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절룩이며 들어온다. 양들이 풍기는 독특한 냄새가 희미하게 뒤따른다.
“안녕하세요.”
남자는 무뚝뚝한 인사를 건네고 쇳소리 나는 숨을 뱉으며 책상 앞 의자에 앉는다. 의자는 남자의 몸무게에 삐걱거린다. 남자는 웬만한 통증 갖고는 의사를 괴롭히지 않는 부류의 환자이다. 그런 환자의 방문이니 물론 걱정이 앞서지만, 의사는 축축한 날씨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를 건네며 근심을 숨겨본다. 그런 다음 회전의자를 굴려 남자와 마주 보며 앉는다. 이어서 두 손을 모아 무릎에 얹은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이런 자세가 환자를 편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의사는 남자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묻는다.
“가슴이요, 선생님.” 남자가 잠시 머뭇거린다.
“가래가 끓고 기침이 나요. 통 멎질 않네요.”
의사는 목을 들여다보고 가슴을 청진해 보겠다고 말한다. 남자가 입을 벌린다. 때운 치아가 많다. 남자의 시선은 벽에 고정되어 있다. 그가 차가운 청진기 앞에서 체크무늬 플란넬 셔츠의 단추를 푸는 동안 의사는 아내의 안부를 묻는다. 메리는 “훨씬 나아졌고 다 괜찮아요”라는 남자의 말을 듣고는 다행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남자는 웃지 않는다. 의사는 남자의 얼굴을 보면서 귀를 기울인다. 청진기를 먼저 둥그런 흉곽의 한쪽에 대고 이어서 반대쪽에 갖다 댄다. 남자의 숨소리는 평생 건초와 지푸라기, 양을 씻기는 화학 약물을 다룬 노인의 폐에서 날 법한 소리이다. 좀 시근거리기는 해도 지나치게 이상하지는 않다.
“집사람이 여기 와보라고 해서요.”
남자의 얼굴은 잿빛이다. 평소 트럭을 모는 남자를 길에서 마주쳤을 때와는 딴판이다.
“걱정되니까 그렇게 말씀하셨겠죠.”
의사는 이렇게 말하며 남자가 셔츠에서 한쪽 팔을 빼도록 돕는다. 그리고 남자의 넓은 등을 보고 앉는다. 털이 수북하다. 남자는 잠자코 있지만 경직된 어깨는 편치 않아 보인다. 의사는 청진기를 대고 등의 왼쪽, 오른쪽 소리를 듣는다.
“별거 아니면 그냥 갈게요.”
남자는 두 손을 팔걸이로 가져가더니 일어설 채비를 한다.
의사는 남자의 어깨에 손을 대고 저지하더니 시간을 끌어본다. 언덕 위 사정은 어떤지 물어보면서 혈압과 맥박, 체온을 측정한다. 의사는 종종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농부들이 언제나 보기보다 부유하고 예리하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요즘에는 환자 중에 농부가 많지 않다. 사실 의사는 전통적인 교육에서 벗어난 지성을 동경하고 그 때문에 자기 일이 힘들어질지언정 농부들의 극도로 절제된 예스러운 금욕주의에 감동하곤 한다. 골짜기 능선에 부는 바람이 떠오른다. 바람이 가지들을 잔뜩 구부려 놓은 덕에 그곳의 나무들은 극한의 날씨를 견디어낸다. 가까운 응급 의료 시설에서 일하는 한 의사는 환자가 농부일 경우일 경우 전문의의 진료를 받지 않으면 퇴원을 시키지 않는다. 농부가 응급 의료 시설까지 왔다는 사실 자체가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두둑한 상체를 다시 셔츠 안으로 욱여넣는 동안 의사는 그가 진료실로 들어올 때 다리를 절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평소에는 다리를 절지 않는데 어디가 아프냐고 의사가 묻는다. 의사는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친근하게 눈을 맞춘다. 남자는 아주 미세하게 어깨를 으쓱한다.
