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목이 마르고 자주 등이 젖지
옥상의 페인트 빛깔이 어둠에 섞일 때
어떤 믿음은 난간 같았어
야경이라는 건
어둠이 밀려날 수 있는 데까지를 말하는 걸까
이 도시는 사람들의 소원으로 빼곡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놀러가자
내 손바닥에 밴 아오리사과 향기
그러나 압정을 한 움큼씩 쥐고 있는 기분
우리는 목이 마르고 자주 등이 젖지
리듬을 이해하기 않으면서
리듬에 대해 얘기했어
등이 젖은 사람을 따라 걷다가
저마다 웅덩이가 있구나
퐁당퐁당 생각했어
아무것도 훼손하지 않으면서 훼손하지 않고 싶다
너와 손을 맞잡고 싶지만
내 손안의 압정을 함께 견디고 싶지는 않다
깊은 바다로 다이빙하는 것과
작은 물웅덩이로 다이빙하는 것
어느 쪽이 더 위험할지
그딴 건 모르겠고 물수제비나 뜨자
나는 요령이 없어
내려다본 골목에 채소를 가득 실은 푸른 트럭이 서 있다
누군가가 몰래 무 하나를 훔쳐갔다
희고 싱싱해서 그냥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방수가 잘되는 페인트를 엎지르고서
우리는 온몸이 젖고 있었다
여름 오후의 슬러시
투명한 봉지 속에서 금붕어가 헤엄친다
너와 보도블록을 따라 걸을 때
슬리퍼가 너무 작다
슬러시에 꽂힌 빨대 하나로
너와 감기를 나눠 마시는 생각
왜 이렇게 기우뚱하게 걸어
금붕어도 멀미를 느낄까
나는 계단도 침착하게 굴러
달고 끈적이는 슬러시를 엎지르면서
가끔 얼음 알갱이가 씹힌다
아 시원해
교실 문을 열자마자 마루에 눕고 싶고
우리의 체육복은 지저분하다 땀과 흙이
점점 번지면서 체육대회를 지속하려 한다
열기를 견디는 것까지가 경기이듯이
여기를 견디는 것까지가 규칙이다
슬러시에서는 열대과일맛이 났다
맛이라기보다는 향에 가까운
우리는 기후를 베끼려 했다
몸에 판박이를 덕지덕지 붙였고
잘 안 지워졌다
슬리퍼 한 짝이 음수대 위를 떠다녔다
봉지만 벗어나면 익사하는 금붕어
금붕어는 죽다 말다 하면서 슬리퍼를 통과했다
증상인지 사랑인지 구분되지 않는 나의 멀미
오후와 주황빛은 잘 어울리고 아주 잘 어울리면
거의 투명해 보인다
너는 연장전에 지친 선수처럼 퇴장한다
종이컵을 우그러뜨리고
나이스 슛
쓰레기통이 기우뚱하더니 내용물을 쏟는다
퉁퉁 불은 한쪽 슬리퍼와 녹다 만 슬러시
체육대회가 끝난 다음날의 기분
계단에서는 언제나 짜고 시큼한 냄새가 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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