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경험치 못한 무료를 느끼게 된 것은 그 후의 일이다. 처음엔 왜 그런지 몰랐다. 그런데 그 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릇 누군가의 주장이 지지를 얻게 되면 전진을 촉구하게 되고 반대에 부딪히면 분발심을 촉구하게 된다. 그런데 낯선 이들 속에서 혼자 소리를 질렀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다시 말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면, 아득한 황야에 놓인 것처럼 어떻게 손을 써 볼 수가 없다. 이는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리하여 내가 느낀 바를 적막이라 이름했다.
이 적막은 나날이 자라 큰 독사처럼 내 영혼을 칭칭 감았다.
허나 까닭 모를 슬픔이 있었지만 분노로 속을 끓이지는 않았다. 이 경험이 나를 반성케 했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은 팔을 들어 외치면 호응하는 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그런 영웅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나 자신의 적막만은 떨쳐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겐 너무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온갖 방법을 써서 내 영혼을 마취시켰다. 나를 국민들 속에 가라앉히기도 했고 나를 고대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그 뒤로도 적막하고 더 슬픈 일들을 몇 차례 겪었고 또 보기도 했지만 하나같이 돌이켜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 일과 내 뇌수를 진흙 속에 묻어 사라져 버리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내 마취법이 효험이 있었던지 청년 시절 비분강개하던 염이 다시는 일지 않았다.
S회관에는 세 칸 방이 있었다. 전하는 얘기로는 마당의 홰나무에 한 여인이 목을 매고 죽었다 했다. 지금 그 나무는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자랐지만 그 방엔 아직도 사람이 살지 않는다. 몇 년간 나는 그 방에서 옛 비문을 베끼고 있었다. 내방객도 드물고 비문 속에서 무슨 문제니 주의니 하는 것을 만날 일도 없었다. 이런 식으로 내 생명이 어물쩍 소멸해갔다. 이 역시 내 유일한 바람이었다. 여름밤엔 모기가 극성이었다. 홰나무 아래 앉아 종려나무 부채를 부치며 무성한 잎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시퍼런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철 지난 배추벌레가 섬뜩하니 목덜미에 떨어지곤 했다.
그 무렵 이따금 이야기를 나누러 오는 이는 옛 친구 진신이金心異였다. 손에 든 큰 가죽 가방을 낡은 책상 위에 놓고 웃옷을 벗은 뒤 맞은편에 앉았다. 개를 무서워해서인지 그때까지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모양이다.
“이런 걸 베껴 어디다 쓰려고?” 어느 날 밤, 그는 내가 베낀 옛 비문들을 넘기면서 의혹에 찬 눈길로 물었다.
“아무 소용도 없어.”
“그럼 이게 무슨 의미가 있길래?”
“아무 의미도 없어.”
“내 생각인데, 자네 글이나 좀 써 보는 게….”
그의 말뜻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한창 『신청년』이란 잡지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렵 딱히 지지자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필시 그들도 적막을 느끼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내 대답은 이랬다.
“가령 말일세, 쇠로 만든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창문이라곤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어. 그 안엔 수많은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어. 머지않아 숨이 막혀 죽겠지. 허나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비애 같은 건 느끼지 못할 거야. 그런데 지금 자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의식이 붙어 있는 몇몇이라도 깨운다고 하세. 그러면 이 불행한 몇몇에게 가망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는 게 되는데, 자넨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나?”
“그래도 기왕 몇몇이라도 깨어났다면 철방을 부술 희망이 절대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
그렇다. 비록 내 나름의 호가신은 있었지만, 희망을 말하는 데야 차마 그걸 말살할 수는 없었다. 희망은 미래 소관이고 절대 없다는 내 증명으로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 나도 글이란 걸 한번 써보겠노라 대답했다. 이 글이 최초의 소설 「광인일기」다. 그 후로 내디딘 발을 물리기가 어려워져 소설 비슷한 걸 써서 그럭저럭 친구들의 부탁에 응했다. 그러던 것이 쌓여 십여 편이 되었다.
나 자신에게 있어서야, 나는 이제 절박해서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어야 하는 그런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지난날 그 적막 어린 슬픔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일 터, 그래서 어떤 때는 어쩔 수 없이 몇 마디 고함을 내지르게 된다. 적막 속을 질주하는 용사들에게 거침없이 내달릴 수 있도록 얼마간 위안이라도 주고 싶은 것이다. 나의 함성이 용맹스런 것인지 슬픈 것인지 가증스런 것인지 가소로운 것인지 돌아볼 겨를은 없다. 그래도 외침인 이상 당연히 지휘관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이따금 내가 멋대로 곡필을 휘둘러 「약」의 주인공 위얼의 무덤에 난데없는 화한 하나를 바치거나 「내일明天」에서 산單씨네 넷째 댁이 죽은 아들을 만나는 꿈을 짓밟지 않았던 것은 당시의 지휘관이 소극적인 것을 멀리했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서도 내 젊은 시절처럼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는 청년들에게 내 안의 고통스런 적막이라 여긴 것을 더 이상 전염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