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인터뷰 7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걸어왔고 걸어 갈 길
충남 금산 감자
모이는 곳_ 금산기적의도서관, 대전 계룡문고, 진산도서관
모이는 사람들_ 성인, 도서 관련 활동가
읽는 책_ 독서 자체에 대한 책과 청소년교육 관련 책
감자 독서동아리를 인터뷰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건 지난 9월 말 군포에서 열린 전국독서동아리 한마당의 사례 발표를 듣고 난 이후였다. 짧은 발표였다. 감자의 발표 사례는 강렬하거나 흥미를 일으키는 부분도 적었다. 감자라는 이름처럼 어쩌면 흔하게 볼 수 있는 동아리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그 고민이 지속되고 있다는 말, 그리고 진정 고민이 가득했던 눈빛과 목소리가 마음에 남았다. 그 뒤 감자를 만날 약속을 잡았다. 독서동아리 한마당이 열린지 약 한달 후쯤 금산기적의도서관 10주년 행사 준비로 바쁜 가운데 대전의 대표 지역 서점인 계룡문고에서 독서동아리 감자를 만날 수 있었다. 가는 길 내내 세찬 비가 이어졌는데 대전에 도착하자 빗방울이 약해졌다. 계룡문고 한편의 북카페에서 감자 회원들 중 세 분을 만났다.
감자의 회원분들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그리고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각각의 현장에서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이곳 계룡문고에서, 우리감자를 만드신 한연숙 대표는 금산기적의도서관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해 오셨고, 다른 분들도 아이들 독서 지도, 도서관 사서 등 각자 추구하는 것들과 책을 통해서 하려는 부분이 맞닿아 있다 보니 자연스레 만나게 되었고 감자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금산기적의도서관에서 자원활동가를 하고 있었어요. 10년 전에 도서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여러 사람들이 모여 같이 마음을 모아 활동을 시작했었어요. 그런데 대부분 아이들이 크고 여러 가지 상황들도 발생하면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어요. 저 혼자 남아 이제 도서관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떤 방식으로 이어가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 계신 분들이 도움을 주셨어요. 현재는 기적의도서관뿐만 아니라 여기 계룡문고와 진산도서관 이렇게 장소를 옮겨 가면서 만나고 있습니다. 매주 모여서 독서에 관한 기본서를 읽자, 독서가 정말 무엇인지 돌아보자는 생각으로 독서 자체를 다룬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곧 문학기행을 가려고 하는데 그냥 우리끼리 하는 것보다 의미 있는 것이 무얼까 찾다가 시골 초등학교에 책을 읽어 주러 가기로 했습니다. 경북 영천의 작은 초등학교와 잘 이야기가 되어 이곳에서 작은 북페스티발을 꾸며 볼까 합니다. 이걸 시작으로 정기적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볼까 계획 중입니다.”
사실, 가장 궁금했던 것이 방금 언급됐던 고민이란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을까요?
“금산은 시골이지만 인삼 농사로 인해 상업적인 동네예요. 책 읽는 문화는 거의 없고 뜨내기들만 있는 곳이에요. 그러다 보니 청소년들이 그런 분위기에 젖어들고 있었어요. 이 아이들에게 책 읽는 문화를 만들어 주기 위해 ‘도서관친구들’이란 단체를 통해 더 도서관운동에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금산 사람들에게 도서관과 그 활동을 인식시키는 데 4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이제 조금 해 볼 만하다 했는데 ‘도서관친구들’이 여러 사건으로 흔들리게 됐잖아요. 그러다 보니 이곳도 그 영향을 받아 그동안 했던 활동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어요. 그래도 이대로 쓰러지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청소년들이 계속 눈에 들어왔거든요. 청소년 동아리를 키우고 청소년들에게 책을 읽혀야겠다. 책 읽는 아이들을 배출하자. 그러다 보면 부모들에게도 변화가 오지 않을까. 그리고 결국 금산이라는 지역도 변화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가진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도서관에 고등학생 동아리를 하나 만들었어요. 그리고 학교도서관을 통해 중학교 독서동아리를 두 개 정도 만들었는데 여기는 아직 독서 자체보다 수업 위주의 형태입니다. 고민이란 건 이 동아리를 어떻게 끌고 갈까, 내가 없어도 자발적으로 아이들이 할 수 있을까. 없어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그런 기틀을 마련해 줘야 하는데 현실이 쉽지 않아 저절로 생기는 고민들이에요. 안타깝지만 누군가 끌어 주지 않으면 학생 동아리들은 금방 사라지게 돼요.”
