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자신의 감정과 상태가 피해자다운지에 대해 계속 살핀다. ‘영혼이 살해’된 사람은 과연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데 왜 나는 괜찮은가. 괜찮아도 되는가. 나는 피해자가 맞는가. 이런 의심 말이다. 이렇게 피해자의 ‘고통’에 집중하는 것은 다시 피해자를 과거의 사건 바로 그 순간에 살도록 만든다. 피해자의 미래는 이미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취급된다.
반면 가해자는 사건은 이미 과거에 일어났으며 자신에게는 미래가 있다고 주장한다. 가해자의 말은 변호사에 의해 가해자가 초범이고,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거나 촉망받는 미래의 인재라는 방식으로 인용된다. 법관들은 가해자의 미래를 판결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로 취급한다. 그 결과 피해자는 과거에, 가해자는 미래에 있게 된다. 성폭력이 어떤 사회적 해악을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목록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점이 가장 부정의하다고 생각한다.
- 권김현영, ‘성폭력 폭로 이후의 새로운 문제, 피해자화를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