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점심
아버지가 돌아왔다. 가출한 지 10년 만이었다.
그해 봄, 아버지는 어머니 앞으로 장문의 편지를 남겨놓고 떠났다. 어머니는 그 편지에 대해 우리 형제한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읽고 바로 짝짝 찢어 변기에 버려서 남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다만 한 달 후, 집 안의 금기어가 되다시피 한 ‘아버지’란 단어가 밥을 먹던 동생 입에서 무심코 튀어나왔을 때 어머니는 수저를 탁 내려놓으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더러운 인간! 포기하겠다는 거야. 전부 다.”
우리는 그것이 편지의 요점이란 걸 어렴풋이 알았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더라도 요점은 잊어버릴 수 없으니까. 그러나 어머니가 굳이 그런 식으로 알려주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떠났다는 것 자체가 포기를 의미했다. 어쩌면 어머니는 ‘포기’가 아니라 ‘버렸다’라는 단어를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포기는 왠지 자기 몫만 놓고 가는 것 같은데 ‘버리겠다’에는 어머니와 우리 형제도 포함되는 거 같으니까. 그때까지도 어머니는 ‘버리겠다’를 ‘포기하겠다’로 표현함으로써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던 게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가 ‘버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포기’했다는 걸 나는 아버지가 가출하던 날 알았다. 아버지는 떠나면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아끼던 책 한 권, 학자의 상징이라며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오래된 만년필조차 챙기지 않고 맨몸으로 집을 나갔다. 다 놓고 간 아버지한테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아버지를 공항에 데려다주러 가는 길이다. 10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는 조부의 장례를 마치고 다시 뉴욕으로 떠난다. 그동안 모든 연락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는 조부가 위독하다는 삼촌의 연락을 받고 나흘 전 급하게 한국으로 들어왔다. 평소 존경하던 조부의 임종마저 지키지 못했다면 아버지는 불효자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느끼는 10년이란 시간의 무게에 비해 아버지의 마음은 조금 가벼워 보였다.
“좋은 날 받아서 가셨다. 그치?”
아버지가 도로 오른편으로 반짝반짝 흘러가는 강을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끝이 떨리고 갈라지는 게 또 우는 것 같았다. 가벼움이 지닌 한계였다. 장남인 아버지는 미안함 때문에 장례식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목 놓아 울기만 했다. 조부를 위해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으면서 마냥 우는 것. 먹은 게 없는데도 아버지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고, 잠을 자지 않는데도 아버지 입에서는 지치지 않고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눈물‘샘’과 소리‘샘’은 몸이 아니라 마음의 기관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샘처럼 물을 쏟아내고 있어서인지 식구 누구도 아버지를 두고 10년의 세월을 질책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안부를 궁금해하거나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는 가족도 없었다. 단지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만 들려왔다. 호상이라 아무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 장례식에서 아버지는 사흘간 대신 울어달라며 고용된 사람처럼 보였다. 열심히 울어서인지 아버지는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철저하게 혼자였다.
“상 치를 사람들 생각해서 봄에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강이 끝나자 아버지가 전방을 응시하며 숨을 골랐다.
“계절이 효자다.”
“봄은 떠나기에도 돌아오기에도 좋은 계절 같아요.”
조부를 닮아 아버지도 봄을 무척 좋아했다.
“아버지도 좋아했죠, 봄을.”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았지.”
침울한 목소리에 실린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이 묘했다. 그 표현에 이끌리고 있을 때 자동차는 벚꽃이 환하게 핀 가로수 길로 접어들었다.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지자 깊은 슬픔에 잠겨 있던 아버지의 얼굴이 갑자기 벚꽃처럼 밝아졌다. 아버지 자신도 조금 놀란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애써 감추려 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가까이서 보고 싶다며 갓길에 잠시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차에서 내린 아버지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벚나무에 다가가 가지 하나를 낮게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향을 맡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아버지의 입가에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아주 옅은 미소가 번졌다. 상중만 아니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세상이 다 알도록 소리 내어 웃을 것만 같았다. 모든 게 낯설었다. 아버지가 내 앞에 있다는 것도, 슬픔에 잠긴 표정으로 내내 우는 얼굴만 보여주던 것도, 저렇게 웃는 것도. 10년 전 내가 알던 아버지는 분명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숨겨왔던 것일까, 아니면 오랜 타국 생활로 자연스레 달라진 것일까. 혹 집을 떠나던 그날 여태 짊어지고 산 모습마저 옷처럼 훌훌 벗어던졌던 걸까. 아버지는 진짜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맨몸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그해 봄 우리를 떠났던 것일까.
늙긴 했으나 마른 체형이던 아버지는 보기 좋게 살이 올랐다. 당시 남자들은 잘 하지 않았던 단발형 헤어스타일은 스포츠형으로 바뀌었다. 머리숱은 좀 줄었지만 건강한 윤기가 흘렀고, 날카로웠던 인상은 깎아놓은 듯 중후해져 있었다. 무엇보다 남의 옷을 빌린 것처럼 아버지는 늘 품이 크고 펑퍼짐한 양복만 입고 다녔는데 지금은 몸에 딱 맞는 캐주얼 차림이었다. 처음이었다. 분명 낯선데, 이상하게도 옛날의 아버지보다 지금의 아버지가 훨씬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 낯선 친근감 때문일까. 차 문에 기대어 아버지를 지켜보던 나는 벚나무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벚꽃 향에 잠긴 바람이 은은한 감촉으로 다가와 이마를 간질였다. 벚나무 아래에 선 나는 가지마다 알차게 핀 벚꽃을 올려다봤다. 몇 개를 꺾어 신부 손에 쥐여주면 그대로 부케가 될 것 같았다.
“전에는 이런 봄꽃들이 밉고 싫었어.”
아버지가 작고 부드러운 꽃잎 한 장을 손끝으로 지그시 매만졌다.
“사람을 밖으로 풀러내는 꽃들이.”
“왜요?”
“나만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것 같았거든.”
“아버지도 나가면 됐잖아요.”
“우울증이 도졌어. 봄만 되면.”
아버지의 말 끝에 힘이 없었다.
“식욕도 떨어지고.”
“그래서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게 된 거예요?”
“봄이 되면, 특히 벚꽃이 필 시기가 되면 비가 오게 해달라고 빌었어.”
나는 아버지의 진중한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다 망가지라고. 애써 핀 꽃도, 화창한 날씨도, 약속도. 어쩌면 미래까지도. 꽃이 질 때까지는 방에서 꼼짝도 하기 싫었어. 할 수만 있다면 볕이 없는 지하 동굴 같은 데서 며칠 지내고 싶었어.”
나는 유난히 어두웠던 아버지의 서재를 떠올렸다.
“그럴 수 없어서 매일 속으로 되뇌었어. 모두 간절하게 불행해지길. 딱 나만큼만 불행해지길. 더도 덜도 말고 나만큼만…….”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