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우리는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초저출산·초저출생의 시대를 살고 있다. 태어나는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작아지면서 병원, 어린이집, 유치원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대도시에 있는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를 찾아올 노동력 부족과 감당하기 어려운 인구 부양 부담, 성장 동력을 잃은 경제, 군인 없는 군대, 지역 소멸 등 공포스러운 시나리오가 퍼지고 있다. 외면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한국 사회는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과 낳을 수 없는 사람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사람을 사귀고 아이를 낳는 생활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이런 모습이 왜 나왔는지 이유를 설명하라고 하면 이야기하는 사람 수만큼 다양한 설명이 나온다. 형편없는 우리 삶의 질에서 그 모든 이유들이 나올 것이다. 이 책에서는 삶의 질 관점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이유를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으로 나누어 설명해볼 것이다. 그러한 조건들이 만들어놓은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작업도 한다. 무엇보다 출산주체로서 여성, 엄마의 삶을 지나치고 저출산·저출생을 논할 수 없다.
어려운 상황이다. 위기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공포 시나리오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지금은 그나마 합계출산율이 0.7명대이고 출생아 수도 20만 명 수준이다. 그러나 이 흐름대로라면 합계출산율 0.6명대와 출생아 수 20만 명 이하도 금방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 그러니 0.6의 공포라는 표현도 틀린 말이 아니다. 공포는 공포다.
그러나 주저앉을 수도 없다. 한국은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소용없지 않았다. 다만 부족했고 우왕좌왕하며 대응을 내놓았다. 이제는 퍼즐 조각 하나하나에 매달리지 않고 수많은 퍼즐 조각으로 만들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릴 때이다. 그리고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하여 퍼즐조각 하나하나를 끼워 맞추는 작업을 시작할 때이다. 지금까지 없었던 획기적인 투자와 부모의 일·가정 양립, 교육개혁, 노동시장 개혁, 다양한 삶을 포용하는 가족관계의 변화, 새로운 가치관으로 사회의 그림을 만들어가야 한다. 하나하나의 퍼즐이 자리를 잡아갈 때마다 희망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1부
눈앞에 다가온 공포
사람이 사라지는 사회
초저출산·초저출생 시대가 온다
2018년 6월 서울시에서는 「단어 하나가 생각을 바꾼다, 서울시 성평등 언어 사전」을 발표했다. 이 자료에서 저출생이 성평등적인 용어이고 저출산은 성차별적인 용어라고 주장한 이후 의식적으로 저출산보다 저출생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왜 그런 주장을 했는지 이해는 한다. 국가가 출산 책임을 여성에게 떠넘기고 여성을 출산 제한 혹은 출산장려정책의 대상으로 만든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산율과 출생률은 다른 개념이다. 출산율과 출생률이 항상 일치된 모습으로 우리 현실을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은 아이 수를 의미한다. 그래서 공식 명칭은 ‘합계출산율’이다. 출생률은 해당 연도에 실제로 몇 명의 아이가 태어났는지를 인구수에 견줘 비율로 나타낸다. 이 비율이란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이며 공식 명칭은 ‘조출생률’이다. 출산율과 출생률 두 지표는 서로 다른 의미와 사용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둘 다 인구 변동이나 동향 분석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출산율로는 왜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지, 더 거슬러 올라가 왜 여성이 아이를 낳기 시작했는지 이유를 분석하고 정책적 대응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출생률은 지금 태어나는 아이 수에 맞춰 어떤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지 장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본 정보가 된다.
1945년부터 1970년대까지 한반도의 인구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일제로부터 해방 직후 일본, 중국, 만주 등에서 귀환민 유입이 있었고 한국전쟁 전후로 북한에서 월남한 피란민 수도 상당했다. 1960년 2,500만 명이던 남한 인구는 1945년 해방 당시 한반도 전체 인구와 맞먹는 규모였다. 1960년대에는 합계출산율이 5~6명 수준을 유지하면서 해마다 100만 명 정도가 태어나는 베이비붐 현상이 지속되었다. 지나친 인구 증가를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본 정부는 1960년대부터 가족계획사업을 추진했고 이후 인구증가율 자체는 감소 추세를 보였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1960년대,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1970년대, ‘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1980년대 등 정부의 시대별 표어를 보면 당시 인구정책의 방향을 짐작해볼 수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만 해도 한 해에 태어나는 아이 수는 70만~80만 명, 떨어져도 60만 명 정도였다. 1984년에 이미 합계출산율 1.74로 저출산 시대가 시작되었지만 저출생 시대는 아니었던 것이다. 합계출산율이 1.3 이하 초저출산율을 기록하기 시작한 2000년대에 들어서도 45만~50만 명은 태어났다. 2015년 기준 출생아 수는 43만 8,420명으로 2015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에 45만 명 내외의 아이들이 태어났으며 합계출산율도 1.2명 내외 정도는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5년을 기준으로 출산율과 출생률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2015년부터 2022년까지 출생아 수는 43.2퍼센트 감소하였으며 합계출산율 또한 1.24명에서 0.78명으로 추락했다. 출생아 수도 2020년부터 30만 명 이하로 내려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초저출산·초저출생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초저출산·초저출생은 어떤 결과를 만들 것인가? 통계청은 2019년에 장래인구추계를 발표하면서 이른바 ‘고위, 중위, 저위 추계’를 내놓았다. 그런데 지금 이 상태라면 우리나라는 출생하는 아이 수는 가장 적고 사망하는 사람 수는 가장 많은, 즉 인구가 큰 폭으로 줄어드는 ‘저위 추계 궤도’를 탈 것으로 보인다. 2020년부터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앞서기 시작했으며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인구의 자연증가 추세출생아 수에서 사망자 수를 뺀 값가 마이너스(-)가 되었다. 저위 추계, 혹은 이보다 출산율이 더 낮아지고 사망자 수가 많아지는 추세가 지속된다면 인구 규모는 더욱 축소될 것이다. 지금 20대가 노인이 되는 2060년경 한국 사회 인구 규모는 현재의 5천만 명에서 3,300만 명 수준으로 축소될 것이다.
‘너무 북적북적 살았는데 인구가 줄어들면 좋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이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출생아 수가 사망자 수보다 적으면 인구 규모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인구 중 노인인구의 비중이 커진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 맞지만, 청년인구가 줄고 노인인구가 늘어나면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사회 활력이 떨어진다. 소위 ‘비취업 활동 인구’라고 표현하는 아동, 청소년, 노인층을 취업 활동 인구가 부양해야 하는 부담이 커진다. 다시 말해 인구 부양 부담과 노년 부양 부담이 동시에 커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노후 소득은 취업 활동기에 비해서 현저히 적어지기 때문에 노인인구 증가는 소비시장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저출산 및 고령사회로 인한 경제활력 감소와 그에 따른 저성장이 우려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나라를 지킬 군인 수가 적어질지 모른다는 염려도 있다. 60만 대군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산부인과, 산후조리원, 소아과를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문을 닫고 초·중·고등학교의 학년별 반수가 작아지고 있다. 지방대 폐교 현상도 이미 시작되었다. 마을도 사라져간다. 타인에게 부양받을 사람들은 많아지고 여러 분야에서 노동력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 고령 노동자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 일본의 현실이 곧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 수도권에 인구가 몰려 북적이는 한국의 삶이 우리에게 그러한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게 막고 있을 뿐이다. 마치 점점 뜨거워져 끓기 시작하는 물 속에 영문도 모르고 남아 있는 개구리 같은 모습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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