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 한아름, 망설이는 사람
옷이 가벼워지는 계절엔 마음도 가벼워졌다. 상냥하지 않은 습도와 온도에도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 하나였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나면 자꾸 했던 말을 거스르게 된다. 나 자신에게 단정짓는 말을 하기 어려운 건 이렇게 방금 한 말을 바로 뒤집곤 하기 때문이다. 여름이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해가 길어서. 밝은 하늘을 보는 시간이 길면 시간을 덤으로 얻은 것 같아 좋았다. 퇴근길에도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걸로 힘을 얻곤 했다. 결국 했던 말을 전부 뒤집자면, 사실 여름의 많은 것들이 좋았다. 무거운 머리카락을 한 번에 묶어 올리는 순간 시원해지는 목덜미, 갈증을 단번에 해소해주는 차가운 아메리카노, 물기를 가득 머금은 것이 한눈에 보일 만큼 기세 좋게 푸른 통통한 나뭇잎들, 초여름의 장미 덤불, 식당 유리문에 붙은 ‘콩국수 개시’, 나는 못 입는 짧은 크롭티를 입은 멋있는 사람들, 끝없이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여름 휴일의 산책, 그렇게 오래 걷다 마시는 달고 시원한 냉매실차. 그런 것들 때문에 돌아오는 여름을 매번 기쁘게 맞을 수 있었다. 올해는 유독 그 기다림이 좀 길긴 했지만.
여름이 오기까지, 지난 계절 내내 나는 매일 아침 퇴사가 하고 싶었다. 무기력감에 아침에 눈뜨기가 힘들었다. 제멋대로 출근했다. 지각은 당연하고 반차며 연차를 즉흥적으로 낼 때도 많았다. 예상보다 많이 걷거나 충동적으로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그랬고, 초저녁부터 일찍 잠들었다가 애매한 새벽에 깨버린 날도 그랬으며, 회사에서 주최하거나 초대받은 행사에 참석하거나 야근을 한 다음 날에도 그랬다. 지각을 하게 되면 그냥 지각을 하면 될 텐데, 지각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다가 아예 회사를 안 나가버리는 식이었다. 그렇게 집에 혼자 누워 있으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누구든 어느 시기에 아주 사소한 이유들이 뭉쳐 퇴사 욕구가 끓어오르기도 하겠지만, 내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사랑하는 동료들을 실망시키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변명하지 않고 성실하게 맡은 바를 해내는 동안 나는 거의 네 살배기 아이처럼 제멋대로였는데 그런 사람을 받아줄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아도 싫었다, 그런 동료는. 나는 책임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사무실에 도착하면 이러면 안 되지 이러면 안 되지 스스로를 타박하면서도 태연하게 늘 짓는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붓을 쥐고 인형을 들고 최대한 닮게 최대한 디테일하게 그리는 일에 집중하려 했다. 그럼에도 예전만큼 애정을 쏟지 못하고 있다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들켰다는 생각이 언제나 뒤따랐고, 그전만큼 보람도 에너지도 없었으나 그래도 붓을 쥐었을 때는 여전히 잘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 늘 괴로웠다. 무슨 도둑놈 심보인지. 늘 책임감으로 나를 굴려왔는데, 언제나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에 끝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는데, 슬슬 어시스턴트에게 넘기는 부분이 늘어가는 스스로를 보며 조금씩 혐오감이 쌓여갔다. 이 일을 잘하는 게 나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구나, 확인하는 일은 생각보다 거친 날에 베인 것처럼 쓰라렸다. 스스로도 실망할 만한 짓을 하면서도 누군가가 나에게 실망했다는, 실망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 심장이 조여왔다. 다른 동료보다 특히, 선배가 내 책임감 없는 행동과 붕 뜬 마음을 다 알아차리고 있을 거라는 데서 오는 자괴감이 심했다.
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추워서 그랬다고 변명을 했지만 여름이 오고 나서는 그럴 수도 없었다. 나는 그냥 회사를 잘 다니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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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년 전, 나는 선배가 하는 인형 리페인팅 수업을 여러 차례 들은 수강생이었다. 기초부터 심화까지. 기초반에서는 동양인 한 명, 서양인 두 명을 그리는 연습을 했다. 주로 영화 속 캐릭터를 그렸는데 나는 〈엽기적인 그녀〉 속 전지현과 〈어바웃 타임〉의 레이첼 맥아담스, 〈맘마미아〉의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골랐다. 그들의 얼굴을 보며 채색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다. 그때 나는 즐거움만으로 그 작업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좀 덜 솔직한 마음이었다. 혼자 하는 일을 찾고 싶은 마음에 수강을 시작했지만 수업을 듣다보니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커졌다. 선생님이던 선배는 나에게 항상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 이라고 말했는데 그 평가가 좋았다. 그 평가에 부응하며 선배가 보내는 대견하다는 눈빛 아래 살고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쌓여 선생님인 선배와도 조금씩 친해지고, 심화반 수업이 마무리되어갈 무렵 나는 선배가 차린 회사에 첫 번째 작가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실제 사람과 거의 똑같은 구체 관절 인형, 혹은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을 그대로 구현한 피규어를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나란히 인지도를 쌓아갔다. 아이돌이나 배우의 데뷔 몇 주년 기념, 마블 시리즈의 새로 떠오르는 캐릭터, 〈슬램덩크〉 극장판의 인기가 우리를 먹고살게 해주었다. 회사는 인하우스 작가들과 프리랜서 작가, 그리고 경영지원팀으로 이루어진 작은 업장이었다. 작지만 대단했다. 그건 선배가 세우고 만들어낸 것. 인하우스 작가는 월급을 받고 프리랜서 작가는 정해진 근무 시간 없이 작업량에 따라 보수를 받는 식이었는데 어느 쪽이든 작업 일정만 지켜지면 다른 부분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근태가 엄격한 회사는 아니었지만, 규모가 작기에 동료들의 책임감과 선의와 신뢰로 굴러가는 터라 주어진 몫을 게으르게 해내면 죄책감은 더 심했다. 언제나 나만 지각하고 나만 손을 놓고 있는 것이, 보통 함께 먹는 점심도 종종 거르고 혼자 나가서 걷다 뒤늦게 들어오거나 나만 불쑥 연차를 내고 나오지 않기도 하고 마감 기간이면 발등에 불 떨어진 듯 쫓기며 작업하는 것이. 그게 큰 문제냐 하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서 애매하지만…… 분명한 건 선배 눈에는 다 보였으리라는 것. 안 보일 리 없었다. 내 죄책감은 거기에서 왔다. 그건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선배와 함께 일한 지 벌써 칠 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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