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다는 착각과 성찰
누군가를 잘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할 때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가슴에 아프게 와 닿은 경험도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텁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착각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그 착각으로 삶이 곤경에 몰리고 아픔도 겪지만 곧 잊어버립니다. 착각이 내내 이어질 수밖에요. 바로 ‘민주주의’가 그렇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착각은 그를 이미 알고 있다는 오해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깟 민주주의를 모를까 시큰둥하게 여기며 민주주의는 내 인생과 무관하다고 착각합니다. 두 문제는 이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 스스로 물어보기 바랍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민주주의를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만일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시도지사들을 정기적으로 선출하는 제도쯤으로 민주주의를 이해한다면 반드시 되물어야 합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왜 그걸 민주주의라 여겼을까. 그렇게 오해하며 애면글면 먹고 살아가는 데 뿔뿔이 골몰해 왔을까.
인터넷 시대를 맞아 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은 세계적 현상입니다. ‘민주주의 모델’을 자임해 온 미국에서 2021년 1월 트럼프와 그의 열광적 지지자들이 대통령 선거에 불복하며 의사당을 습격한 살풍경은 미국식 민주주의의 한계를 생생히 입증해 주었습니다.
어디 미국뿐인가요. 202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지구촌을 강습한 바이러스 코로나19는 3년 새 700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가며 유럽의 이른바 ‘선진 민주 국가’들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여실히 드러내 주었습니다. 탐욕스러운 자본의 논리가 보편화하고 생명권과 건강권에서조차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면서 과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성찰케 했습니다. 독일의 역사학자 볼프강 몸젠은 유럽의 1848년 혁명을 분석한 책을 내면서 현재의 민주주의 질서를 당연하게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는 젊은 세대에게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로운 정치 사회 질서가 어떤 중대한 희생을 치르며 쟁취된 것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해 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민주주의조차 보수나 진보의 시각으로 나눠 봅니다. 물론 보수가 바라보는 민주주의도 있고 진보가 바라보는 민주주의도 있겠지요. 실제로 차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개념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닙니다. 보수와 진보 모두 동의할 민주주의 철학이 있으니까요.
무엇일까요. ‘보수도 진보도 동의할 민주주의 개념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대해 여러분 스스로 자신이 아는 한에서 답해 보기 바랍니다. 그 답과 제가 들려드리는 생각을 비교할 때 민주주의 이해가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습니다. 그때 민주주의가 개개인의 삶의 성숙과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강의실에서는 그 물음을 눈 마주치는 학생에게 물어봅니다. 다른 학생들의 답도 듣습니다. 그리고 토론합니다. 책에는 그런 과정을 담을 수 없지만 차분하게 읽어 가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독자 스스로 잠시 멈춰서 그 물음에 답해 본 뒤 읽어 가시기를 권합니다).
저는 독일 역사학자가 지적한 민주주의에 대한 과거 인식의 중요성에 동의하지만 거기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의 민주주의 질서에 순응 또는 적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숙한 민주주의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현재적 판단과 미래 전망을 나누고 싶습니다. 민주주의의 과거는 물론 미래도 현재를 살고 있는 여러분의 삶과 직결되어 있으니까요.
단언하거니와 민주주의를 선거로만 이해한다면 무지의 자기 고백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정치 체제를 ‘대통령 선출 체제’ 또는 ‘대의 정치 체제’라 하지 않고 굳이 ‘민주주의 체제’라 하는 까닭은 민주주의가 단순히 선거제가 아니라는 구체적 ‘증거’ 아닐까요.
심지어 한국에서 신문과 방송을 경영하고 있는 언론들, 신문·방송 복합체들은 대통령 직선제로 민주주의는 이미 이뤄졌다는 듯이 그 이상의 논의를 불온하게 여깁니다. 자유로운 생각과 토론을 가로막으며 버젓이 ‘자유 민주주의’를 강조합니다. 그들이 민주주의보다 굳이 자유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까닭은 무엇일까도 짚어 볼 문제입니다.
현대 정치학은 민주주의와 자유 민주주의를 딱히 구분하지 않기에, 한국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특별합니다.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부르짖는 정치인, 언론인, 교수들 가운데 정작 자유 민주주의가 군부 독재 아래 질식당하고 대통령 선거권마저 박탈했을 때 싸우기는커녕 입 한번 벙긋한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요.
