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일처럼 다가왔다. 신문 사회면에 단신으로 소개되는 사건 중에도 청소년이 죽거나 다치는 기사를 접하면 유독 종일토록 마음이 무거웠다. 길을 가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난폭하게 질주하는 청년들을 보기라도 할 땐 그들이 곧 죽을까 봐 불안했다. 툭 치면 세상 밖으로 내쳐지는 간당간당한 생에 대해, 그런 삶을 낳는 세상에 대해 갖은 생각이 밀려오곤 했다. ‘피자를 시켰더니 같은 반 아이가 배달을 왔다더라’는 얘기는 몇 번쯤 들어본 레퍼토리다. 제 몸 써서 정직하게 일하는 노동의 귀함을 설파하는 미담이 아니라 ‘너도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 혹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걸 복으로 알라’는 식의 괴담처럼 학부모들 사이에 유통된다. 한 아이의 삶을 부분 탈취하여 훈육과 통제의 도구로 삼는 행태는 천박하지만 그런 무지막지한 경고가 극단적 현실로 드러나는 세상은 더없이 참담하다. ‘저렇게 된다’고 어른들이 떠드는 동안 정말로 한 아이가 죽었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또 다른 죽음을 전해들은 것도 그 즈음이다. 그러니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해인 2014년 초봄, 회사에 다니는 한 친구는 어느 시사주간지에 실린 사건을 내게 들려주었다. 당시 고3이었던 CJ제일제당 현장실습생 김동준은 장시간 노동과 작업장 내 폭력에 시달리다가 죽음을 택했다. 그는 전날 밤,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너무 두렵습니다. 내일 난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요?” 그의 어머니는 “그때 그냥 그만두고 나와도 된다고 했어야 하는데 ‘세상 사는 게 다 그렇게 힘든 거다’고 말했던 것이 너무 후회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친구는 아이의 유언도 마음 아프지만 어머니의 말씀이 깊이 와닿았다고 했다. 역시나 힘들게 살았을 그 어머니는 당신이 사는 이유인 아들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 사는 법’에 대해 다르게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의 말은 친구가 기다리던 구원의 메시지였을까. 꼭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친구는 4년간 밤낮없이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