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엄마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람마다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개인의 경험은 상황에 좌우되는데 상황에는 무수히 많은 변수가 따른다. 임신이라는 첫 단계부터가 그렇다. 계획된 임신인지 아닌지, 임신을 고민했는지, 임신 사실을 발견하고 괴로움을 느꼈는지, 임신 기간을 파트너와 함께했는지 혹은 혼자 보내야 했는지, 정자를 은행에서 제공받았는지, 수월한 자연 임신이었는지 아니면 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지 등. 하지만 일반적으로 부모가 된다는 것, 특히 엄마가 된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추어진다. 어머니는 신성불가침이고 사랑의 구현이다. 모성은 너무도 소중해서 직접적으로 들여다보고 분석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모성을 옆에서 비스듬히 바라본다. 아기가 가진 변화의 힘을 찬미한다. 무슨 변화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아기가 생기면 모든 것이 변한다”는 존슨앤드존슨Johnson&Johnson의 캐치프레이즈에 공감한다.
하지만 많은 여성에게 그 질문은 위험하게 느껴진다. 그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하려면 엄마됨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은 후 어떻게 달라졌고, 아기를 낳은 적 없는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지. 또 남자들하고는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보통 이때 ‘다르다’는 예전보다 못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잘 잊고 정신 사납고 기진맥진하다.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항상 도덕적 해이의 경계에 있으며, 확실히 예전보다 덜 흥미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생각하지 않는 쪽이 낫다.
엄마는 약 40주에 이르는 임신 기간에임신을 시도하고 유산으로 고생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훨씬 더 길다 임신이 몸과 가슴, 엉덩이, 허리선, 심장 기능, 골반기저근, 성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엄청난 정보의 홍수를 만난다. 우리의 행동이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모든 선택이 아이의 신체 발달과 평생에 걸친 몸과 마음의 건강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조언이 우리를 압도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없다. 파트너에 대한 것은 더더욱 없다. 엄마가 되기까지의 준비 과정에서 접하는 모든 정보 중에서 우리는 아기가 우리를, 우리 내면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되는가? 엄마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질문은 논바이너리nonbinary. 이분법적 분류를 벗어난 성별로 트랜스젠더나 젠더퀴어를 말한다. 부모들, 아빠들, 동성 파트너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부모됨의 변화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더 진실한’ 모성적 서사의 각주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과학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들에 답하고 심지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가능하게 한다.
내가 처음 이 질문들을 이해하려고 애썼던 것은 출산 후 4개월만에 휴가를 끝내고 편집자로 일하던 신문사에 돌아와 창문 없는 작은 사무실에서 모유를 유축할 때였다. 그 코딱지만 한 방을 두 번이나 들락거리며 유축을 했지만 겨우 60밀리리터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기가 다음날 어린이집에서 먹을 젖병 두 개 중 한 병을 겨우 채우는 분량이었다. 그 작은 방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고 문에 “들어오지 마시오”라고 휘갈겨 쓴 종이가 붙어 있었지만 잠금 장치는 없었다. 기자들과 미팅해야지, 마감 관리도 해야지,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시간은 야속하게도 흘러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루가 더 길고 할 일은 더 적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간절한 것은 정보였다.
초보 엄마로서 내가 겪고 있는 불안에 대해 이해하고 싶었다. 이런 순간을 대비하려고 임신 기간에 부지런히 책을 읽고 수업도 들었지만 그때 배운 것들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지금 내 머릿속과 몸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유축기를 꺼버리고 모유를 아이스박스에 넣은 뒤 노트북을 열고 피터 슈미트Peter Schmidt에게 전화를 걸었다.
슈미트는 1986년경부터 호르몬과 생식 상태가 기분과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당시는 여성 혐오 성향의 의사들이 산후 기분 장애를 그저 생식계에 의한 여성 장애의 추가적인 증거로만 여길 때였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 연구자들이 여성의 정상적인 생물학적 과정을 병리적으로 본다고 (근거 있는) 우려를 표했다. 슈미트와 동료 과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실질적인 공중보건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에 관련된 가벼운 문제”로 보았다. 내가 2015년 7월에 슈미트에게 연락했을 때는 부모의 뇌에 관한 연구를 가로막던 장벽이 무너진 뒤였고, 그는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의 행동내분비학과 과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내가 알기로 슈미트는 엄마가 된다는 것을 장기간 지속되는 효과를 동반한 독특한 발달 단계로 묘사한 최초의 사람이다. 그는 이 단계에서 사회적 행동과 감정,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진 “신체의 모든 시스템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했다. 슈미트는 내가 느끼고 있던 것들이 맞다고 확인해주었다. 즉, 우리 사회가 출산 이후의 경험에 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 지극히 제한적이라고 말이다. 산후 우울증을 주요한 사회적 관심사로 끌어올리는 데는 커다란 노력이 있어왔다. 슈미트는 부모가 되면서 개인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고 그 과정에 어떤 위험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이해를 넓히는 것이 다음 과제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뭔가 굉장히 새로웠지만, 솔직히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거의 알지 못했다. 그 의미를 알아내려고 노력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수십 명의 연구자와 그만큼 많은 부모들을 인터뷰하고, 인간 부모의 뇌에 관한 연구와 기본적인 동물 연구 논문들을 철저히 분석함으로써 말이다. 그리고 부모가 된다는 것과 그 변화에 대한 일상적인 이야기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시 바라봄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애초에는 엄마가 되는 것이 하나의 새로운 발달 단계라는 나 자신의 깨달음에 대해, 그리고 산후기産後期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예비 엄마들이 좀 더 완전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요지로 기사를 쓸 생각이었다. 실제로 기사를 썼다. 그리고 이 주제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산후기의 과학이 더 거대하게 느껴졌다. 거기에는 개인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관점과 담론을 바꿀 힘까지 들어 있었다. 또한 성과 젠더, 일, 과학의 형평성, 사회 정책, 정치, 아이에게 몰두하는 시간과 떨어져 있는 시간 등 맞닿아 있는 수많은 주제들에도 힘을 미칠 수 있었다.
