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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핀랜드
눈에 보이지 않는 사제가 쌀알 한 움큼을 흩뿌리고 있기라도 하듯, 차디찬 빗방울이 체에 거른 가루처럼 후드득 떨어진다. 빗방울이 닿은 곳마다 표면이 오돌토돌한 얼음 알갱이가 맺힌다. 가로등 아래서 바라보면 아름답기 그지없다. 은빛 요정 같네. 콘스턴스는 생각한다. 그러고 나면 이런 생각이 뒤따른다. 자신은 너무 쉽게 매혹당하는 사람이라는 생각. 아름다움은 일종의 환상이다. 또한 일종의 경고다. 아름다움도 독나비처럼 어두운 이면을 간직하고 있는 터다. 그러니 텔레비전 뉴스에서 이번 얼음 폭풍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겪게 될 것이고 또 이미 겪고 있다고 하는 위협과 위험과 비탄에 대해 생각해야만 한다.
이완이 하키와 축구 경기를 보겠다고 산 텔레비전은 평면 고해상도 화면을 탑재하고 있다. 콘스턴스는 수상한 오렌지빛을 발하는 사람들이 잔물결처럼 일렁였다가 어슴푸레 옅어지기 일쑤였던 옛날의 흐리흐리한 화면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고해상도 화면으로 보면 더 별로인 것들도 있지 않은가. 모공, 주름, 코털, 그리고 바로 두 눈 앞으로 덮쳐드는 비현실적으로 새하얀 치아. 현실 속 자기 모습을 도무지 무시할 수 없게 하는 그런 것들을 보면 콘스턴스의 마음에는 불쾌감이 인다. 마치 본의 아니게 타인의 욕실에서 오목한 확대 거울 역할을, 좀처럼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 그런 거울 역할을 수행하는 느낌이다.
다행히 일기 예보를 전하는 기상 캐스터들은 화면에서 멀찌가니 물러서 있다. 그들은 1930년대 휘황찬란한 영화에 등장하는 종업원 혹은 영성 도우미를 공중 부양시키기 직전의 마술사처럼 지도를 꼼꼼히 살피면서 커다란 손동작을 해 보인다. 보십시오! 엄청난 흰 구름 기둥이 대륙을 휘감고 있습니다! 얼마나 거대한지 한번 보십시오!
기상 캐스터는 이제 스튜디오 바깥 상황을 알린다. 차들이 앞 유리 와이퍼를 좌우로 부지런히 움직이며 힘겹게 천천히 전진하는 동안 현장에 나가 있는 젊은 두 리포터는 투두둑투두둑 빗방울을 받아 내는 우산 아래에서 몸을 움츠린다. 한 명은 여자이고 한 명은 남자인데 둘 다 검은 파카를 입고 회백색의 모피가 얼굴을 후광처럼 동그랗게 감싸는 모자를 쓰고 있다. 두 사람은 들떠 있다. 이런 광경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아직 너무 어리니까. 곧이어 자동차 다중 충돌 사고, 어느 주택의 일부를 완전히 깔아뭉개며 쓰러진 나무, 얼음 무게를 못 이기고 축 늘어진 상태로 타다닥 소리를 내며 매섭게 명멸하는 전깃줄, 진눈깨비로 뒤덮인 채 줄줄이 공항에 발이 묶인 비행기들, 트레일러 부분이 전복된 채 도로에 엎어져 연기를 내뿜고 있는 대형 트럭 등을 담은 온갖 재난 현장이 송출된다. 현장에 출동한 구급차와 소방차, 방화복 차림으로 어수선하게 떼 지어 모인 대원들이 보인다. 누군가가 다쳤다. 언제 봐도 심장 박동을 가속하는 광경이다. 얼음 결정으로 수염이 새하얘진 경찰이 화면에 등장하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모두 실내에 머물러 달라고 청한다. 심각한 상황입니다. 경찰이 시청자들에게 말한다. 이 태풍에 맞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찌푸린 눈살과 서리로 뒤덮인 눈썹이 마치 1940년대 전시戰時에 전쟁 채권을 홍보하는 포스터 속 인물의 얼굴처럼 장엄하다. 콘스턴스는 그때가 기억난다고, 기억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저 역사책이나 박물관 전시품이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본 광경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기억 하나하나에 정확한 표식을 달기가 적잖이 어려울 때가 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약간의 파토스를 자아내는 광경이 펼쳐진다. 반쯤 얼어붙은 몸에 어린아이의 분홍색 낮잠용 담요를 두른 동네 강아지가 화면에 잡힌다. 온몸이 얼음장이 된 아기가 있었다면 그보다 더한 파토스를 자아냈겠지만 아기가 없으면 강아지로 대신하면 된다. 젊은 두 리포터는 아이 귀여워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여자는 비에 흠뻑 젖은 꼬리를 맥없이 흔드는 강아지를 쓰다듬는다. 남자가 말한다. “운이 좋은 녀석이구나.” ‘너였을 수도 있었어, 착하게 살지 않았으면 너만 구조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라는 속마음이 내포된 말이다. 남자는 카메라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엄숙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하지만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내는 자의 들뜸이 역력하다. 이제 더 많은 일이 벌어질 겁니다. 그가 말한다. 이번 폭풍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으니까요! 대체로 그렇듯 시카고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계속 상황을 주시해 주십시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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