말씀하신 학생 동아리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아이들을 제가 모집해서 4명이 모였어요. 이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홍보 포스터도 만들고 알리는 활동을 해서 지금은 10명이 되었는데 전부 남자아이들이라 모임 출석률이 그렇게 좋지는 않아요. 하지만 할 때는 즐겁게 하고 있어요. 책 자체를 아직 많이 접해 보지 못한 아이들이라 맨 처음에는 웹툰으로 시작했어요. 마침 그때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웹툰전이라는 것을 하고 있어 개인적으로 돈을 모아 다 같이 그곳에 다녀왔더니 사이들이 돈독해졌어요. 그 뒤에는 여행이란 주제로 모였는데 ‘내가 가고 싶은 여행지’라는 주제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현재는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책’을 기획하고 있어요. 더불어 11월 6일에 아이들과 길담서원에 찾아가기로 했어요. 그전에 저희 감자도 그곳에서 배운 것이 많았거든요. 아이들도 그곳에 가면 느끼는 것이 많을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감자에 거의 마지막에 참여하게 됐는데 저도 그동안 도서관에서 청소년들과 동아리를 만들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바쁘다 하고 쉽게 곁을 내 주지 않았어요. 또 잘못 접근하면 일종의 훈계가 될 수 있잖아요. 여기 감자를 참여하면서 많이 배우고 많이 느끼고 있어요.”
쉽지 않은 일들인 것 같습니다.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봉사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하다 보면 지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도서관에서 같이 해 주면 좋은데 그런 도서관운동에 대한 인식이 없는 사서들이 있어요. 그저 행정 공무원화 되는 것 같아요. 처음 기적의도서관 생겼을 때는 관장님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도서관운동에 대한 의지와 생각들이 있었어요. 지금은 뭔가를 만들어 가려고 해도 쉽지 않아요. 금산에 공공도서관이 네 군데나 있는데 많이 침체되어있어요. 제가 요구를 하기고 하고 사람들이 민원도 넣지만 잘 되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도서관친구들’ 관련 사건으로 그동안 제가 고민하고 활동했던 시간들이 다 의미가 사라진 것이 아닐까 큰 상실감을 느꼈어요. 사실 이제 아무것도 안 하려고 했어요. 봉사활동을 오래 했어도 그냥 나오라면 나오고, 깊이 있게 관여하지 않으면서 그저 우아하게 자원 활동을 하고 있다는 태도들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힘이 많이 빠져요.”
그럼에도 그런 것들을 껴안고 고민하면서 나아가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청소년들,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다 보니 다시 힘을 내고 있어요. 그리고 처음 제가 활동했을 때 포부를 밝힌 것이 있는데 금산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시장에 도서관이 있으면 좋겠다. 상인들 한 명 한 명에게 책을 읽혀 변화시키고 싶다, 시장에 책 읽는 문화를 퍼트리고 싶다는 다짐을 한 적이 있어요. 도서관친구들 활동을 하면서 그때 다짐을 잊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주 조금씩 준비 중입니다. 그리고 여러 행사를 준비하다 보면 사람들이 많이 와야 한다는 성과주의적인 시선이 힘 빠지게 하지만 비록 한 명이라도 그 사람이 백 명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해 나갑니다.
그리고 중학생 동아리 아이들에게 도서관을 우리 스스로 변화시켜 보자,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지 말고 너희들이 요구를 해라, 그러다 보면 관심을 가지고 변화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해요. 사실 도서관 환경이 매우 열악해요. 간단한 요구조차 아무도 안 하니 방치되는 현실이에요. 책을 읽을 수 없는 환경인데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우리가 밑에서부터 하자, 건의함도 만들자, 너희 때 안 되면 어떻냐, 내년에 다른 아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라고 얘기했더니 아이들이 많이 호응해 줬어요. 이런 식으로 만난 아이들 중에서 지속적으로 만나는 학생들이 있는데 고3인데도 불구하고 이번 금산기적의도서관 행사에서도 많은 도움을 줬어요. 행사가 다 끝나고 그 아이들과 무대에서 사진을 찍는데 눈물이 날 뻔해서 혼났어요.”
인터뷰가 마무리될 시점에 계룡문고 북카페에 ‘노인 학대 금지’라고 쓰인 노란 조끼를 입으신 할머니들께서 자리를 잡으셨다. 회원 중 한 분이 그림책을 들고 가셔서 그분들에게 즉석으로 책 읽기 봉사를 하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한연숙 대표의 이야기에 들으면 들을수록 이 감자라는 독서동아리의 가치와 고민의 깊이, 그리고 그 고민을 실천하고자 하는 노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감자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을 구한 최고의 구황작물이었다. 무엇이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이 시대에도 그 의미는 퇴색되지 않고 살아남아 여기 금산의 작은 독서동아리에서 꽃 피우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한연숙 대표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도서관운동가 엄대섭 평전 《이런 사람 있었네》를 보고 그 길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가 봅니다. 도서관친구 관련 일로 주저앉을 무렵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열었던 강좌를 들으러 서울을 오가면서 다시 기운이 샘솟았습니다. 이용남 선생님의 강의가 가슴 가득 채워져 새로운 힘을 받았지요. 사서들이, 독서운동의 싹을 틔우고 계신 분들이, 이용남 선생님을 자주 뵙게 된다면 또 다른 빛이 생기겠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선생님이 가시는 곳마다 가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