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지하층의 경비원 배치 사무실 앞에 빈 예술품 운송 상자들이 쌓여 있다. 1층의 무기와 갑옷 전시관 바로 아래에 있는 사무실이다. 놓여 있는 운송 상자들은 형태와 크기가 제각각이어서 커다란 박스처럼 생긴 것도 있고, 캔버스처럼 폭은 넓고 두께가 얇은 것도 있다. 그러나 하나같이 위풍당당하고, 옅은 색의 가공하지 않은 원목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져서 희귀한 보물 혹은 이국적인 야수까지도 담아 운반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듯 보인다. 근무복을 입고 출근한 첫날, 이 견고하고 낭만적인 물건들 곁에 서서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일들을 하게 될지 상상해본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너무 강렬하게 사로잡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한 여자 경비원이 나를 데리러 왔다. 나의 사수, 아다Ada다. 키가 크고 밀짚 같은 머리를 가진 그녀는 동작도 갑작스러워 마치 마법에 걸린 빗자루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낯선 억양으로핀란드계일까? 인사하며 내 짙은 푸른색 상의에 떨어진 비듬을 털어내고는 근무복이 잘 맞지 않는 것에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고는 “운송 중인 예술품 우선”이라는 경고 표지판들이 붙어 있는 노출 콘크리트 복도 쪽으로 휘휘 손짓하며 나를 데려간다. 성배 하나가 카트에 실린 채 미끄러지듯이 옆을 지나간다. 우리는 이동식 리프트그림을 걸거나 전구를 갈 때 사용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옆의 닳아빠진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간다. 리프트의 한쪽 바퀴 옆에는 반으로 접은 《데일리뉴스》 신문과 종이컵, 읽던 곳을 접어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한 권이 놓여 있다. “지저분해.” 아다가 내뱉는다. “개인 소지품은 라커에 보관하도록.”
그녀가 평범한 철제 문을 밀어 열자 마치 〈오즈의 마법사〉처럼 흑백 세상에 갑자기 색이 입혀지듯 환상 같은 〈톨레도 풍경View of Toledo〉스페인의 도시 톨레도를 묘사한 엘 그레코티El Greco의 대표작. 그는 그리스 출신이자 스페인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신비롭고 역동적이며 표현적인 회화로 명성을 얻었다―옮긴이이 우리를 마주한다. 감탄할 시간은 없다. 아다가 걸어가는 속도대로 플립북을 넘기듯 그림들을 스쳐 지나가며 수세기를 넘나든다. 그림의 내용은 신성과 세속을 오가고, 배경은 스페인이었다가 프랑스가 되었다가 네덜란드였다가 다시 이탈리아가 된다. 마침내 우리는 높이가 2.5미터에 달하는 라파엘로의 대작 〈성좌에 앉은 성모자와 성인들Madonna and Child Enthroned with Saints〉라파엘로 특유의 우아한 색감과 대칭적인 화면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 〈콜론나 제단화Pala Colonna〉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옮긴이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여기가 첫 근무지인 C구역이야.” 아다가 말한다. “우리는 10시까지 여기에 서 있어야 해. 그다음은 저기. 11시에는 저쪽 A구역으로 갈 거야. 조금씩 돌아다니거나 서성거리는 건 괜찮지만, 친구, 우리 자리는 여기야. 명심해. 자, 그다음에는 커피를 마시러 갈 거야. 여기가 당신의 전속 근무지지? 옛 거장의 회화Old Master Paintings,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홈페이지에는 “European Paintings”으로 소개되고 있다―옮긴이 전시실.” 나는 그런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면 운이 좋은 거야.” 그녀는 계속 말을 잇는다. “결국에는 다른 곳으로도 배정받게 되겠지. 고대 이집트 전시실에 서 있다가 갑자기 잭슨 폴록으로 보내질 수도 있고. 하지만 처음 몇 달간은 당신을 여기로 배치할 거야. 나중에는, 흠, 아마 근무일의 60퍼센트 정도만 여기서 일하게 될 테지. 여기서 근무하는 동안에는….” 그녀는 발을 두 번 구른다. “나무 바닥이라 발이 덜 피곤할 거야. 믿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날 믿어. 나무 바닥에서 열두 시간 근무하는 건 대리석 바닥에서 여덟 시간 근무하는 거랑 동급이야. 여기서 열두 시간 근무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발이 거의 아프지도 않을 거야.”
