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아카데미 영화제 작품상을 받은 「스포트라이트」는 성직자의 어린이 성폭력 실화를 다룬다. 성폭력은 사법 체계가 아니라 기자, 지역사회, 피해자가 수사해야 하는 일임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왜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피해자와 ‘엄청난 사명감을 품은 특별한 사람들’이 나서야 하는가? 그 이유는 성폭력 사법 처리 과정이 다음과 같은 전형을 밟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어렵게 신고하면 기소 단계에서 기각되거나 판결 단계에서 무죄가 된다. 그 다음 순서, 피해자는 비난과 위협에 시달리고 가해자는 피해자를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 피해자가 가해자, 용의자가 되는 것이다.
피해자에게 가장 큰 좌절을 주는 성폭력 사례는 성직자, 의사, 교사, 상담가, 법조인처럼 특수 직업 종사자, 즉 가해자가 시민 보호 업무를 맡는 직종인 경우다. 이 영역은 철벽이다. 숨겨진 범죄, 처벌받지 않은 범죄, 피해가 2차, 3차로 이어지는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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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실명 공개다. 가해자들은 성폭력을 범죄가 아니라 도덕적 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실명 공개를 가장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사회가 파헤친 것은 ‘~사건’처럼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이름이었다. 정치인이나 신창원 같은 유명 범죄 용의자의 경우 유죄 확정 전이라도 신상이 공개되는 경우가 흔하다. 성폭력은 생물학적 욕구가 아니라 성별 권력 관계 때문에 발생하는 범죄다. 실명 공개는 전자 팔찌, 화학적 거세보다 훨씬 효과적이다.(215~2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