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음악과 미술의 연결고리를 찾아서
예술은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 옥스퍼드대학 명예교수이자 신 다윈주의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인류의 진화를 다윈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으로 설명하고 있다. 자연선택은 자연환경에 적응한 생물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논리로 생명체를 진화의 산물로 본다. 그것은 급격한 진화가 아니라 작은 변이들을 통해 이뤄졌으며, 어떤 설계자가 계획한 하향식 설계Top-Down가 아닌 작고 부분적인 규칙을 따르는 상향식 설계Bottom-Up 방식을 따른다고 본다. 철저히 설계자 입장에서만 본다면 인간은 완벽한 계획하에 합리적으로 진화한 산물은 아닐 것이다.
예술의 진화 역시 우리의 진화와 닮았다. 예술가가 작품을 만드는 것은 하향식 설계로 볼 수 있지만, 예술사라는 큰 흐름 속에서는 작은 돌연변이를 통한 상향식 설계와 진화가 어우러져 현재 우리의 예술세계를 만든 것이다. 이는 인류가 생존에 적합하게 진화되어 왔지만 합리적 진화의 산물이 아닌 것처럼 예술 역시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시대적 사조라는 명확한 한계 안에서 진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인류의 진화는 생존을 그 목적으로, 예술의 진화는 미메시스Mimesis, 모방를 기반으로 한 상상력을 원동으로 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 Toynbee는 “인류 문명은 도전과 응전의 역사이다.”라고 했다. 이는 예술에도 해당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도전과 응전은 피할 수 없는 시지프스의 형벌 같은 것일까? 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도전과 응전해 온 역사를 형벌에 비유할 수는 없을 듯하다.
진화의 핵심은 꿈꿀 수 있는 능력, 바로 상상력일 것이다. 이는 인간이 문명을 발전시키고 지구를 지배할 수 있게 만든 힘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역사는 상상하던 것을 현실로 이루고자 노력한 치열한 고민과 그 욕망의 응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상상력은 유추적 사고와 직관적인 영감 등에 의해 떠오르지만, 그 실현은 우리의 시선과 몸짓, 목소리를 통해 이뤄진다. 고대 라스코 동굴의 벽화부터 현대 전위예술까지 예술은 그 나름의 목적이 있다. 그것이 어떤 목적을 지니지 않은 무작위성無作爲性, Randomness을 표현할 때도 ‘무작위’라는 목적이 있는 것처럼 표현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가깝다.
생명이 태어났음을 알리는 신호에도 목적이 있다.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나왔음을 천명하는 아기의 울음, 바로 ‘소리’이다. 우리는 소리를 통해 세상과 처음으로 소통하고 그다음 눈을 떠서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며, 말하기를 통해 나 자신을 표현한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평생 해오는 것이며 그에 관한 기록이 바로 인류의 역사이다. 청각과 시각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인간의 본능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닫고 느끼며 소통하고 표현할 수 있다.
청각과 시각으로 표현하는 것은 은유적 말하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단계 이후 각각은 음악과 미술로 발전했다. 의미전달의 매개로서 음악과 미술은 언어적 특성 또한 지니고 있다. 인류는 청각 예술인 음악의 수월한 의미 전달을 위해 시각 요소와의 결합을 택했다. 그리고 문명 발달과 함께 고대 연극부터 오페라, 뮤지컬, 영화까지 다양한 시청각 예술로 장르를 넓혀 점차 나아갔다. 듣는 것과 보는 것의 만남, 그것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생각과 상상을 표현할 수 있었고 실현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클래식 음악가와 화가의 공통점에 대한 개인적인 추론을 바탕으로 한 글들을 다듬어 정리한 것이다. 음악가의 시대순과 중요도 위주로 편집했으나 신화나 우화처럼 독자 여러분이 끌리는 부분을 먼저 읽어도 좋다.
음악가와 화가는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예술가들이다. 각기 다른 장르로 은유적 말하기를 하는 그들의 언어를 탐구하고 서로의 특징과 공통점을 찾아가는 탐험은 통찰을 넘어 때때로 상상이 필요하였다. 물론 우리의 진화가 그런 것처럼 나의 상상을 통한 유추가 꼭 합리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음악 속 미술, 회화 속 음악 또는 문학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우리의 인지를 넘어 메타인식Metacognition으로 가는 즐거움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바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 하는 재미있는 탐험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2024년 3월
김상균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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