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늙기의 즐거움
핸드폰에 부고訃告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액정화면 속에서 죽음은 몇 줄의 정보로 변해 있다. 무한공간을 날아온 이 정보는 발신과 수신 사이에 시차가 없다. 액정화면 속에서 죽음은 사물화되어 있고 사물화된 만큼 허구로 느껴지지만 죽음은 확실히 배달되어 있고, 조위금을 기다린다는 은행계좌도 찍혀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관성적 질감은 희미한데, 죽은 뒤의 시간의 낯섦은 경험되지 않았어도 뚜렷하다. 이 낯선 시간이 평안하기를 바라지만, 평안이나 불안 같은 심정적 세계를 일체 떠난 적막이라면 더욱 좋을 터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부고는 그다지 두렵지 않다. 내가 살아서 읽은 책 몇 권이 나의 마음과 함께 무無로 돌아가고, 내가 쓴 글 몇 줄이 세월에 풍화되어 먼지로 흩어지고, 살았을 때 나를 들뜨게 했던 어수선한 것들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적적해지는 사태가 좋거나 나쁜 일이 아니고 다만 고요하기를 나는 바란다. 이승에서의 신산한 삶을 위로할 만한 지복이나 구원이나 주막이 거기에 없어도 나는 괜찮다.
부고를 받을 때마다 죽음은 이행해야만 할 일상의 과업처럼 느껴진다. 마감을 지켜야 하는 원고 쓰기나 친구의 자식들 결혼식이나 며칠 먼저 죽은 친구의 빈소에 흰 돈봉투를 들고 가서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일처럼 죽음을 루틴으로 여기는 태도는 종교적으로는 경건하지 못하지만, 깨닫지 못한 중생의 실무이행으로서 정당한다. 애착 가던 것들과 삶을 구성하고 있던 치열하고 졸렬한 조건들이 서서히 물러가는 풍경은 쓸쓸해도 견딜 만하다. 이것은 속수무책이다.
내가 사는 마을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이다. 내 집 뒤의 정발산 숲은 사람이 공들여 가꾼 숲이 아니고 자연림이다. 상록수와 낙엽수, 활엽수와 침엽수들이 계통이나 군집을 이루지 않고 여기저기 박혀서 헝클어져 있다.
나무들은 꽃 피고 잎 지는 때가 제가끔이어서 숲의 빛과 냄새는 수시로 바뀐다. 바람이 불면 여러 나무들이 흔들리면서 숲 전체가 수런거리는데, 이 소리는 인간의 악기로는 흉내 낼 수 없다.
정발산의 높이는 해발 88m다. 88m는 해발海拔이라고 하기에는 쑥스럽지만, 정발산 꼭대기에는 ‘해발 88m’라고 적힌 팻말이 서 있다. 정발산은 한자로 ‘鼎鉢山’이라고 쓴다. ‘정鼎’은 중국의 고대국가들이 하늘에 제사를 드릴 때 쓰던 솥이고, ‘발鉢’은 운수행각雲水行脚하는 승려가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밥그릇바리때이다. 이 야트막한 뒷동산이 어째서 이처럼 신화적인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여러 서물瑞物을 뒤져 보았으나 기록을 찾지 못했다.
‘고향’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서울 도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청소년 시절에는 인왕산, 북한산, 북악산, 도봉산, 관악산, 낙산에서 놀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암벽등반의 기초를 배웠는데, 이 바위가 바로 조선 후기 화가 정선鄭敾의 유명한 그림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에 나오는 그 바위다. 여름에 장대비가 쏟아지거나, 겨울에 폭설이 내리면 나는 집 안에서 책을 읽다가도 장비를 챙겨서 산으로 들어갔다. 산과 숲의 매혹에는 중독성이 있었다. 산에는 내가 특별히 편애하는 나무와 바위가 있었다. 산에서 나는 언어와 개념으로부터 풀려나서 자유로웠고 몸으로 살아 있다는 느낌으로 자족했다. 나는 이 자유의 느낌에 의지해서 속세를 헤쳐 나갈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높은 산에는 오르지 못한다. 북한산 언저리에서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문수봉 같은 높은 봉우리들을 올려다보면서 둘레길을 걷다가 돌아온다. 산꼭대기에서는 세상이 내려다보이고 둘레길에서는 산봉우리가 올려다보인다.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거나 시선의 방향은 반대지만 어느 쪽에도 착시현상은 있을 것이다. 내려다볼 때는 땅이 넓어 보이고 올려다볼 때는 하늘이 넓어 보인다. 내려다볼 때는 먼 것이 가까워 보이고 올려다볼 때는 가까운 것이 멀어 보인다. 내려다볼 때는 눈 아래로 많은 봉우리들이 나를 향해 밀려오는 듯싶지만, 올려다볼 때 봉우리들은 첩첩 능선의 뒤쪽으로 사라져 간다.
젊었을 때,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세상을 내려다볼 때 나는 세상 속으로 내려가고 싶었고, 산 밑에서 산봉우리를 올려다볼 때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지금은 이쪽저쪽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둘레길을 조금 걷다가 마을버스 타고 마을로 돌아온다.
동양의 산수화는 먼 산과 가까운 산, 높은 봉우리와 낮은 마을을 동일한 화폭에 배치한다. 이런 구도는 서양인의 원근법에는 맞지 않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여러 각도들이 서로 겹치고 스미면서 육안肉眼에는 보이지 않는 풍경을 화폭에 들여앉힌다. 대체로 이런 화폭 속에서는 우뚝한 산은 화폭의 맨 위나 맨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산 아래로 무진無盡한 강산江山이 펼쳐지는데, 논과 밭, 초가집, 정자로 표현되는 인간의 마을은 화면의 아래쪽에 숨기듯이 배치되어 있다.
동양 산수화 속에서 사람은 매우 작게 그려져 있다. 그 사람은 풍경의 표면으로 얼굴을 내밀기를 저어하는 듯하다. 그 사람은 풍경의 핵심부가 아니고 풍경의 주인 노릇을 하지 않지만, 이 화폭은 애초부터 핵심부를 고정해 놓고 있지 않다.
화폭 속의 사람은 심부름하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선비이거나 지게를 지고 소를 몰아가는 농부이다. 화폭 속의 사람은 등 굽은 노인이고, 동행 없이 혼자서 가고 있다. 대체로 동양 산수화 속의 사람은 세상을 향해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논두렁길, 밭두렁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 너머로 넓은 강산이 펼쳐져 있다.
이 무한강산은 공간으로서 고정되지 않고 시간 속에서 시간과 더불어 흘러가는 강산이다. 겹쳐지는 시선들이 이 운동성을 표현해낸다. 그래서 동양 산수화 속의 산은 멀리서 흔들려 보인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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