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안개 속에 싸인, 가리어진 길
21세기 한국의 인구위기:
너무 많이, 너무 빨리 줄어들고 있다
21세기 한국의 인구변화는 감소 규모나 속도 면에서는 14세기 흑사병 이후 유럽의 인구감소와 비견될 만하다. 최근 발표된 2023년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의 중위 전망이 실현되는 경우, 한국의 인구는 2072년까지 약 30%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진 14세기 유럽의 사례에 비해서는 약간 느린 감소세이지만, 흑사병 이후에는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가파른 인구축소의 사례가 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통계청의 가정과 달리 2026년 이후 출산율의 반등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한국의 인구는 기존 예상보다 더 빠르게 감소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앞서 소개한 〈뉴욕타임스〉 칼럼은 한국의 인구가 2060년대 말까지 3,500만 명 아래로 감소할 것이고, 이러한 인구축소가 한국 사회를 위기에 빠뜨릴 것으로 진단했다.
그렇다면 인구감소는 왜 문제가 될까? 〈뉴욕타임스〉 칼럼이 가장 먼저 우려한 것은 한국의 안보위기이다. 아직 비교적 출산율이 높은 북한에 비해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면서 충분한 병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이는 북한의 남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부정적인 경제적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상당수의 경제학자와 기업인은 어느 정도 규모의 인구를 보유해야 충분한 국내 수요를 유지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기 위해 최소 인구 5,000만 명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많은 인구가 기술혁신에 유리하다는 주장도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다. 예컨대 덴마크의 저명한 개발경제학자 에스테르 보저럽은 인구증가가 기술 진보를 촉진하는 요인임을 주장하였다. 이 이론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의 개발에 최소한의 수요가 전제되어야 하므로 많은 인구는 신기술 개발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대규모 인구는 기술 확산에도 도움이 된다. 게다가 인구성장은 기존 자원을 고갈시켜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의 출현을 촉진할 수도 있다.
그러면 어느 정도 규모면 충분할까? 한국이 적어도 5,000만 인구를 유지해야 한다고 보는 근거는 무엇일까? 왜 4,000만 혹은 3,000만 명이 되면 곤란한가?
이 질문은 한 국가의 ‘최적 인구’에 관한 논의와 연결되어 있다. 특정한 국가에서 가장 적정한 규모의 인구가 몇 명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경제학이나 경제지리학에서는 일반적으로 부존자원, 자본량, 기술수준 등이 주어져 있을 때 1인당 소득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인구 규모로 최적 인구를 정의한다.
이론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 크기를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목표로 하는 바를 1인당 소득이 아닌 국민의 종합적인 후생으로 설정한다면, 최적 인구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우선 고려할 사항은 사람들의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가 다양하며, 각각에 적합한 인구 규모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경제적으로 가장 적합한 규모의 인구와, 환경에 최적인 안구의 규모가 같을 수 없다. 사람들의 선호도 제각각이다. 물질적인 생활수준을 우선시하는 사람도 있고, 좀 가난하게 살더라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쾌적하게 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선호를 반영하여 최적 인구를 결정할 수 있을까? 국민의 후생을 결정하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해 적절한 가중치를 부여하여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는 이론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최적 인구 개념이 적정한지 혹은 유용한지도 의문이다. 즉 이 이론에서 주어졌다고 가정하는 자본이나 기술수준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구 규모에 맞게 최적으로 바꿀 수 있는 요인이다. 사실, 인구 규모를 바꾸는 것보다 자본량과 기술수준을 바꾸는 편이 더 쉬울 수 있다. 따라서 한 국가의 주어진 여건에 맞는 인구 규모를 찾는 작업은 흡사 지급된 군화에 맞는 발의 크기를 찾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실제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국가를 관찰하면, 한 국가의 인구 규모가 국민의 생활수준이나 만족도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결론지을 근거를 발견하기 어렵다. 서울시보다 적은 인구를 보유하고도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국민이 행복한 국가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지구 전체가 촘촘하게 연결되어 상품, 자본, 인력, 아이디어가 빠르게 공유되는 21세기에는 한 국가의 인구 규모가 시장 규모를 결정하는 힘도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
물론 작은 규모의 인구는 한 국가가 정치적·군사적 힘을 갖는 데 일종의 제약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패권국가의 지위를 얻고자 하는 나라가 아니라면 그것이 대단히 중요한 제약조건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강대국 못지않은 국력을 갖추고 국제사회에서 존중받고 있는 ‘강소국’도 적지 않다.
향후 60년 이내에 인구가 3,500만 명으로 감소할 수 있다는 장래 인구 전망에서 더 우려되는 부분은 3,500만이라는 ‘규모’보다 60년 이내라는 기간이 나타내는 ‘속도’이다. 한국의 인구가 향후 200년 혹은 100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3,500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도 아마 “위기”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점진적이고 느린 변화에 대응하거나 적응하는 일은 비교적 쉬우며 비용도 적게 들기 때문이다.
출생아 수 감소에 따라 병역자원이 부족해지는 문제도 이러한 인구변화가 서서히 나타난다면 좀 더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다. 예컨대 현재 국방부는 첨단기술을 도입하여 군 병력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데, 장비와 기술로 인력을 대체하고 이에 적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인구감소에 의한 시장수요의 변화도 점진적으로 진행된다면 기업은 비교적 적은 비용을 들이면서 이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인구가 감소하면, 특정한 인구 규모에 맞추어진 한 국가의 여러 시스템에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하고, 이로 말미암아 막대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특정한 최적 인구가 존재하지 않고 3,500만이라는 인구 규모 자체에 큰 문제가 없다고 해도, 지금의 청소년 세대가 노인이 될 무렵까지 인구의 3분의 1이 감소한다는 것은 작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알고, 기대하고, 이에 맞추어 준비한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맞닥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얻은 경험과 지식은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는 낡은 것이 될 것이다. 빠르게 달라지는 상식과 규범에 적응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기업과 정부도 기존의 제도나 관행이 달라진 세상과 어긋나면서 이를 고치는 데 엄청난 비용을 들이게 될 것이다.
이는 인구가 낮은 수준으로 감소한 후에 나타나는 어려움이 아니라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이다. 인구 규모 감소로 인한 어려움의 강도와 이에 적응하는 데 소요될 비용의 크기는 다음의 두 가지 변수에 달려 있다.
첫째는 인구감소의 속도이다. 60년 이내에 인구의 3분의 1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의 인구 현상에 대한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장래의 인구감소 추세는 더 느려질 수도, 더 빨라질 수도 있다.
둘째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기민하게 인구축소에 적응할 수 있을지 여부이다. 그림 1-1에 제시된 장래인구추계 결과는 2050년경까지 한국의 총인구가 비교적 완만하게 감소하다가 그 후부터 가파르게 줄어든다는 전망을 제시한다. 총인구만을 고려한다면 축소사회에 대비할 수 있는 기간이 있고, 따라서 빠른 인구감소가 일으킬 혼란과 고통을 덜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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