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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라는 시험
매년 11월은 수험생의, 수험생을 위한 달입니다. 호박엿이나 찹쌀떡처럼 ‘척 달라붙는’ 간식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동안 고등학교 식단에서는 미역국이 빠지고, 부모들은 ‘떨어진다’나 ‘미끄러진다’ 같은 말들을 삼가기 시작하지요. 한편 어떤 이웃들은 “집안에 고3이 있으니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은 자제해달라”는 터무니없는 요구에 고개를 끄덕여주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특별대우입니다.
이런 특별대우는 대체로 11월의 세 번째 목요일에 이르러 정점에 달합니다. 수험생을 주변인으로 두지 않은 사람들조차 그 영향을 체감할 정도지요. 경찰차들은 지각한 수험생들을 시험장까지 실어다주느라 도로 곳곳을 누비고, 주식시장과 은행은 한시간씩 늦게 열립니다. 영어 듣기평가 시간에는 착륙을 미루는 비행기들이 허공에서 빙빙 돌고요. 그렇게 시험이 끝나면 국어 영역의 어떤 지문이 어려웠느니, 평가원장이 수학 난이도 조절 실패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느니 하는 기사들이 올라오고 다양한 가게들이 일제히 할인 이벤트를 시작합니다.
고등학생을 위한 시험이 명절만큼이나 중차대한 연례행사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 어른들마저도 시험의 내용에 곧잘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이 나라 청년들의 대학 교육 이수율이 69.6%로 OECD 국가 평균인 47.2%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을 떠올려봅시다. 한국은 입시와 대학교 졸업이 보편적인 발달과업인 나라고, 이 발달과업의 성적표는 곧잘 평생의 소득과 인간관계를 결정합니다. 청소년들은 ‘서연고 서성한’으로 시작되는 대학 서열을 외우고 자신의 백분율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질서를 내면화하지요.
따라서 수능이란 청소년을 한국인으로 완성시키는 관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 관문을 통과하는 여정은 힘겹다 못해 고통스러울 정도이며, 그만큼 강렬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 십수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수능을 망치는 꿈에 시달리다가 깨어나는 사람들이 여럿이지요. 입시가 화두에 오르면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여는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조차 입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지금처럼 수능 제도 자체가 뜨거운 감자가 된 시대에는 언제 어디서든 난상토론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한번 이야기가 시작되면 정시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느니, 그게 아니라 정시에도 내신을 반영해야 한다느니, 수능 자체에 대해서라면 수학을 쉽게 내야 한다느니, 수능 영어는 실제 영어와는 거리가 멀다느니 하는 말들이 금방 뒤섞입니다. 그런데 이런 논의가 문제의 핵심에 가닿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개는 수능이라는 시험의 형태를 포착하는 데서부터 어려움을 겪지요. 사람들이 알고 기억하는 입시가 세대별로 천양지차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 안에서도 과목에 따라 주목도가 갈리고요. 교사일지라도 담당 분야가 아니라면 실태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입시로부터 한참이나 멀어진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혹시 올해 수험생들이 탐구 영역을 몇 과목 응시해야 하는지, 수학 영역의 교과범위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국어 선택과목‘언어와 매체’·‘화법과 작문’의 차이는 무엇인지 알고 계신가요? 교육열이 강한 학부모가 아니고서야 이런 질문에 곧장 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2020년대 이전에 수능을 쳤다면 국어가 선택과목제로 바뀌었다는 사실부터가 낯설 테고, 특히 2010년대 이전에 수능을 쳤다면 요즘 학생들이 탐구를 딱 두 과목만 본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993년도에 첫선을 보인 후로 여러차례 그 형식과 내용이 바뀌어왔고, 그에 따라 사교육 환경도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스타 인터넷 강사들이 ‘족집게 과외 선생님’의 위상을 꿰찼고, 재수학원계의 1인자였던 종로학원은 대성학원에 밀려났지요. 대성학원은 다시 시대인재학원에게 왕좌를 넘겼고요. 한편 ‘평가원과는 출제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풀어봤자 시간 낭비’라는 평가를 듣던 사설모의고사들은 2010년대 중후반을 지나오면서 수능 준비의 핵심 도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의 경험은 이런 역사의 한 페이지에 멈춰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수능의 타락을 논하려면 페이지를 차례대로 넘겨 현재를 바라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장에서는 입시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설명하고 2020년대의 수능이 어떤 시험인지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본고사에서부터 수능의 타락까지
수능 이전에는 학력고사가 있었고, 학력고사 이전에는 예비고사와 본고사가 있었습니다. 각각의 제도는 폐단을 타파하려는 혁신적 시도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낡은 것으로 변해왔지요. 그 흐름을 순서대로 짚어보겠습니다.
1960년대 이전은 대학들이 본고사만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던 시기로서, 대학교 입학처에 무조건적인 자율권이 주어졌습니다. 수험생들로서는 채점 기준이 무엇인지, 면접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시험은 얼마나 중요한지 정확히 파악할 길이 없었지요. 당연하게도 이 시기의 가장 큰 폐단은 소위 ‘뒷문 입학’이었습니다. 당연히 합격하리라 생각했던 사람이 낙방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사람이 대학 캠퍼스에 들어와 있기 일쑤였으니까요. 예비고사는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예비고사는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신입생 선발에 예비고사 성적을 일차적으로 반영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최소한의 자격선을 마련한 것입니다.
하지만 대학에 가기 위해 시험을 두 번씩이나 보아야 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비고사는 암기형 지식을 묻는 시험이었던 반면 본고사는 논술형 시험의 성격이 강했다는 점에서, 당시 학생들은 내용 면에서나 형식 면에서나 갑절의 부담을 졌던 셈입니다. 한편 1974년을 기점으로 고교 평준화가 이루어지면서 과도기적인 모순이 발생했다는 사실도 유념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공교육 현장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할수록 사교육이 힘을 얻기 마련입니다. 이런 불신 풍조에 대해 1979년 『경향신문』 기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학력차가 심한 학생들을 무작위로 뽑아 한 반에 수용함으로써 (…) 교사들은 학습 수준을 어디에다 맞추어야 할지 당황하게 되고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학교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된다. (…) 우등생은 우등생대로 학교 공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과외 공부에 몰두하게 되고, 열등생은 열등생대로 뒤떨어진 학습 수준을 따라가기 위해 과외를 하게 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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