과연 그들이 외치는 자유 민주주의를 신뢰할 수 있을까요. 촛불 혁명으로 한때 위협받았던 자신들의 기득권이나 특권을 지키려는 선제적 공세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실제로 그들이 자유 민주주의를 내걸 때마다 노동 운동을 탄압하거나 마녀사냥이 벌어지거든요.
자유 민주주의나 민주주의는 얼마든지 혼용해서 쓸 수 있음에도 굳이 나누려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맞춰 이야기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형식적으로 ‘자유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앞에 수식어를 붙였으므로 특정한 형태의 민주주의를 이르는 말이겠지요. 그래서 ‘민주주의는 곧 자유 민주주의’라는 주장은 자유 민주주의 밖의 어떤 민주주의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거죠. 자유 민주주의를 주창하며 정작 생각의 자유를 억압하는 자가당착조차 모르고 있는 윤똑똑이들이 정계와 재계는 물론 학계와 언론계에 많습니다.
학문적으로도 그렇고 현실로도 민주주의는 단순한 선거 제도 이상이듯이 자유 이상입니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추구해 왔고 지금도 그것이 기본 철학이니까요. 『캠브리지 영영 사전』을 보더라도 민주주의를 “사람들 사이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믿음the belief in freedom and equality between people에 기반한 정부 체계system of government”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자유 민주주의나 민주주의를 얼마든지 혼용할 수 있지만, 누군가가 전자만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혹시 평등을 경시하거나 외면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은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민주공화국’에 대한 논의와도 이어지는데요. 민주주의라면 잘 안다고 자부하는 이도 민주공화국이라면 조금 주춤할 수 있을 듯합니다. 공화제에는 ‘공공선과 공동 이익 추구’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공화국의 영어식 표현 ‘리퍼블릭republic’의 어원인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는 ‘공공의 것’을 뜻합니다. 민주주의 개념으로 보든 공화국 개념으로 보든 굳이 ‘자유’만 강조해서는 안 될 이유입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는 우리가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다는 착각으로 이어집니다. 민주공화국이나 공화주의의 정의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 적잖은 논쟁이 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무릇 학문의 목적이 삶의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있다면, 더구나 관념적인 생각을 현학적 표현으로 늘어놓길 좋아하는 교수들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민주공화국의 정의를 쉽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찬찬히 들여다봅시다.
“헌법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헌법 1조는 1948년 7월 17일 헌법을 제정하고 수차례 개정하면서도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다만 제1조 ①항과 ②항을 제헌 헌법은 1조와 2조로 나누었을 뿐 문장은 똑같습니다.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조차 제헌 헌법이 명문화한 1조와 2조를 무시할 수 없었지요. 그대로 살려 1조 ①항과 ②항으로 통합했습니다.
두루 알다시피 헌법은 모든 법 가운데 가장 높은 법입니다. 헌법이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법치주의 국가라면 모든 국민이 당연히 지켜야 할 최상위 법이 헌법이지요. 민주주의는 바로 그 헌법적 가치로서 보수와 진보의 잣대를 떠나 있습니다. 한 나라의 헌법에 보수주의자들의 헌법이 따로 있고 진보주의자들의 헌법이 별개로 있지 않잖습니까.
보수도 진보도 동의해야 할 가치, 보수와 진보 공동의 정치 철학이 헌법 제1조에 담겨 있는 건데요. 만약 누군가가 1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헌법 개정 운동을 펴든가, 그렇지 않는 한 따라야겠지요. 우리가 법치주의를 주창하려면 헌법의 가치, 그 가운데도 제1조를 중시해야 마땅합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보수의 헌법 제1조가 따로 있고 진보의 헌법 제1조가 별개로 있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헌법 제1조는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요? 저는 정치 커뮤니케이션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헌법 제1조를 물은 뒤 질문합니다.
“헌법은 최상위 법입니다. 모든 법 조항은 단어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합니다. 그런데 1조 ②항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는데 굳이 그 권력 앞에 ‘모든’이라는 관형사를 넣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여러분께서도 지금 더 읽기 전에 저의 질문을 받았다고 가상하고 짚어 보기 바랍니다. 무슨 까닭일까요. 강의실 대학생들이 그랬듯이 아마 적잖은 분들이 알아차렸으리라 생각합니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했을 때, 대다수는 그 권력에 ‘정치권력’만을 떠올리기 십상입니다. ‘모든’이 들어간 까닭은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다른 권력들까지 포함하고 있어서입니다.
정치권력 외에 어떤 권력power들이 떠오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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