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다시, 페미니즘을 묻는다
글쓰기는 더욱 어렵고 두려운 일이 되었다. 현실에 들고 나는 과정in and out, 즉 인식 과정이 격렬해졌고 그만큼 언어화도 힘들어졌다. 근본적으로는 나의 무능력 탓이지만, 예전과 달리 이제는 남성 문화뿐만 아니라 동료, 여성주의자, 여성들과 내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아졌다.
분명 페미니즘은 대중화되었다. 그러나 한계 없는 자본주의, 인류세 시대의 한국 사회 페미니즘에 대한 억압과 금기, 반발은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이 삶의 ‘기본값’이 된 반면, 그만큼 남성 문화의 저항도 심해졌다. 이 문제의 양상은 상당히 복잡해 보인다.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의 의미는 이전과 달라졌고, 남성 문화는 그저 당황하고 있다. 다시 말해 페미니즘의 대중화에 비해 한국의 여성주의 담론의 발전은 더디고, 일부 여성들은 기본적인 사회 정의에 반하는 언설예를 들어 성 소수자나 난민에 대한 적대와 탄압을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한편 남성 문화의 젠더 문해력은 ‘혐오’ 수준에 가깝다. 지난 30여 년간 여성 운동이 추구해 온 젠더 관련 법들은 그 시행과 결과 모두 극히 불안정하다.
내 몸은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에 역부족인 듯싶다. 매일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다. 한국 사회에서 젠더는 크게 변화했지만 그 변화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는 준비가 부족한 듯하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한편 당연하게도 30대의 젠더와 50대의 젠더는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 차이를 두고 사회와 타인과 소통하기도 쉽지 않다.
누구나 그렇듯 자기소개는 어려운 일이다. 나는 안목 있는 독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 군 ‘위안부’ 문제를 계속 공부하는 연구자, 남성성과 여성성이 모두 자원으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를 희망하는 사람이고 싶다. 이 중 맨 마지막은 앞의 두 가지에 비해 나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다.
20년 전 《페미니즘의 도전》2005년을 처음 펴냈을 때, 이미 한국은 글로벌 자본주의에 급속히 편입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 통치 체제가 우리의 삶에 깊이 침윤하기 시작했다. 각자도생을 위해 자기 계발 열풍이 불었지만, 오래갈 리 없는 이 노력에 지친 사람들은 ‘힐링’과 정의를 갈망했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계급의 양극화에 대한 자본주의의 성공적인 처방이다.
이제 부모의 계급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자기 계발만으로 자원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고립되고 방치된 개인들은 생존을 유지하고 시민권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젠더 정체성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강력한 힘을 미치게 되었고, 신자유주의 체제의 핵심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한국적인 남성성’을 체현한 남성들, 자신의 몸을 자원화하는 데 적극적인 여성들이 등장했고, 이들을 위한 정치적, 경제적 장場이 형성되었다. 이 현상이 바로 당대 한국 사회에서 성차별이 ‘젠더 갈등’으로 둔갑한 이유이고 이후로도 지속될 것이다.
《페미니즘의 도전》이 사회 정의로서 여성주의를 ‘소개’했다면, 이 책은 변화된 여성주의, 정체성의 정치 위주의 담론을 분석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변화해 온 한국 사회의 성 문화섹슈얼리티, sexuality를 살펴보고 더불어 기존의 논쟁 구도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개인을 보호하는 공동체나 사회구조가 작동하지 않고,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하는 통치 방식을 가리킨다. 이때 개인들은 생존하기 위해 자신이 지닌 자원을 총동원하는데, 부모의 자원은 물론이거니와 나이, 건강, 젠더, 식사량‘먹방 유튜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망라한다. 특히 여성성은 기존에는 차별과 억압의 ‘원인’이었지만, 지금 일부 여성에게는 자원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가속화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체제 일상에서 한국 사회 구성원의 섹슈얼리티 실천practice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다음과 같다. 1) 사회의 구조적 피해자이면서도 구조 안에서 다양한 대응을 해 나가는 여성들의 행위성의 다양화 2) 젠더에 기반한 폭력gender-based violence이 성차별에서 안전 문제로 확대 3) 터프를 비롯한 사회 정의에 반하는 페미니즘의 등장 4) 여성주의의 대중화와 함께 가속화하는 정체성의 정치화본질화 5) 신자유주의 체제의 고립적 개인화 전략이 여성에게는 성 역할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함으로써 생기는 여성의 개인화.
20대의 젠더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불안정하다. 국가가 남성들을 징병제로 차출하는 동안 일부 극소수 여성들은 ‘차별 없는’ 시험 제도를 통해 사회에 진출한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일시적이고 일부 여성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전히 여성들은 남성 임금의 60퍼센트를 받고, 경력 단절의 위협과 위험 속에 공사 영역에서 이중 노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20대 일부 남녀의 삶이 전체 남성과 여성을 대변하는 듯 여겨지면서 착시 현상이 발생한 데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성평등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인식 차이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진로를 고민하는 20대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성차별이 ‘젠더 갈등’으로 오해되고 둔갑하는 데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대다수 남성의 징병제에 대한 불만과 극소수 여성의 ‘사회적 성취’가 전반적인 젠더 현상으로 표상되지만, 이는 성별 ‘갈등’ 문제가 아니라 20대 남성과 ‘성공한 50대 남성’의 자녀 간의 계급 문제이다. 80대 여성과 남성은 그들 사이의 성별보다는 다른 나이대의 시민들과 연령 차별 문제가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 65세 이상 시민들의 대중교통 무임승차를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갖가지 갈등과 혼란, 우울은 이미 일상이 되었다. 젠더는 다른 사회적 억압 요인과 복합적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논의 구도는 여전히 초기 자유주의적 접근에 머물러 있다. 대표적으로 임신 중단 권리 논쟁이나 성형 시술 문제가 그렇다.
임신 중단을 여성의 ‘선택권pro-choice’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면 ‘생명권pro-life’과 경합할 경우 애초부터 택일의 문제가 ‘될 수 없다’. 더구나 이 논리 구도 속에서는 여성의 임신 중단 고통은 설명할 수조차 없다. 이 논쟁은 남성 피임 의무의 문제로 이동해야 한다. 더구나 10대 청소년의 첫 성‘경험’ 평균 연령이 12.8세인 상황에서가장 최근 조사인 2013년 통계에 따르면 10대 남성은 12.7세, 여성은 13세이다 10대 남성의 피임 교육은 너무도 중요하다. 첫 성교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10대 여성의 임신 중단 경험을 고려하면 성교육남성 피임 교육은 국민 건강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임신 중단은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전제한 후에 그다음 단계로 이동해야 한다.
한편 만연한 성형 시술은 이제는 개인의 선택, 외모 변화로 인한 자신감 향상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해서 성형 시술을 할 수 있는 계급의 문제이자 의료 인력에 관한 문제이다. 성형외과와 피부과 선호로 인해 다른 진료 분야소아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인력이 절대 부족해지는 현상, 즉 공중보건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나는 저출산이 ‘사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역 불균형 발전, 수도권 인구 집중이 극심한 한국 사회에서 저출산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지역은 군 단위 이하의 지방 자치 단체이다. 바로 ‘지방 소멸’, ‘제2의 분단’으로 불리는 상황이다. 섹슈얼리티여기서는 재생산는 이렇게 다른 사회적 모순과 함께 사고해야 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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