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대하신 쿠빌라이시여, 부질없겠지만 높은 보루에 에워싸인 도시 자이라에 대해 묘사해 보겠습니다. 이 도시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길들의 계단 수가 얼마나 많은지, 주랑의 아치들이 어떤 모양인지, 지붕은 어떤 양철판으로 덮여 있는지 폐하께 말씀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말씀드리는 게 아무것도 말씀드리지 않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도시는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도시 공간의 크기와 과거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로등의 높이와 그 가로등에 목매달아 죽은 찬탈자의 대롱거리는 다리에서 땅까지의 거리 사이의 관계, 그 가로등에서 앞쪽 난간으로 묶어놓은 줄과 여왕의 결혼식 행렬을 장식했던 꽃 줄 사이의 관계, 그 난간의 높이와 새벽녘 간통을 저지르다 난간을 뛰어넘는 남자의 급하강 사이의 관계, 창문 홈통의 기울기와 바로 그 창문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당당한 걸음걸이 사이의 관계, 곶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포함의 사정거리와 홈통을 파괴해 버리는 폭탄 사이의 관계, 어망의 찢어진 틈과 부두에 앉아 찢어진 어망을 손질하며 여왕의 사생아로 강보에 싸인 채 이 부두에 버려졌었다는 소문이 있는 찬탈자의 함선 이야기를 수백 번 되풀이하는 세 노인 사이의 관계로 도시는 이뤄집니다.
도시는 기억으로 넘쳐흐르는 이러한 파도에 스펀지처럼 흠뻑 젖었다가 팽창합니다. 자이라의 현재를 묘사할 때는 그 속에 과거를 모두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도시는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과거는 마치 손에 그어진 손금들처럼 거리 모퉁이에, 창살에, 계단 난간에, 피뢰침 안테나에, 깃대에 쓰여 있으며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모든 단편들에 담겨 있습니다.(17~18쪽)
그때 쿠빌라이 칸이 폴로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니 가로막는 상상을 했거나, 마르코 폴로가 칸의 질문으로 자신의 말이 끊기는 상상을 했다.
“자네는 항상 뒤를 돌아보며 앞으로 걸어나가는가?” 아니면 “자네가 보는 것은 항상 자네 등 뒤에 있는 것인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네의 여행은 항상 과거 속에서 진행되는 것인가?”
마르코 폴로가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항상 자기 앞에 있는 무엇인가였다는 것을 설명하려면 혹은 설명한다고 상상하거나 설명하는 게 상상이 되거나 혹은 스스로에게 성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려면, 이 모든 것이 다 해당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것이 비록 과거의 문제라 해도 그 과거는 그가 여행을 해나가는 동안 서서히 변해왔다. 여행자의 과거는 그가 지나온 여정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하루가 덧붙여지는 가까운 과거가 아니라 아주 먼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매번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여행자는 그가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더 이상 그 자신이 아닌 혹은 더 이상 소유할 수 없는 것의 이질감이, 낯설고 소유해 보지 못한 장소의 입구에서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마르코가 어떤 도시로 들어간다. 그는 광장에서 자신의 것일 수도 있었을 삶을, 혹은 그런 한순간을 살고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 그가 아주 오래전 시간 속에서 멈춰 섰더라면 혹은 갈림길에서 선택했던 쪽의 정반대 길을 선택해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다가 그 광장의 그 남자의 자리로 돌아와 있었더라면, 지금은 마르코 자신이 그 남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 과거든 아니면 관념상의 과거든, 이제 마르코는 자신의 과거에서 배제되어 있다. 그는 멈춰 설 수가 없다. 그는 그의 다른 과거, 혹은 그의 미래일 수도 있었고 이제는 다른 누군가의 현재가 되어버린 무엇인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도시까지 계속해서 가야만 한다. 실현되지 않은 미래들은 과거의 가지들일 뿐이다. 마른 가지들.
이때 칸이 이렇게 물었다.
“자네의 과거를 다시 경험하기 위해 여행하는 것인가?”
이 질문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자네는 자네의 미래를 다시 찾기 위해 여행하는 것인가?”
마르코는 대답했다.
“다른 곳은 현실과 반대의 모습이 보이는 거울입니다. 여행자는 자신이 갖지 못했고 앞으로도 가질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발견함으로써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38~40쪽)
─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현경 옮김, 민음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