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이희수 교수님의 종교는?
사회자 : 돼지고기 홍보대사 이희수 선생님의 말씀이었습니다.(웃음) 이번에도 이희수 교수님께 질문 드립니다. 빨간색 질문지입니다. “교수님이 믿는 종교, 혹은 믿고 싶은 종교, 마음에 드는 종교가 있으시나요?” 학생들은 이희수 선생님께서 어떤 종교 믿으실 것 같나요? “선생님 종교가 기독교일 것 같다?”, ‘한 분 있습니다.’ “선생님 종교가 불교일 것 같다?”, ‘오 많이 있네요.’ “선생님 종교가 이슬람교일 것 같다?”, ‘많이 있네요.’ “선생님 종교가 조로아스터교일 것 같다?”(웃음) 선생님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희수 : 가끔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을 받습니다. 저는 가톨릭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돈의 팔촌의 고조부 할아버지께서는 우리나라의 천주학을 받아들인 최초의 사람입니다. 그런 집안에 제가 장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슬람 권역에서 연구를 하기 때문에 하루에 5번씩 예배를 철저히 봤습니다. 현재 라마단 기간이고, 금식을 해야 합니다. 이슬람 국가에 가면 이슬람 이름도 있습니다. 제 이름은 ‘자메일’입니다.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사회자 : 여러분 이희수 교수님 아름답게 보이시나요?(웃음)
이희수: 그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자메일은 한국보다 터키에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좋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부산에 있는 대명사라는 절에서 중학교 3년을 보냈습니다. 그 이유는 어머니가 사춘기 때 애를 버린다며 저를 사찰에 맡겼습니다. 머리를 빡빡 깎고… (웃음)… 그리고 주지 스님께서 ‘정언’이라는 법명까지 주셨습니다. 또한 감수성이 예민할 때에 3년 동안 똑같은 불경을 들었습니다. 『천수경』은 거의 다 외웠고요. 『금강경』도 굉장히 어렵지만 상당 부분 외웠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목탁 치면서 염불할 때 딱 3초만 들으면 ‘아… 저 스님이 진짜가 아니다. 불경이 몇 년 정도 됐구나.’ 하고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 : 우와…) 여러분들에게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아마르티아 센 교수가 집필한 『정체성과 폭력』이란 책입니다. 거기 보면 ‘사람들은 왜 꼭 하나의 종교, 하나의 정체성만 가져야 되고 그것을 강요하는가?’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다양한 것도 가질 수 있고, 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천주교 순교자 집안으로서 삶을 공부했고, 불교에도 좋은 이미지, 좋은 감정을 갖고, 또한 초파일이 되면 등불을 답니다. 그리고 제가 성호 선생의 직계 장손으로 철저히 사대봉사를 모시는 유교적 집안으로 제사를 지냅니다. 우리에게는 다양함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너는 기독교이니까, 너는 불교이니까, 너는 유교니까’ 또는 ‘너는 전라도니까, 너는 경상도니까’ 등 어떠한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하나의 정체성으로 그 사람을 단죄하고,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손가락질 하는 것은 위험한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정체성도 있을 수 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박수)
사회자 : 오늘 밤에 이희수 선생님과 함께하는 금강경 낭독이 있겠습니다.(웃음) 혹시 지금 라마단 금식 기간이면 금식 하시나요?
이희수 : 한국에선 제가 안 하죠.(웃음)
동물의 처지에서 짝짓기를 관찰당하는 것은 기분 나쁘지 않겠는가?
사회자 : 이번 질문은 대상은 최재천 선생님인데요. 빨간 질문지입니다. “최재천 선생님께서 많은 동물 연구를 하시잖아요. 동물의 짝짓기 같은 것을 인간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개인적인 부분까지 관찰하는 거잖아요. 동물의 처지에서 생각해본다면 기분 나쁘지 않겠어요?” (웃음) 민망하시나요? 답변 들어보겠습니다.
최재천 : 제가 파나마 열대 연구소에서 ‘민벌레’라는 벌레를 연구했어요. 썩어가는 나무껍질 밑에 모여서 살구요. 몸길이가 2㎜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곤충이에요. 그 친구들을 실내에 키우면서 현미경으로 관찰했어요. 민벌레를 관찰하는 날도 아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잘 잤느냐’고 하면서 관찰했습니다. 한 암수가 짝짓기를 시작했습니다. 짝짓기를 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눈이 퇴화하였기 때문에 더듬이로 상대방을 쳐 보며 암수를 구분합니다. 암컷이라고 판단이 되면 한발 짝 다가가서 더듬이를 뒤로하고, 가늘게 떨면서 고개를 땅에 거의 붙입니다. 여성 앞에서 조아리는 거죠.(웃음) 대부분은 바라보기만 하고 가버립니다. 그 반대로 암컷이 관심 있으면 한 발짝 다가갑니다. 수컷이 한 발짝 다가오면서 머리 가운데 구멍으로 한 방울 액체를 쏟아 냅니다. 그것을 암컷이 빨아먹습니다. 그리고 꽁지를 돌려주면 그때부터 짝짓기를 일 분 정도 하고 끝납니다. 그렇게 끝나고 돌아 서 있다가 다시 또 마주 보고 짝짓기를 합니다. ‘왜 이것을 한 번에 길게 하지 않고, 자주 해야 하는 것인가?’ 이것도 연구 주제 중에 하나인데 대게 서너 번 정도 하고 짝짓기가 끝나요. 하지만 그날은 스물여덟 번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침을 못 먹었습니다.
하종강 선생님이 대통령이 된다면?
하종강 : 한 가지만 말해야 하나요?
사회자 : 여러 가지 말해도 됩니다.
