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 심사
천국은 외국이다. 어쨌든 모국은 아니다. 모국은 우리나라도 한국도 아니다. 천국에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입국할 때 모든 엄마를 버려야 한다. 모국을. 모국어를. 모음과 자음을 발음하는 법을. 맘-마음-맘마를. 먹으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밥그릇을. 태어나고 길러진 모든 습관을.
살아가며 했던 모든 말이 적힌 책을 찢어 파쇄기에 넣는다. 나풀나풀 얇은 가루가 된 종이를 뭉쳐 날개를 만든다. 날개를 달면 거기 적혔던 모든 말을 잊어버린다.
날고 싶은 방향으로 날아간다.
그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된 사람들은 천사를 보았다 말하겠지만
천국의 주민들은 천사라는 단어를 모른다.
그것은 깃털의 일부가 되었을 따름이고 다른 단어와 같은 무게를 지녔다.
때로는 아무것도 버릴 게 없는 경우도 있다. 가진 게 없거나 이미 버리고 온 사람들.
울지 않는 아기. 비쩍 마른 노인. 머리가 산발이 된 여자.
버릴 게 생기면 다시 오세요.
천국은 그들의 머리를 떼어 지상으로 힘껏 던진다.
비가 오려나.
어떤 사람이 물방울을 맞았다.
그날 비는 오지 않는다.
그래서 한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
물방울을 맞은 사람이 낳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천국에 갈 것이고 이 시도 파쇄기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시를 쓸 것이다.
많이 쓸 것이다.
오늘의 구름은 양떼구름
외국에서는 물고기의 비늘이라고 부른다.
그래, 천국에서는 하늘과 초원과 바다가 섞여 있지만
그래도 양과 물고기는 있다.
양몰이 개와 그물은 없다.
동반자
사랑 기계에 두 사람을 넣었더니 두 사람은 한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상대방은 어디 갔나요.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갸웃한다. 상대방은 어디 갔나요. 내가 다시 묻자 그는 이번엔 고개를 젓는다. 상대방은 어디 갔나요. 내가 또다시 묻자 그는 이번엔 고개를 끄덕인다. 상대방은 어디 갔나요. 내가 마지막으로 묻자 그는 나를 가만히 응시할 뿐이다.
그는 말이 없었다. 씻기도 하고 밖에 나가기도 했지만 밥을 먹지 않고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의사에게 데려갔다. 그가 말하지 않아서 상담은 무산되었고 그는 안정제를 처방받았다. 그는 처방받은 안정제를 그날 밤 모두 삼켰고 그날 새벽 그대로 토했다.
나로서도 실험체가 사라졌으니 곤란한 일이라 그동안 사랑 기계를 분해하고 재조립해보기도 했다. 약간의 검은 찌꺼기가 나왔는데 기름때였고 작동에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었다. 사라졌을 리는 없으니 가능성은 단 하나겠군. 나는 외출을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온 그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당신과 합쳐진 것 같아요.
그는 단숨에 물을 한 잔 마시고 또 한 잔을 더 따라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선 허공을 보고 물었다. 왜요?
왜라니, 무슨 의미죠?
내가 되묻자 그는 이번엔 나를 보고 물었다.
왜 그가 아니라 내가 남았나요?
그건 당신이 더 잘 알겠죠.
내가 말하자 그는 다시 허공을 바라보았고 리듬 없이 물잔을 두드리기도 하다가 눈을 감았다. 그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뭘 하고 왔나요?
사랑이요.
사랑 기계에서 말고요. 왜 외출했죠?
그를 찾으러 갔어요.
어디로?
온 세상을 돌아다녔어요.
사랑 기계에는 두 사람 이상이 들어가야 합니다만…… 당신이 그와 합쳐진 상태라면 혼자 들어갈 수도 있겠군요. 나는 사랑 기계의 문을 열었고 그는 어떤 고갯짓도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문을 닫고 동작 버튼을 눌렀다. 며칠이 지나도 몇 달이 지나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새벽에 이따금 사람이 우는 소리를 듣고 깼는데 깨고 나서 가만히 들어보면 동네의 고양이가 내는 소리를 착각한 것 같기도 했다.
일 년째 되는 날 나는 사랑 기계를 분해했다. 저번에 분해했을 때보다 검은 것이 더 끼어 있었지만 역시나 결함이 생길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부품들을 깨끗이 소독하고 다시 사랑 기계를 조립하려 하는데 조립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보관해두었던 도면을 꺼내 펼쳐봤지만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기계가 있던 자리에 무덤처럼 쌓인 부품들을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혹은 할 말을 다 잃은 사람처럼 가만히 응시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