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고먼
신도서관학 5법칙
1)도서관은 인류를 위해 봉사하라
Libraries serve humanity
2)지식을 전달하는 모든 형태를 도서관 자료로 고려하라
Respect all forms by which knowledge is communicated
3)도서관 서비스를 향상시키기 위해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라
Use technology intelligently to enhance services
4)지식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수호하라
Protect free access to knowledge
5)과거를 명예롭게 여기고 미래를 창조하라
Honor the past and create the future
3장
사서의 시간
사서에게 물어보세요
─ 과장 이숙진
질문이 등록되었습니다
카톡!
자주 연락하는 지인들이 있는 방은 모두 무음으로 해놓아 잘 울리지 않던 휴대폰이 경쾌하게 울린다. 누구에게 온 걸까? 궁금해하며 확인한 카톡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보내준 알림이다. 누군가 ‘사서에게 물어보세요’에 질문을 올린 모양이다. 이번엔 어떤 질문이 올라왔을까?
‘사서에게 물어보세요’는 일반인들이 궁금해하는 지식과 학술정보에 대해 이용자가 해당 홈페이지에 질의하면 사서가 도서관 소장자료 및 온라인 정보자원 등을 활용해 답변해주는 서비스다. 질문을 받은 도서관은 정해진 기간 안에 답을 해야 하며 만약 처리가 어려운 경우 다른 도서관으로 답변 권한을 이관하는 ‘이첩’ 기능을 사용하기도 한다. 질문자는 담당 사서가 올린 답을 이메일로 통보받고 만족도 조사에 참여해서 답변에 대해 평가할 수 있다.
나는 우리 도서관 ‘사서에게 물어보세요’ 담당자다. 홈페이지에 질문이 등록되면 나에게 알림이 오고 답변을 할 것인지 이첩할 것인지 선택해서 처리한다.
우리는 동지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사서로서 영광스럽고 설레는 일이다. 그러나 객관적이고 검증된 내용의 답변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다. 어떤 질문이든 명료한 답을 위해 철저한 사전 자료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 과정에서 길게는 일주일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업무가 많거나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질문이 등록되었다는 알림을 받으면 ‘그냥 이첩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이용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것 또한 나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이며 답을 찾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많아 가능하면 이첩하지 않고 직접 처리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이번 질문은 꽤나 난감하다.
나는 ‘사서에게 물어보세요’ 관리자 화면을 띄우고 도서관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한 후 로그인을 누른다. 처리할 질문 목록에 글이 하나 올라와 있다. 보통은 원하는 자료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라 도움을 요청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는 주로 석·박사 학위 취득을 목적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의 선행연구 자료조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등록된 질문은 내가 생각했던 자료조사가 아닌 책 속 구절을 적어놓고 그 책의 제목이 궁금하단다. 그 내용은 이렇다.
Q. “못해서 포기하려다가 좋은 선생님을 만나 도움을 받으면서 의욕을 되살리는 경우이다. 나 역시 문과에서 이과로 바꾸면서 지구과학 선생님을 만나 열심히 잘하게 된 케이스에 해당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지구과학을 포기했는데, 3학년 때 다른 지구과학 선생님을 만나면서 가장 잘하는 과목으로 바뀌었다. 나뿐만 아니라 이 선생님한테 배운 애들이 다 그랬다.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아이들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동기가 된다”라는 구절이 있는 도서의 제목을 찾고 싶어요.
아, 이를 어쩐담! 난감한 나는 질문자가 올린 글을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본다.
‘저자를 아는 것도 아니고, 출판사를 아는 것도 아니고, 어쩌지? 그냥 이첩할까?’라고 고민하다 일단 G검색창을 열고 문장 속 구절 일부를 입력해본다. 그러나 검색 결과가 썩 도움이 되질 않는다. 이번에는 초록 창에 같은 구절을 검색해본다. 이 또한 별 도움이 되질 않는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꼭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긴다.
이번에는 범위를 좀 더 넓혀 더 긴 문장을 복사해서 초록 창에 붙여 넣은 후 검색 버튼을 누른다. 그런데 웬 블로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서둘러 클릭해보니 질문자가 올린 구절이 포함된 긴 글이 올라와 있다. 이건 무슨 글이지? 확인해보니 개인 과외를 홍보하는 글이다.
블로그 주인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인 모양이다. 블로그 주인도 질문자가 찾고 있는 책을 읽었을까? 그렇다면 글 속 어딘가에 책 제목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글을 읽어 내려간다. 그러나 장문 속 어디에도 책 제목은커녕 힌트조차 찾을 수 없다. 크게 좌절한 나는 지금이라도 이첩할까 고민했지만 애타게 책을 찾는 내 모습에서 질문자와 내가 이미 동지가 되었음을 인지한다. 얼마나 궁금했으면 ‘사서에게 물어보세요’에 글을 올렸을까. 이첩하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포기할 수 없다! 동지를 버릴 순 없는 일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블로그에 입력된 문장을 다시 읽어 내려간다. 저 긴 문장 속에 분명 힌트가 될 만한 중요 키워드가 있을 것이다. 나는 핵심 키워드를 찾기 위해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 보던 중 눈에 띄는 단어를 찾아낸다.
