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협동조합의 의미와 형태
오늘날 협동조합은 일반적으로 철학과 종교처럼 정확한 정의를 거부하는 용어이다. 협동조합을 주제로 책을 쓰는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정의를 내리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도 협동조합으로 간주되는 모든 것을 논쟁의 여지 없는 단 하나의 공식 안에 넣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다양한 특징을 가진 여러 단체와 협회가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대부분 자유를 얻기 위해 동지 의식으로 견고해진 역사적 연결고리뿐이다. 더 나아가 그들은 사업을 위해 서로의 규칙을 빌려 썼다. 그러나 닮은꼴은 거기까지이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제과점과 필요할 때 노동자를 고용하는 빵 소비자들로 구성된 결사체가 소유하고 통제하는 제과점 사이에서 실질적 유사점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근대 협동조합의 조국인 영국에서는 이러한 사업 형태를 모두 협동조합으로 간주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초창기에 개인 고용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동자들이 만든 모든 기업에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로, 자신들이 고용된 산업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설립하려는 노동자들의 시도를 의미하기 위해 쓴 협동조합이라는 단어는 유통과 생산을 위한 소비자들의 결합을 뜻하는 보다 보편적인 현대 용어보다 시기적으로 분명히 앞서있다.
훗날 매우 유명해진 로치데일 방직공들이 ‘공정선구자조합’을 위한 계획을 세울 때 조합은 생산 능력이 있는 조합원이 운영하는, 즉 일종의 노동자생산조합인 오언주의 공동체로 발전해야 한다는 의도로 시작했다. 협동조합이 공동 노동 사업 형태여야 한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고 기독교 사회주의자들도 이러한 생각을 품고 지지했으며 영국과 몇몇 국가에는 아직도 이 생각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웨덴에도 건설 노동자, 재단사, 농장 노동자, 미용사 등 기능 보유자들이 공동 기업을 목표로 시작한 사업들이 여전히 있고 그들은 자신들의 조직에 공식적으로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을 쓴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는 한, 일반적으로 대중들은 ‘협동조합’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 분명 힘들 것이다.
전에 우리는 협동조합의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면서 “협동조합은 참여하는 사람이 재화와 용역에 대해 갖는 직접적인 이해관계에서 발생한 경제 체제이다. 이는 가정 경제 발전 또는 자신의 고용을 목적으로 이러한 조합이 펼치는 사업과 활동을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설립한 자유로운 사업 형태를 취한다. 협동조합의 반대말은 영리를 추구하는 경제 주체로서, 소유자가 재화의 생산과 유통을 단순히 자신들의 이익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방식으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이 정의는 협동조합의 원동력을 구성하는 경제적 이익을 특히 강조하는 점에서 다른 정의와 다르다. 진정한 공동체 생활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그만큼 많은 것을 요구한다. 만약 우리가 협동조합 운동의 지지자들이 무엇을 성취하는 데 전념하는가에 촉각을 세우거나, 협동조합의 적절한 형태와 구조에 대한 다양한 생각에 관심을 가지거나, 또는 다른 관점에서 협동조합을 정의하고자 한다면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런저런 비평가들이 모두가 따라야 하는 패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업주를 움직이게 만드는 경제적 이익이 조만간 곧 모든 제약과 오해를 극복할 것이다.
위에 제시한 정의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다른 정의보다 더 근본적인 관점을 담았다. 이미 언급한 과거 협동조합의 잡다한 예를 최대한 포함해 정의하더라도, 노동자생산조합과 같이 스스로 협동조합이라 말하는 여러 단체는 이 정의에 들어맞기 어려워 보인다. 역시나 과거에는 협동조합으로 인식되었던, 소규모 독립 고용주 또는 사업가가 조직한 ‘판매’ 조합 중에는, 지금 우리도 알다시피, 저자가 제시한 공식에 들어맞다고 볼 수 없는 조합이 많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전통적이지만 비과학적이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용어에 계속 집착하기보다는 다른 모든 종류의 사업과 완전히 구별되는 사업만 따로 모아 하나의 카테고리를 만드는 게 낫다는 데 모두들 동의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업주의 관심이 본래의 진정한 경제적 목적에 집중된 기업에만 협동조합이라는 지위를 부여할 수 있다. 오늘날 이러한 경제적 목적은 예상 밖으로 대부분 가정의 식료품 공급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식료품 공급에 기여했던 사업은 오로지 투자 수익을 소유자에게 제공하는 데 전념한다. 이러한 사업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의 본질은 소유자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소유자의 목적대로 협동조합에 이익이 생기면 조합은 의무를 다한 것이고, 이익이 많을수록 사업은 더욱 만족스러워지는 것이다.
추상적인 경제학 관점에서 볼 때, 협동조합 형태의 사업과 영리를 추구하는 일반 기업 사이의 대립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진정한 자유 경쟁이 가능하기만 하면, 경쟁업체보다 고객의 요구에 더 잘 부응하거나, 규모를 키우면 이익을 낼 수 있다. 이익을 내기 위한 노력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거나 삶을 더 쉽게 지탱하는데 필요한 재화와 용역이라는 부산물을 낳는다. 석탄 가스를 생산할 때 부산물인 코크스가 나오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그러나 자유 경쟁 속에서도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을 통해서나,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하는 제품에 직접적인 관심을 갖고 설립된 기업을 통해서나 인간의 욕구를 동등하게 만족 시키리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이론적으로는 각 기업이 갈등이나 불필요한 노동력 사용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최고의 경제 성과를 이루는 데 집중한다면, 인간의 욕구를 동등하게 만족 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유 경쟁은 절대 진정으로 자유롭지 않다. 장애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 기업이 작은 규모로 시작해 영향력 있는 주요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인간의 타고난 타성은 두 가지 방식의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 새롭고 진보적인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필요한 경험과 능력을 제공하는 것에 수동적으로, 때로는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새롭고 진보적인 기업이 생산하거나 공급하는 재화의 장점에 대해 열심히 문의하거나 알아보는 일에 아주 느리다. 새로운 투자 자본은 상당한 매당금을 보장하는 일반 영리 기업에만 흘러들어 가는데, 배당금을 많이 주면 사업과 재정이 좋아질 리 없다. 피고용인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이는 신생 기업에게는 더 심각한 장애물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소비자가 다양한 물품을 비교 평가하는 능력은 극히 제한적이다.
