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산에서 쏟아진 흙더미가 산 아래 가옥들을 덮치고,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수십 명이 길바닥으로 나앉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담임은 근환이가 며칠간 학교에 나오지 못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후 학교에서 달산 재해민들을 위한 모금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꽤 큰 금액을 어머니가 선뜻 내주었기 때문에 나도 거기에 동참했던 기억이 납니다. … (중략) … 공무원들이 달산 아래 임시 거주지를 강제 철거한 일에 대해 어머니가 이상할 정도로 냉랭하게 말했기 때문에 나도 더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조금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남일동으로부터 멀리, 더 멀리, 어떻게든 가능한 한 더 멀리 있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말입니다.
우리는 남일동에서 살았다고 할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몇 년 그 동네에 있었던 거지. 어디 가서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라.
몇 달 전 식탁에서 무심코 남일동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그런 뒤엔 숟가락을 소리 나게 내려놓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한마디 더 했습니다. 일생을 통틀어 자신이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은행 빚을 내는 부담을 감수하고 경매에 뛰어들고, 무리하게 집을 사고팔며, 달산이 올려다보이는 그 동네를 악착이 떠나온 것이라고 말입니다.(27~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