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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파르나스 묘지
장미와 함께 잠들다
푸른 문의 종소리
그때, 느닷없이 종이 울렸다. 종소리는 내 몸 바로 앞에서, 옆에서, 아니 지금까지 걸어온 발걸음 뒤, 지치고 메마른 영혼의 바닥을 치고 울리듯 돌발적이었다. 몽파르나스 타워를 등지고 아카시아 꽃잎 눈처럼 하얗게 떨어진 에드가 키네 대로를 느리게 걸어가고 있던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그곳이 어디든 종소리와 마주치면 나는 헛것에 홀리기라도 한 듯 눈이 멀어 길을 잃곤 했다. 경주 계림의 고택故宅에 누워 있다가도 분황사에서 종소리가 울리면 대릉원과 황룡사 터를 한달음에 내달려 석양빛 경내로 들어서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센강에서 한참 멀어졌다가도 노트르담 대성당의 저녁 미사 종소리에 자석처럼 이끌려 발길을 되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종소리를, 태초의 종소리처럼 듣고 있었다.
행복도 하지, 기운찬 목청을 가진 종鐘
늙었지만 날쌔고 튼튼해
경건한 소리로 충성스레 외친다.
밤을 지키는 천막 아래 파수꾼처럼!
아, 그런 내 넋은 금이 갔다, 답답할 때
그 노래 차가운 밤공기에 펼치려 해도
그 목소리 번번이 맥이 빠져서
― 샤를 보들레르, 「금간 종」, 『악의 꽃들』
종은 울리지 않았다. 종소리의 환청을 일으킨 종은 돌기둥에 매달려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그 옆 푸른 철문이 영원의 피안으로 길을 내듯 내 앞에 활짝 열려 있었다. 나는 선뜻 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뒷걸음치는 아이처럼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어디를 향해 가다가도 나는 자주 제자리에 서서 머리 위의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등 뒤에 이어진 길을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뗄 때는 나도 모르게 시계를 보았다. 8월 15일 오후 3시. 머리 위에는 온통 아카시아 나무가 푸른 줄기를 힘차게 펼치고 있었고, 등 뒤에는 56층의 몽파르나스 타워 빌딩이 검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발밑에는 아카시아 꽃잎이 눈처럼 하얗게 떨어져 있었다. 이 길, 나는 언젠가 한 번, 아니 여러 번 지금처럼 이 길을 지나갔었다. 청춘 시절, 8월 어느 날 오후 6시, 그때 처음 나는 이 자리에 서서 종소리를 들었다.
라스파유 대로 몽파르나스 묘지 입구 전경 |
몽파르나스 묘지 입구의 종 |
종소리와 함께 푸른 문은 닫혔고 그 후 하루가, 아니 1년이, 10년, 20년, 세월이 유유히 흘렀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었다. 오후 3시에서 6시 사이, 햇빛 쏟아지는 저 푸른 문 안으로 들어서면 문학예술의 황금시대에 이르게 되는 것인가. 샤를 보들레르와 사뮈엘 베케트,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그리고 새롭게 합류한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수전 손택이라는 문학의 영토에.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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