“좀 그런 것 같아요, 선생님.”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오른쪽 허벅지 위쪽에 손바닥을 댄다.
“울타리 문에 걸려서 애를 먹었어요.”
의사는 야금야금 이야기를 끌어낸다. 남자는 애를 먹은 게 두 주 전이라고 했다. 그때 이후로 고통이 가시지 않는다고, 다친 다리가 반대편 다리보다 짧아진 것 같다고 했다. 의사는 뼈에 실금이 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서 엑스레이 촬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근데 지금 양들이 출산하는 시기에요. 아직 받아야 하는 새끼가 몇백 마리는 돼요.”
의사는 암양이 새끼를 낳는 헛간을 떠올려본다. 마을에서 능선을 따라 반 마일 정도 가면 숲에 둘러싸인 곳에 헛간이 있다. 그렇게 다리가 아파서 어떻게 새끼를 받느냐고 의사는 묻는다.
“기어서요.” 남자가 말을 멈춘다.
의사는 기다린다.
“암양이 새끼를 낳으면 무릎으로 기어서 우리로 가요. 거기 옆에 작은 사다리가 있으니까 그걸 타고 우리로 들어가면 됩니다.”
남자는 의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지난 20년간 자신의 주치의였지만 아직도 어딘가 여학생 같아 보이는 의사의 눈을.
“좀 아프다고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아요, 선생님.”
의사는 바퀴 달린 의자를 밀며 책상 앞으로 돌아가 상냥하지만 단호한 태도로 엑스레이 검진 예약을 잡는다. 그리고 두 시간 후 검진이 이루어질 숲속 병원으로 가기 위해 구급차가 필요한지도 확인한다.
“꼭 받아야 한다면 우리 아들이 데려다주면 돼요. 지금 트럭에서 가디라고 있어요.”
의사는 남자를 돕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남자는 손가락을 흔들며 의사를 말린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남자는 다리를 절며 천천히 진료실을 나가 복도를 걸어간다. 의사가 멀어지는 남자의 뒷모습에 대고 조심히 가라고 말한다.
그날 오후 의사는 병원의 영상의학과 의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남자는 우측 넓적다리뼈 경부가 골절된 상태였다. 이것이 너무 놀라웠던 의사는 남자가 진료 후 넘어졌을 가능성에 대해 물어봤지만 넘어진 적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농부는 고관절이 골절된 상태로 보름을 걸어 다니며 양 떼의 출산을 도운 것이다.
고관절 수술이 있고 몇 주 뒤 의사는 농부가 잘 회복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집을 방문한다. 남자는 병원에서 가르쳐준 물리 치료에 대해 군소리를 한다.
“정말 말도 안 돼요. 무슨 고무줄을 쓰라고 줬는데, 콘돔인 줄 알았네. 나처럼 덩치 큰 사람한테 말이 돼요?”
하지만 의사를 배웅하는 남자의 태도에는 어떤 무례함도 없다.
농장에서 1마일쯤 들어가면 강물에 깊이 팬 땅이 아래로 꺼진다. 초지는 절벽과 가파른 골짜기로 바뀌는데, 여기 곳곳에 아주 오래된 숲이 옹이처럼 박혀 있고, 지난 과거의 삶의 파편도 흩어져 있다. 오래된 돌담이 미로처럼 굽이지고 뒤얽힌 오솔길은 어디로도 통하지 않는다. 이제 사슴과 오소리만이 사용하는 낡은 철길 옆 비탈에는 가시덤불과 산마늘이 무성하다. 인간의 시간이 아닌 나무의 시간에 맞추어져 있는 듯한 이 골짜기는 사람들이 들고 나는 와중에도 좀처럼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자연의 힘을 보여준다. 골짜기 안에 있는, 또는 그 위쪽 능선에 자리 잡은 몇 안 되는 마을은 초록의 바다에서 잠시 빌려 온 개간지처럼 보인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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