 읽는다는 전제하에 그러하다. 교리문답집부터 시작해서 모든 책들은 다르게 읽어야 한다.(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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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 사람의 작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봉사는 그로 하여금 일정 기간 동안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모든 지적인 활동을 유예시켜줄 짧은 기간의 금지 조치가 필요하다. 어떤 중단도 없는 표현의 자유는 재능을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시키며, 작가들로 하여금 자신이 가진 자원 이상으로 자신을 소모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감각과 경험을 축적할 수 없게 만든다. 한계 없는 자유란 정신을 상대로 벌이는 테러다.(136~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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