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창조 이후 최고의 현인들이 연구하고 소망했던 바를 내가 손에 넣었다. 마술처럼 한순간에 이 모든 게 저절로 눈앞에 활짝 펼쳐졌다는 건 아니다. 획득한 정보의 본질은 연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매진해야 하는지 길을 가르쳐주는 쪽에 가까웠다.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성과는 아니었다. 나는 마치 죽은 자들과 함께 파묻혔다가 다시 살아나갈 길을 발견한 아라비아인 같았다. 하지만 길을 인도하는 빛은 희미했고 무력해 보였다.
친구여, 열의는 물론 경외와 희망에 찬 그대의 눈빛을 보니, 내가 알게 된 비밀을 전해줄 거라는 기대를 품는 모양이지만 그건 안 될 말이다. 이야기를 끝까지 주의 깊게 듣고 나면, 내가 그 주제에 대해 말을 아끼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당시의 나처럼 몸도 사리지 않고 열의에 들뜬 그대를 파멸과 명약관화한 불행으로 이끌 수는 없으니. 나로부터 배우도록 하라. 가르침을 듣지 않겠다면 적어도 내 사례를 보아 깨닫도록 하라. 지식의 획득이 얼마나 위험한지, 본성이 허락하는 한계 너머로 위대해지고자 야심을 품는 이보다 고향을 온 세상으로 알고 사는 이가 얼마나 더 행복한지를.(65쪽)
이 대재앙 앞에서 느낀 감정을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까. 혹은 무한한 수고와 정성을 들여 빚어낸 그 한심하기 짝이 없는 괴물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사지는 비율을 맞추어 제작되었고, 생김생김 역시 아름다운 것으로 선택했다. 아름다움이라니! 하느님, 맙소사! 그 누런 살갗은 그 아래 비치는 근육과 혈관을 제대로 가리지도 못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흑발은 출렁거렸고 이빨은 진주처럼 희었지만, 이런 화려한 외모는 허여멀건 눈구멍과 별로 색깔 차이가 없는 희번득거리는 두 눈, 쭈글쭈글한 얼굴 살갗, 그리고 일자로 다문 시커먼 입술과 대조되어 오히려 더 끔찍해 보일 뿐이었다.(71~72쪽)
─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
『실낙원』은 전혀 다르고 훨씬 심오한 감정을 일깨워주었다. 나는 우연히 습득한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그 책을 실제 역사로 읽었다. 전능한 신이 피조물들과 싸우는 장면은 가능한 모든 경이와 외경심을 일깨우는 힘이 있었다. 나와 비슷한 점이 두드러졌기 때문에, 몇 가지 정황들을 나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곤 했다. 아담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기존의 어떤 존재와도 무관하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그의 상황은 모든 면에서 나와 달랐다. 신의 손에서 나온 아담은 완벽한 피조물이었다. 조물주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는, 행복하고 번영을 누리는 존재였다. 더욱 탁월한 본성을 지닌 존재들과 대화를 나누고 지식을 전수받는 특권을 누렸다. 그러나 나는 비참하고 무기력하고 외로웠다. 나는 사탄이 내 처지에 더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사탄과 마찬가지로, 내 보호자들의 행복을 바라볼 때면 쓰디쓴 질투의 덩어리가 내 안에서 치밀었기 때문이다.(173~174쪽)
내 부탁은 합리적이고 결코 지나치지 않다. 나처럼 추악한 모습을 한 이성異性 피조물을 요구하겠다. 만족감은 적겠지만 그 이상은 절대 얻을 수 없다면 만족하겠다. 물론 우리는 세상과 단절된 괴물들로서 살아가리라.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아끼고 사랑하리라. 우리의 삶이 행복하지는 않겠지만, 남을 해치지도 않을 테고 지금 내가 느끼는 이런 불행도 알지 못할 것이다. 오! 창조주여, 나를 행복하게 해다오! 딱 한 가지 은혜를 베풀어 당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해다오! 나도 내가 다른 존재의 마음에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을 보고 싶다! 내 청을 거절하지 말아다오!(195쪽)
어떤 유대도 사랑도 가질 수 없다면, 내 몫은 오로지 증오와 악뿐이다. 다른 이를 사랑하게 되면 내 범죄의 원인은 없어져버리고 나는 아무도 존재를 모르는 사물이 될 것이다. 내가 저지른 악행들은 억지로 견뎌야 했던 지긋지긋한 고독이 낳은 자식들이다.(197쪽)
─ 피조물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문학동네, 2012, Frankenstein(1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