이것은 부모의 뇌에 관한 책이지만, 나는 ‘육아 전문가’사실 그 정의 자체도 모호하지만도 아니고 신경과학자도 아니다. 내가 이 책에 담은 전문 지식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나는 저널리스트로서 거의 20년 동안 특히 건강 분야의 복잡한 주제를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일을 해왔다. 그리고 나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남편과 함께 각자 맡은 시간과 장소에서 아이들의 특별한 욕구를 돌본다. 내가 배운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부모라는 내 인생의 맥락에서 과학을 이해하고자 했다.
내가 코딱지만 한 회사 유축실에서 슈미트를 인터뷰한 이후로, 부모의 뇌에 초점을 맞춘 신경 영상neuroimaging 연구의 수가 크게 증가했다. 그 연구에 사용되는 기술과 분석 방식의 정밀성도 개선되었다. 특히 자기공명영상fMRI 기술이 그렇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여러 분야에 걸쳐 뒷받침되고 거듭 확인된 연구 결과만을 조명하고자 한다. 근거가 약하거나 논란이 있는 연구는 분명하게 미리 밝히겠다.
과학은 정적이지 않다. 부모의 뇌는 오랫동안 연구할 가치가 있는 주제로 인정받지 못했다. 오늘날 부모의 뇌에 얽힌 이야기는 충분히 탐구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 연구 결과는 앞으로 변할 것이고이미 변하고 있다 새로운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나는 그 질문들이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고자 애썼다.
현재로서 이 분야의 연구는 여전히 시스젠더cisgender. 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즉 직접 임신과 출산을 하는 엄마인 이성애자 여성에 압도적으로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느리지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구체적인 연구를 언급할 때는 피실험자들에 관한 저자들의 묘사를 그대로 따르려고 노력했지만, 그 밖의 경우에는 포괄적인 언어로 부모들을 묘사했다. 그것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이다. 직접 출산을 하는 부모가 아니라고 여겨지는 트랜스젠더 남성과 논바이너리 부모들 역시 임신과 산후기에 걸쳐 뇌가 변화한다. 즉, 중요한 것은 임신한 부모들만 엄청난 신경생물학적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돌보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모든 사람이 그런 변화를 겪는다는 점이다.
‘엄마의 뇌’는 여성의 뇌와 동의어가 아니며 출산하는 사람의 뇌도 아니다. 페미니스트 철학자 세라 러딕Sara Ruddick이라면 ‘돌봄을 통해서 얻는’ 뇌라고 말했을 것이다. 엄마의 뇌는 알렉시스 폴린 검스Alexis Pauline Gumbs가 저서 『엄마의 돌봄은 혁명이다Revolutionary Mothering』에서 말한 것처럼 엄마의 역할, 그 “페미니즘보다 오래된” 생명 유지의 관행에 참여하는 사람의 뇌를 말한다. “엄마의 보살핌은 ‘여성’이라는 범주보다 더 오래되었으며 미래적이다”라고 검스는 적었다. 이러한 유대 능력은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종에 나타나는 기본적인 특성이다. 그 유대 관계의 발전이야말로 실제의 부모됨을 정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부모에게 일어나는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과 실제 경험을 탐구한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초보 부모 혹은 현재 출산을 앞둔 사람이 만약 어떤 식으로든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리 뇌는 임신 도중과 부모가 된 후에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어려움은 흔한 일이고 도움이 필요한 것도 정상이다. 주치의에게 또는 온라인이나 지역에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국제 산후지원Postpartum Support International, www.postpartum.net, 1-800-944-4773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아이를 돌보는 방법이라든가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제공하지 않는다. 수면이나 보육 시설, 그 누구도 기분 상하는 일 없이 미취학 아이가 스노 부츠를 신게 하는 방법 등, 부모들이 평소 온라인에서 수없이 반복적으로 검색하는 질문들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과학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당신이 지금 어떤 부모이고 어떤 부모가 되어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를 바란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성장을 통해 부모가 되어간다. 그 과정에서 변화는 어떻게, 왜 일어나며 현재는 물론 앞으로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와 함께 이 질문들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임무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의무가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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