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초인
모이는 곳_ 마포구 성산동 카페 1/3
모이는 사람들_ 성인, 직장인
읽는 책_ 재일동포를 다룬 책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들의 학교다
교사는 빈약하고 작고
큼직한 미끄럼타기 그네 하나,
달지 못해서
너희들 놀 곳도 없는
구차한 학교지마는
아이들아
이것이 단 하나
조국 떠나 수만리 이역에서
나서 자란 너희들에게
다시 조국을 배우게 하는
단 하나의 우리 학교다
아아 우리 어린동지들아
- 허남기,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학교다〉 중에서
몇 년 전, <우리학교>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조선인학교라는 조금은 생소한 공간에서 아이들은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학교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다만 학교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배타적이고 편견 가득했을 뿐이다. 누구보다 해맑은 아이들의 눈빛과 말투 속에는 이해와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 덕분인지 다큐멘터리는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그 이후 재일동포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원치 않은 무국적자로서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 이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참으로 오랜 시간 외면해 버린 그들은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 세계 각국에 존재했다.
이에 대해 재일조선인인 서경식 교수는 재일조선인 문제를 ‘일본에서 불쌍하게 차별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살고 있는 틀이 조선 땅에서 중국 동북지방, 소련 연해주, 일본에 이르기까지 넓어졌다’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재일조선인의 조선은 엄밀하게 국적이 아니라 그냥 기호였다. 이제는 없는 나라의 기호. 일제 식민지에서의 해방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혼란스러웠던 해방 공간에서 그들은 어떠한 환대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기호를 가진 이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 되었다.
초인이라는 독서동아리는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몽당연필이라는 작은 비영리단체의 소모임이다. 아픈 역사와 오랜 세월 다양하게 중첩된 차별 속에서 정확한 의미와 범주를 갖지 못한 채 고립되어 버린 재일동포에 대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먼저 초인에 대한 소개와 모임에 참여하게 된 계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초인은 배우 권해효 씨가 대표로 계시는 몽당연필이라는 비영리민간단체에서 회원들 간의 친목도모와 공부를 위해 만든 여러 소모임 중 하나입니다. 몽당연필은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와 조선인학교를 돕고자 하는 단체이고요. 초인은 여러 모임들 중에서도 가장 활발히 하는 모임입니다. 재일동포와 조선학교에 대해 알리는 데에, 우리 스스로도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에 이왕이면 같이 공부하자는 취지를 가지고 만들어진 거죠. 제가 이 몽당연필 활동을 시작한 건 작년 8월부터이고, 초인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건 오래 초부터인 거 같아요. 전 번역 일을 하고 있는데 우연히 도쿄조선중고급학교에 대한 소설을 보게 되었어요. 이 책을 읽고, 우리말로 옮겨서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일본에 가서 그 작가분을 만나 번역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다행히 받아들여져서 열 달 정도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책을 보기 전까지는 그런 역사가 있는지 몰랐어요. 굉장히 충격적이었죠. 작가 선생님을 통해 몽당연필을 알게 되었어요. 일본에 계신 분을 통해 알게 된 게 참 아이러니해요. 여러 활동들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어느 단체에서 느껴보지 못한 것을 주는 분들이 많은 거 같아요.”
“첫 모임 때 싸온 음식이 한국에서 만든 초밥과 일본에서 가져온 인절미였어요. 그래서 초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어요. (웃음) 무슨 거창한 뜻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짓고 나서 보니까 일본 사회에서 사는 재일동포를 가리키는 의미가 우연찮게 담긴 거 같아요.”
“저는 이제 나이가 좀 들고 있는데 점점 책을 읽어야 한다는 중압감을 받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책을 읽다 보면 알아 가는 건 있는데 그냥 지나가는 듯했어요. 그러다 방송을 통해 몽당연필이라는 단체를 알게 됐어요. 일제 식민지 시대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자의 반 타의 반 해외로 나갔는데 해방 이후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가슴이 아팠어요. 디아스포라라는 주제에 관심이 가서 몽당연필에 가입했고, 초인을 알게 되어 활동을 하고 있어요. 여기는 한 가지 주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만나자마자 통하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얼마 안 됐지만 제가 적지 않은 나이인데 전혀 느껴 보지 못한 것들을 전해 주는 모임인 거 같아요. 저희는 자주 모여요, 책 읽기뿐만 아니라 재일 동포를 위한 봉사활동이나 여러 가지 실천적인 활동을 해요. 하나 안타까운 건 저희가 공부하고자 하는 주제에 관련한 출판물이 많지가 않다는 거예요.”
일본에도 재일동포를 다룬 출판물이 없나요? 그밖에도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재일동포 이야기들은 일본에 많이 있죠. 그런데 관심이 없다 보니 번역이 안 되어 있어요. 강상중 씨 같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분의 단편적인 이야기가 담긴 책자들은 만날 수 있는데 재일교포 3세, 4세분들에 대한 것들이나 그들의 부모님 세대가 겪은 어려움이나 그런 전체적인 흐름을 볼 수 있는 책들이 국내에는 거의 없어요.”