우리는 전성기 르네상스 갤러리에 있는 듯하다. 모든 벽에는 웅장한 그림들이 가느다란 구리 선에 매달려 있다. 방 자체도 위용이 넘친다. 크기는 세로 12미터에 가로 6미터 정도이고 쌍여닫이식 출입문이 세 방향으로 나 있다. 바닥은 아다가 장담한 대로 말랑하고, 천장은 높다랗고, 천장으로 들어오는 자연광과 램프의 불빛이 전략적인 각도로 작품들을 비추고 있다. 방 가운데에는 벤치가 하나 놓여 있는데 그 자리에는 중국어로 된 관람객용 지도가 버려져 있다. 벤치를 지나니 비어 있어서 더 눈길을 끄는 벽 위로 한 쌍의 철사가 느슨하게 드리워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다가 그것을 의식하고 이야기한다. “벽면에 붙은 라벨의 서명을 보면….” 이곳이 충격적인 범죄 현장이 아니라는 유일한 증거가 있는 쪽을 그녀가 몸짓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프란체스코 그라나치Francesco Granacci 작품이 여기 전시되어 있었는데 보존 연구원이 청소를 하려고 가져갔어. 그게 아니라면 어딘가로 대여돼서 반출됐거나, 큐레이터 사무실에서 살피는 중이거나, 스튜디오에서 작품 촬영 중일 수도 있겠지. 누가 알겠어.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항상 이런 라벨이 남겨져 있을 거야.”
우리는 관람객이 그림에 약 1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게 쳐져 있는 정강이 높이의 방지선을 따라 서성이며, 관리해야 하는 다음 전시실로 들어간다. 이곳에서는 보티첼리가 가장 유명인사인 것으로 보인다. 그다음으로는 더 많은 피렌체 출신 예술가들의 작품이 들어차 있는 조금 작은 세 번째 전시실이 있다. 여기까지가 오전 10시까지의 순찰 영역이고 이후에는 그다음 세 개의 전시실로 이동할 것이다. “인명과 재산을 보호해. 반드시 그 순서대로.” 아다는 한결같이 스타카토처럼 강조하는 말투로 강의를 이어간다. “이건 복잡할 것 없는 일이야. 젊은 양반. 하지만 바보같이 굴어서도 안 돼. 항상 눈을 열고, 주위를 둘러보고, 성가신 일들을 허수아비처럼 쫓아버려야 해. 작은 사건이 일어나면 알아서 처리해. 만약 더 심각한 일이 발생하면 사령실에 통보하고 교육 때 배운 프로토콜을 따라야 해. 우리는 얼간이들이 경찰 역할을 하게 만들 때 빼고는 경찰이 아니야. 다행히도 그건 자주 있는 일은 아니고, 아침이니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몇 가지 있는데….”
라파엘로 전시실 쪽으로 돌아간 아다는 까치발을 들고서는 관람객용 계단으로 통하는 유리문을 열쇠로 열었다. 그다음 아무렇지도 않게 관람객 접근 방지용 케이블을 넘어갔다. 놀라운 범죄 현장을 목격하는 느낌이다. 묵직한 황금색 액자 아래에 쭈그려 앉은 그녀는 계기판의 스위치들을 가리키며 말한다. “보통은 심야에 근무하는 야간 순찰대가 조명을 켜둘 테지만, 만약 아니라면….” 그녀가 스위치 여섯 개를 한꺼번에 내리자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길고 어두운 터널이 되고 벽에 걸린 르네상스 그림들은 뿌연 은닟 범벅이 되었다. 스위치를 다시 올리자 놀랄 정도로 큰 ‘덜컹’ 소리와 함께 전시실들에 차례로 하나씩 불이 들어왔다.
9시 35분 정도가 되니 관람객들이 조금씩 흘러 들어오기 시작한다. 옆구리에 낀 포트폴리오로 보아 미대생인 듯한 첫 방문자는 전시실에 자기 혼자라는 것을 깨닫고 놀란 나머지 글자 그대로 숨을 삼킨다. 그녀가 나와 아다를 인원으로 고려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 프랑스인 가족이 “뉴욕 메츠New York Mets”라고 적힌 캡 모자를 맞춰 쓰고아마도 그들은 그게 관광객들이 더 흔히 고르는 뉴욕 양키스 팀의 모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뒤를 이어 들어오자 아다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녀는 “우리 방문객들은 대체로 멋진 사람들이지”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여기 그림들은 매우 오래됐고 손상되기 쉬워. 이걸 알고도 사람들은 아주 바보 같은 짓을 할 수 있지. 어제는 아메리카 전시관에서 일했는데 하루 종일 사람들이 애들을 세 마리 청동 곰 동상 위에 앉히고 싶어 했어. 상상이나 할 수 있어? 여기 옛 거장 전시관은 훨씬 낫지. 아시아 미술 전시관만큼 조용하지는 않지만 19세기 전시관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야. 물론 어디에서 일하든 생각 없이 다니는 사람들을 주의해야 해. 저기 좀 봐. 바로 저쪽!” 복도 건너편에서 프랑스인 아버지가 방지선 너머로 손을 뻗어 라파엘로풍의 디테일을 가리키며 딸에게 설명하고 있다. “무슈Monsieur!” 아다는 필요한 것보다 약간 더 크게 소리친다. “실 부 플레S’il vous Plaît! 그렇게 가까이는 안 돼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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