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아신스
― 이상희 시인에게
원주에 둥지 틀고 사는 후배 시인이
코로나 확산세 뚫고
히아신스 한 다발을 보내왔다.
비닐 옷 벗기고 꽃병에 담아 탁자에 올리자
바로 이때다!
꽃들이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내쉬는가,
확 터지는 향기, 정신이 어찔어찔.
발코니 창문을 열어줘도
나갈 염을 않는다.
가만, 발코니에 내놔야 할까 보다.
꽃병에 손을 내밀자
꽃들이 손대지 말라는 듯 허리를 고쳐 세운다.
‘지금 우리는
단 한 번 주어지는 한창 삶 살고 있어요!’
단 한 번 주어지는 한창 삶이라?
이제는 너무 멀어져서 도통 희미하지만
나에게도 그런 게 있긴 있었겠지.
히아신스에겐 그게 바로 지금이군,
심호흡을 한다.
매해 몇 번 만나는 국화 향기,
잘 씻긴 하양이나 노랑이라면
히아신스 향기는 무게 살짝 입힌 은빛.
찬찬히 허파에 넣는다.
감각들이 바빠진다.
다시 심호흡을 한다.
허파꽈리들이 무겁게 열렸다 닫히고
숨에 무게가 실린다.
그 누군가가 한창 삶 사는 걸 건드리지 않는 일은
이 우주에 몸 담고 있는 모든 동승자의 도리가 아닐까.
단 사과
안동 다녀오는 길에 문경에 들러
가을빛 환한 사과밭에 간 적 있었다.
맛보기로 내놓은 두어 조각 맛보고 나서
주이인의 턱 허락받고
벌레 먹었나 따로 소쿠리에 담긴
못생긴 사과 둘 가운데 하나 집어 들고
한입 베어 물었지.
입에 물린 사과,
입꼬리에 쥐가 날 만큼 맛이 진했어.
베어 문 자국을 보며 생각했지.
사과들이 모두 종이옷 입고 매달려 있었는데
이놈은 어떻게 벌레 먹었을까?
주인 쪽을 봤지만
그는 다른 고객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어.
혹시 이 세상에서 진짜 맛 들려면
종이옷 속에서 벌레를 불러들일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제 몸 덜어내고
벌레 먹은 과일 소쿠리로 들어가야 하는가?
초가을 볕이 너무 따가웠다.
상자 하나를 차에 실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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