‘공부 상처’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끌림을 받은 나는 인터넷서점 사이트에 접속해 ‘공부 상처’를 검색한다. 결과물 두 번째 책에 김현수 저자의 〈공부 상처〉라는 책이 검색됐다. 느낌이 좋다. 그러나 확신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 책이 나와 질문자가 찾는 책인지 확인하려면 책 속에 질문자가 올린 구절이 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미리보기’를 눌렀지만 해당 구절을 찾을 수 없다. 이 책이 아닌 건가? 본문 일부만 제공하는 ‘미리보기’를 통해서는 확신할 수 없어 본문 전체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책을 보기로 한다.
이번엔 도서관 홈페이지에 접속해 우리 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는지 검색해본다. 있다면 당장 꺼내와 내용을 뒤져볼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 도서관이 아닌 다른 도서관에 소장 중이다. 당장 빌리러 가고 싶지만 코로나로 임시 휴관 중인 데다 이 일 말고도 처리해야 할 다른 일이 있다. 나는 해당 도서관으로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우리 도서관으로 책을 보내 달라고 요청한다. 며칠 뒤 책이 도착하고 나는 공공 근로 선생님께 해당 구절이 책 속에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한다.
유레카! 드디어 찾았다! 김현수 저자가 쓴 〈공부 상처〉가 맞았다. ‘제3장 공부 동기 발견하기’ 112페이지 중간 부분에 해당 내용이 있는 것을 확인한다. 왠지 모를 쾌감이 온몸을 감싸고 해냈다는 내적 기쁨이 차오른다. 오늘은 나에게 상을 줘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퇴근 후 집에서 홀로 맛있는 안주를 곁들인 축배를 들었다.
(중략)
저는 문과입니다만
도서관에서 일하다 보면 이용자에게 참 많은 질문을 받는다. 대부분은 즉시 답변이 가능한 즉답형 질문이지만 간혹 며칠 동안 자료조사가 필요한 연구형 질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어떤 형식이든 이용자들의 질문은 부담스럽고 신중해야 할 업무 중 하나다. 하지만 그 무게만큼 사서로서 자긍심을 갖게 한다.
위 사례처럼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질문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종종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내 전공 분야가 아닌 전혀 다른 분야의 질문이 그렇다. 이런 경우 차라리 이첩하는 것이 질문자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직접 답해주려고 노력한다. 사서는 이용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 도서관에 들어온 두 번째 질문이 그랬다. 자동차 관련 자료가 필요하다는 내용은 내가 전혀 접해보지 못한 분야였다. 특히나 나는 자동차에는 문외한이다.
Q. 자동차 전장(전기장비) 에너지 소모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차량 각 전장 부품에서 얼터네이터에 소모하는 전력의 수치가 필요합니다. 크게 질문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자동차 주요 부품의 전장에너지 소모량
주요 부품으로는
· 자동차 헤드라이트, 기타 전등장치, 파워스티어링, 팬, 히터, 그리고 기타 전기장비 소모량
가능하다면 단일 차량에 대한 소모량이면 좋고 불가능하다면 범용적으로 사용되는 전기장비의 전력 소모량이어도 될 것 같습니다. 수치는 전류 혹은 파워(와트 W)의 수치로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보기만 해도 진땀이 흐르는 글이다. 문과 전공자인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답변은 달아야 하는데 질문조차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얼터네이터’는 무엇이며 어디에 쓰이는 물건일까? 앞뒤 문장으로 추측해보건대 아마도 자동차와 관련된 듯하다. 일단 질문부터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다. 나름대로 해석한 결과 질문자는 자동차 부품별 에너지 소모량을 알고 싶은 모양이다.
관련 논문이나 학술지가 있는지 찾기 위해 RISS학술연구정보서비스와 DBpia학술연구를 위한 플랫폼 서비스에 접속해서 ‘자동차’, ‘부품’, ‘자동차얼터네이터’ 등 키워드를 입력한 후 검색해본다. 그러나 도움이 될 만한 자료가 없다. 이번엔 인터넷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해 도움이 될 만한 자동차 관련 사이트를 추려본다.
‘자동차 부품’으로 검색해보니 ‘자동차부품연구원’이라는 기관이 검색된다. 해당 기관 사이트에 접속해서 여기저기 뒤져보지만 별 수확이 없다. 여기라면 분명 자료가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못 찾는 것인가 싶어 전화를 걸어보니 본인은 잘 모르겠고 내용을 알 만한 직원을 연결해주겠단다. 자동차 부품 전문가로 추측되는 직원에게 사정 설명을 하고 도와줄 수 있는지 물으니 그 직원도 영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어쩔 수 없이 참고할 수 있는 사이트 몇 군데를 검색해 링크를 걸어주는 선에서 답변을 올린다.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해 죄송스럽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찾아보지 않았을 분야로 다양한 국내 자동차 관련 연구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회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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