“조선인학교에 다니고, 또 졸업한 아이들의 고민은 국적과 고향, 조국 등이에요. 이런 단어들의 사전적 의미와 부모님과 삶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충격이 크고 그 깊이가 무거워요. 그런 것들을 좀 더 제대로 이해해 보려고 그런 책들을 읽고 모이는 것 같아요. 책을 읽어서 그분들이 처한 상황을 자세히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면서도 왜 그리 어렵게 조선인학교를 지키려는지, 민족성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한 번은 조선인 학교를 알리고 돕기 위해 성남 쪽에 서명운동을 나간 적이 있어요. 일반인들을 상대로 처음이었어요. 막상 아무런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을 상대로 조선학교를 소개한다는 게 너무너무 어렵구나. 일본 현지에서 일본 사회와 정부를 상대로 싸우는 그분들의 처절함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때의 그 경험이 그분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리고 올 7월 히로시마에 있는 학교에 초인 멤버와 같이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서 갔다 오기도 했어요.”
“사실 서명운동을 할 때 대부분 수월하게 해 주셨어요. 물론 그 의미를 다 알고 해 주셨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때 유독 한 분만 ‘조총련 친북단체 아니야?’ 그런 말을 하셨는데, 아무런 항변을 못 했어요. 그분이 가진 고정관념을 일거에 해소시킬 수 있는 공부가 아직 덜 되었기도 하고 아직 제 안에서 그런 의구심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계속 만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동포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건데 만나는 순간 거리감이 없어져요. 훅 다가와요. 오히려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건 우리인 거 같아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그분들은 고민하지 않아요. 만나면 우리 동포니까, 같은 민족이니까 그냥 그거 하나로 다가오시는 데 오히려 우리가 망설이고 너무 많이 생각하고 주저주저해요. 사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민족이란 단어가 큰 의미가 아니라 그저 함께할 수 있는 도구인 거 같아요. 하지만 어쨌든 굉장한 거부감을 가지신 분들이 계세요. 완전히 반대편만 바라보고 있어요. 그래서 활동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저희의 주제는 딱 하나에요. 막상 돌이켜 보니까 다양한 요소가 다 들어 있더라고요. 하나를 지향하지만 그 안에서 다양성을 찾는 점이 있어요. 재일동포 70년 역사를 알려면 이 땅의 근현대사, 나라 간의 관계도 다 파악해야 하고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이 아직 버거운데 그러다 보면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지는 부분이 있어요. 이 모임에는 영화감독님도 계시고, 저처럼 일하는 직장인도 있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 계세요. 각자의 느낌을 교류하면서 그런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하고 있어요.”
“저는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준비 중인데 오히려 여기 계신 초인 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은 사람입니다. 저는 이분들이 어떤 계기로 조선학교에 알게 되고, 그분들의 삶을 이해하고 함께 하려고 하는지가 정말 궁금하더라고요. 일본에 조선인 학교를 도와주고 알리는 연락회라는 시민단체가 있어요. 그분들에게 왜 이런 활동을 하느냐 하고 물을 때가 있어요. 단순히 생각하면 불쌍하다거나 동정심인 거 같은데 그분들은 자신들의 삶과 연관하여 일본 사회가 그렇게 사람들을 배제시키는 과정들이 자신 스스로 부끄럽고 이런 문제를 극복해야 정말로 민주적인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활동하더군요. 일본에는 매스컴에서 보는 우익들도 있지만 이러한 사람들도 있다는 걸 조금 더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 책을 읽고 계신가요?
“오늘은 《조선학교 이야기》를 읽고 있어요. 동포단체인 지구촌동포연대(KIN)와 일본의 ‘고교무상화제도로부터 조선학교 배제에 반대하는 연락회’가 공동으로 기획해 나온 책이에요.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조선학교에 잘 모르는 분들에게 쉽게 나온 책입니다. 서점에서도 창고에 있는 것을 찾아왔어요.”
“재일동포분들이 일본에 올 때 가져와 달라고 부탁하기도 해요. 좀 전에 제가 조선학교를 다룬 책을 번역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우리들의 깃발』이란 제목의 세 권짜리 소설이에요. 저자의 자전적 소설인데 중·고등학교 시절을 다루고 있어요. 조선학교 초기의 역사가 들어있고 그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고민들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이에요. 지금 후반 작업 중인데 곧 출판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몽당연필은 실질적인 회원이 100~200명 정도인 신생 비영리민간단체에요. 하지만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가서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런 역사가 있고 이런 공간이 있다고 알리고 싶어요. 지금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그분들이 많은 에너지를 실어 주고 계세요. 단순히 단체의 외형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함께하는 분들과 내실을 다지면서 성장하고 싶습니다.”
“초인의 향후 진로도 현재 시점부터 고민을 하고 있어요. 계속 이렇게 한 우물을 파면서 연구를 할 것인지, 문학이나 다른 책도 같이 읽으면서 본연의 책 읽기에 집중할 것인지 깊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일본이나 중국 등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있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문학기행이나 어떤 탐사를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예산이 많이 들겠지만 꼭 한번 추진해 보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조선학교 학생들이 직접 그린 엽서들과 소책자를 선물받았다. 소책자에는 ‘조선학교에 대한 열네 가지 궁금증’이 담겨 있었는데 그중 하나의 질문과 답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일본 정부는 왜 조선학교와 재일동포를 차별하는 건가요?
조선학교를 인정하면 일본 내에 재일동포들이 많게 된 역사적 과정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일본이 과거 침략전쟁의 장본인이었다는 것, 그로 인해 조국을 떠나 일본 땅에서 정착해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그동안 침략전쟁과 지배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와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는 과거 식민지 피착취민족에 행했던 ‘동화’정책, 즉 ‘일본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정책을 아직도 법적, 제도적으로 유지하고 있고, 이것은 특히 일본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일본은 외국인이 살기 힘든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