특히 이 마지막 사실 때문에 허황된 설명으로 열등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이 상당히 많은 이익을 남긴다. 이는 어떤 형태로든 유용한 공공서비스를 통해 만들어지지 않은 엄청난 배당금을 기업의 소유자가 챙기는 현대판 도둑질이다.
협동조합 형태의 기업은 대부분 자유 경쟁의 황금기라 불리는 시기에 탄생했다. 경쟁주의는 법적으로나 일상생활에서나 허용되었다. 이익을 얻기 위한 투쟁이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면 모든 일이 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소비자협동조합이 탄생한 가장 주된 동기는 영리 상인들이 물건의 품질과 무게, 크기를 심하게 속인 데 대한 반발심이었다. 공개적인 자유경쟁의 장에서는 가격이 최대한 낮아질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소매업은 그렇지 않았다. 예를 들어,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격을 낮춰 더 많은 거래에 자유롭게 입찰할 수 있었을 텐데 빵과 밀가루 가격은 우습게도 아주 비싸게 유지되었다. 이런 상황은 물품 그 자체와 실제 비용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사업이 등장하고 나서야 확실히 개선되었다. 다시 말해 협동조합 덕분에 경쟁이 공동체 전체에 훨씬 더 유익해졌다.
그러나 현대에 새로운 요소가 등장해, 재화와 용역을 더 잘 공급하지 않으면 이익을 얻을 수 없다는 의견이 이론적으로도 더 이상 효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독점 형성과 발달이다. 일부 특정 생산 분야가 트러스트로 독점되면서 제조와 조직 개선만으로는 더 이상 이익과 판매 증가 그리고 사회적으로 유익한 발전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트러스트화된 산업에서는 생산된 상품이 어라만 중요한 필수품이냐에 따라 기업의 규모가 달라지고, 그래서 판매가를 올려도 소비가 줄지 않는다. 어떤 상품을 완전한 독점 체제에서 제조할 때 경제활동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두 가지 요소, 이익과 재화와 용역에 대한 직접적 관심 사이에 극명한 차이가 생긴다. 이 차이는 단순히 물질적인 데 그치지 않는다. 이는 물질적인 것과 대응 관계에 있으면서 그만큼 중요한 내적인 면을 갖는다.
돈을 예로 들어보자. 모두들 알다시피, 돈은 그저 유용한 재화와 용역의 대체용품에 불과하다. 통화의 주요 관리자인 정부는 유통되는 재화 이상으로 통화를 늘려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돈은 여전히 훌륭한 대체용품으로 활용되고 그 유용성 덕분에 선호의 대상이 된다. 돈은 다루기가 더 간편하고, 일반적인 상황에서 판매하거나 구매하는 모든 재화와 용역의 지불 수단으로 쓰인다. 그래서 돈이 정말 소중하고 가치 있는 상품이라는 오해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공급 물품이 본격적으로 부족해지기 전인 제1차 세계대전 초기와 그 이후, 돈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민간 기업의 이익이 정부나 지방자치기관과 마찬가지로 겉보기에는 엄청나게 부풀려지고 확대되었을 때, 돈이 소중하고 가치있는 상품이라는 인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잊을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재화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가치를 매길 수 없게 되면서 곤경에 빠졌다. 돈이 가치의 영원하고 진정한 보고 또는 수단이며 재화와 용역은 가변적이고 우발적인 것이라는 대중의 믿음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 기간과 전후 2년 동안 수많은 재정적 어려움이 생겨난 것이다.
현대 경제 조직 특유의 구성으로 인해 이윤 추구가 민간 기업 대부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이 사업가의 이윤 추구 욕구를 자극했고, 이제는 영리 추구가 모든 경제 활동의 진정한 목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점점 더 많은 기업가와 자본가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되면, 거래 방식에도 같은 생각이 반영될 것이다. 어디에서나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정치 세계에서도 이와 같은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의회와 독재자가 채택한 대부분의 경제 조치 때문에 사업가의 이익이 다른 어느 것보다 중요해진다. 특히 이러한 성향은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칭하는 당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사업가와 제조업자는 관세와 수입 규정, 강제 카르텔, 창업 금지 등 여러 수단으로 경쟁에서 보호받고 관례적인 이익을 보장받는다. 정부는 상업이나 제조업에 종사하는 개인 사업을 징발해서 그의 자리를 차지할 때에도 변함없이 사업주와 사업주의 이익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세상에 그 어떤 유한 기업이나 개인 기업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처럼 죄책감 없이 소비자나 생산 노동자를 억압한 적이 없다. 1935년 소련은 협동조합 운영진과 단 한 차례 토론도 하지 않고 모든 도시 협동조합을 문 닫게 하고 협동조합의 자산과 활동을 정부에 넘기라고 명령했다. 소련은 국가의 생산 경영 관리 방식을 비난하거나 국가보다 더 나은 방식일 수 있는 소비자협동조합을 더 이상 허가하지 않기로 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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