하종강 : 학생들과 관계된 것부터 말하겠습니다. 다른 선진국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노동 교육을 아주 철저히 합니다. 그래서 독일은 초등학생이 일 년에 여섯 차례 모의 교섭 수업에 참여합니다. 학생들은 경영자 역할도 맡아보고, 노동자 간부 역할도 맡습니다. 한국 선생님께서 독일에 연수를 가셔서 이 장면을 보셨습니다. 독일교사에게 “똑같은 것을 왜 여섯 차례나 합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독일 교사의 답변은 “실제 교섭에서 한 번에 끝나는 경우가 없잖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실제로 '임금을 몇 퍼센트 인상할 것인가?'에 대한 교섭이 열 번에서 스무 번 이상 하거든요. 한국처럼 제도권 교육에서 노동 인권 교육을 하지 않는 선진국은 거의 없습니다. 미국은 전형적인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미국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보면 ‘노동 운동사’라는 단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노동 운동사’라는 단어 자체가 없습니다.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노동자가 되고, 교사가 되고, 경영자가 되고, 정치인이 되니깐 안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말하라고 하면 노동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사회자 : 하나 더 하고 싶은 일을 말씀해주세요.
하종강 : 우리나라 비정규직이 아주 많잖아요. 여러분이 사장이라면 어떤 상황에서 비정규직을 채용하겠어요? 비정규직은 오늘 출근했다고, 내일 출근이 보장 안 되는, 이번 달 출근했다고, 다음 달 출근이 보장이 안 되는, 올해 출근 했다고 내년 출근 보장이 안 되는 게 비정규직이에요. 비정규직이 어떤 상황에 필요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사장이라면, 직원이 질병에 걸렸거나 잠깐 자리가 필요할 때 직원이 몇 달 넘게 존재하지 않을 때 이럴 때 정규직을 채용하면 정년 보장이 어렵거든요. 다른 나라는 비정규직을 이럴 때만 사용합니다. 이것이 노동법상에 사용 사유 제한 개념이에요. 한국은 법에 이 개념을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임금이 더 높습니다. 그 이유는 불리한 단기 계약이니깐 임금을 더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도 비정규직을 꼭 필요할 경우에만 엄격히 고용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정규직을 채용하는 자리에 비정규직을 채용해서 온갖 불이익을 줄 수 있도록 합법화되었습니다. 또한 세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어요. 전체 직장인 중에 절반 이상, 900만 명 이상 비정규직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는 비정규직을 철폐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다른 나라 정규직만큼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박수)
동네 밴드의 하모니카 주자
사회자 :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박남준 선생님께 질문 드립니다. “동네 밴드에서 하모니카를 부르신다고 알고 있어요. 하모니카 실력이 어느 정도이신지 궁금합니다. 하모니카를 연주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느 학생 질문인가요? (학생 : 손을 듦.)
학생 : 있잖아요. 저는 그런 질문 안 했는데...
사회자 : 마지막 뒤에 질문은 제가 덧붙인 겁니다.(웃음) 저 친구 무서운 친구입니다.(웃음) 선생님 답변 바랍니다.(웃음)
박남준 : 제가 하모니카를 불게 된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농촌 지역입니다. 농산물을 도시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직거래 장터를 여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직거래 장터 관계자는 가수를 초청하려고 했습니다. 아이돌 스타가 아니라서 여러분들은 초청가수가 누군지 모르실거에요. 그래도 그 가수들은 한 때 아이돌 스타였겠죠? 정태춘, 박은호, 강산애, 장사익, 한영애, 전인권 이런 사람을 초청해달라고 섭외가 들어왔어요. 행사 비용이 얼마냐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이백만 원이라고 합니다. (웃음) 일박 이일로 사백만 원까지 쓸 수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한 사람 부르는데 이백만에서 삼백만 원 주고, 노래 서너 곡을 부르고 가버린다면 뭐가 즐겁겠느냐?’라고 생각했어요. 관계자에게 “문화를 만들어가는 창의적 자세로 바꿔라. 너희들이 밴드를 만들어라.”라고 했어요. 관계자들이 밴드를 만들었고, 저한테도 연습에 나오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내가 필요한가보다’라고 생각해서 통기타를 스쿠터에 싣고 연습실에 갔어요. 연습실에 도착 후에 밖에서 귀 기울여 보니깐 기타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어요. 저는 기타를 슬그머니 벗어서 창고 은밀한 곳에 놔두고, 연습실에 들어갔어요. 들어가 보니 잘 하더라고요. “보컬은 정해졌느냐?” 물어보니 오디션을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오디션을 봤지만 떨어졌습니다. 기타도 실력도 낮아, 보컬도 떨어져 … 너무 괘씸하더라고요. 제가 명상하러 간다고 이유를 대고, 집으로 갔어요. 그리고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생각해보니 ‘밴드라는 게 꼭 기타, 보컬 이런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것도 필요하지 않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그렇다고 거문고를 들고 갈 순 없고…오! 그렇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하모니카를 일주일 배운 게 있지?’(웃음) 그 생각이 문득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밴드에 연락해서 하모니카를 불렀습니다. 이러한 계기로 40년 동안 하모니카를 불었어요. 하모니카 없을 때에는 무대에서 내려 와야 합니다. 무대에 있기 위해서 탬버린을 치고, 카바사 등을 연주합니다. 가끔 도시에 나가서 색다른 악기를 구입해서 밴드 생활을 연명하고 있습니다. (웃음)
사회자 : 하모니카 갖고 왔나요?
박남준 : 안 갖고 왔습니다.
사회자 : 갖고 오셨으면 좋았을 것 같군요. (학생들 : 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