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프루스트와 오징어의 독서 강의
독서는 독특한 본질상 고독 속의 대화가 만들어내는 유익한 기적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학습이란 천성을 길들이는 것이다.
― 조셉 르두
독서는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다. 인류가 독서를 발명해낸 것은 불과 수천 년 전이다. 그 발명품을 통해 인간은 뇌 조직을 재편성했고 그렇게 재편성된 뇌는 인간의 사고 능력을 확장시켰으며 그것이 결국 인지 발달을 바꾸어놓았다. 독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이며 역사의 기록도 그 발명의 결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조상이 이렇듯 훌륭한 발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뇌가 비상한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뇌는 기존 구조 안에서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는 뇌가 경험에 따라 형태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프로세스다. 가소성plasticity은 뇌 구조의 핵심적 특성으로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이루는 많은 것의 기반이 된다.
이 책에서는 지적 진화의 전개라는 관점에서 독서하는 뇌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우리의 눈앞과 손끝에서 계속 변하고 있다. 앞으로 수십 년 내에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뇌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연결이 만들어지면서 종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법으로 지적 발달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독서하는 뇌에서 디지털 뇌로 전환되는 과도기다. 따라서 독서를 하기 위해 뇌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인간의 사고와 감성과 추론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아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독서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진화했는지, 아이가 독서를 어떻게 학습하는지, 독서로 인해 뇌 안의 생물학적 기반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해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지적인 동물의 불가사의한 복잡성을 새롭게 조명해볼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지적 능력이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 우리가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보다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책은 수메르인에서부터 소크라테스에 이르기까지 고대 인류가 독서를 배우게 된 역사, 시간 흐름에 따라 보다 세련된 독서능력을 습득하게 된 인간의 생애 주기상의 발달사, 뇌가 독서를 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과 그에 대한 과학적 설명 등 세 가지 영역의 지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서에 대해 지금까지 누적된 지식을 한데 모아보면 인간이 읽고 기록하고 과거를 뛰어넘는 가운데 이룩한 방대한 업적을 반추할 수 있다. 동시에 앞으로 중요하게 보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된다.
독서하는 뇌를 역사적, 진화론적으로 살펴보다 보면 명쾌하지만은 않은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그건 오히려 독서 프로세스의 가장 핵심적인 면을 가르칠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 대단히 진부한 동시에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해준다. 이런 접근법은 독서를 학습할 준비가 된 뇌를 가진 사람과 난독증이라고 불리는 독서장애처럼 남들과 약간 다른 뇌 시스템을 가진 사람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
뇌는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사전 프로그래밍된 독특한 하드웨어 시스템이다. 독서하는 뇌와 독서하지 못하는 뇌를 모두 이해하면 우리의 지식은 예상치 못하게 의미 있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그 의미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탐구해야 한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 전체에는 뇌가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방법에 대한 독특한 견해가 깔려 있다. 새로운 지적 능력을 학습하기 위해 스스로를 재편성하는 인간 두뇌의 놀라운 능력을 독서행위보다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예는 그리 많지 않다. 뇌에는 인간의 진화 단계상 더 과거에 형성되었으며 시각, 언어 등 보다 기초적인 뇌의 프로세스에 사용되는 구조structure와 회로circuit가 들어 있다. 뇌가 독서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이런 기존 구조와 회로를 사용해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다재다능한 능력을 갖고 있음을 암시한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마다 사람의 뇌에 있는 뉴런신경세포이 새로운 연결과 경로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스스로 형태를 바꾸거나 재편성함으로써 다양한 명령을 수용하는 시스템을 컴퓨터 과학자들은 ‘오픈 아키텍처open architecture’라고 부른다. 사람의 뇌는 유전적 자원이 제한되어 있음에도 훌륭한 오픈 아키텍처의 예가 된다. 그러한 설계 덕분에 우리는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을 변화시키고 뛰어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유전적으로 혁신에 적합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독서하는 뇌는 매우 성공적인 양방향 역학two-way dynamics으로 구성된다. 독서는 뇌가 가소성 있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비로소 학습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독서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뇌에 이미 생리적, 인지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뉴런의 차원에서 보았을 때 중국어를 읽는 사람은 영어를 읽는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뉴런 연결을 사용한다. 중국어를 읽는 사람이 처음으로 영어를 읽을 때 그 사람의 뇌는 중국어 독서를 학습함으로써 문자 그대로 중국어를 읽는 뇌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과 내용은 우리가 읽은 것으로부터 형성된 식견과 연상에 기초하는 것이다. 작가인 조지프 엡스타인의 말마따나 “작가의 전기를 쓰려면 그가 언제 무엇을 읽었는지 상세하게 다루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은 그가 읽은 것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독서하는 뇌의 발달과 진화의 이러한 두 가지 측면, 즉 개인적이고 지적인 측면과 생물학적인 측면을 연관시켜 함께 기술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해보면 중요하고도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나는 독서의 상이한 두 가지 측면을 묘사하기 위해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를 메타포로, 하등동물로 과소평가되어 있는 오징어를 유추적으로 사용한다. 프루스트는 독서를 일종의 지성의 ‘성역’으로 보았다. 다른 데서는 결코 만날 수 없고 이해하지 못했을 수천 가지 실체와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곳, 각각의 새로운 실체와 진실을 통해 편안한 안락의자를 벗어나지 않고도 독서하는 사람 스스로 지적인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1950년대 과학자들은 뉴런이 서로 어떻게 발화하고 전송하는지, 그리고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어떤 식으로 회복 및 재생되는지 이해하기 위해 소심하지만 정교한 오징어의 기다란 중앙 축삭돌기central axon를 사용했다. 연구의 차원이 다르기는 해도 오늘날 인지신경과학자들은 다양한 인지또는 정신적 프로세스가 뇌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를 통해 밝혀진 독서 프로세스는 시간적으로 나중에 습득되기 때문에 기존의 뇌 구조를 가지고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문화적 발명의 전형적인 예다. 사람의 뇌가 독서를 할 때 일어나는 작용과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것은 과거의 초창기 신경과학이 오징어를 연구하던 것과 비슷하다.
프루스트의 성역과 과학자의 오징어는 독서 프로세스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상호보완적 방법론이다. 이 책의 접근 방법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에서 발췌한 문장을 소개한다. 아래 두 문장을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읽어보기 바란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