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부족을 느끼다
계획한 모든 일이 이를 위해 주어진 시간에 맞지 않을 때가 많다. 머릿속에 이상적인 하루에 대한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된 적은 없다. 한 주를 신중하게 계획하더라도 매일 저녁 하고 싶었거나 해야 할 다른 일, 하면 좋았을 일, 오래전부터 갈망했던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상적인 하루는 언제나 내가 깨어 있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사회학자 제니 쇼Jenny Shaw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우리의 주관적 인식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대 사회의 변화한 일상과 연결시켜서 우리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원하게 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일하거나 무언가를 먹거나 장을 볼 수 있는 시간적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전반적으로 더 많은 것을 하려는 태도가 기본적으로 강화된다.” 우리가 이러한 선택 가능성의 범위를 넓힌 이유는 일상을 더 평온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도시의 슈퍼마켓은 밤 10시에 퇴근하는 사람들이 다음 날 아침에 커피에 넣어 마실 우유를 구입할 수 있도록 저녁 늦게 문을 닫는다. 또한 많은 상점은 마감 시간 이후에도 온라인으로 주문된 상품을 배달한다. 늦은 밤에도 외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엄청나게 많아졌으며, 일부 식당은 24시간 영업을 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유동적이고Mobile 유연하게Flexible 일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환경이 많아졌다. 심지어 24시간 운영하는 피트니스 센터도 있다. 방대한 비디오 트레이닝Video Training 덕분에 일이 언제 시작하고 끝나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충분히 일찍 일어나거나 늦게까지 깨어 있으면서 매일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가능성뿐만 아니라 타인의 기대 또한 커졌다. 그 자리에 갈 수 없어서, 혹은 시간이 없어서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변명은 점점 신빙성을 잃고 있다. 우리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범위를 제한하고 있을 뿐이다. 피로는 싸워서 이겨낼 수 있다. 우리의 행동은 외부의 제약보다는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자신의 의지와 야망에 점점 더 좌우된다. 그렇게 우리는 24시간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시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시기다. 어린이에게 마치 시간은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끝이 없어 보이고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진다. 5분과 5시간, 오늘과 내일 그리고 먼 미래의 차이를 인지하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시간은 이동 방향과 거리가 정해져 있는 수영 레인과 비슷해진다. 결국 우리의 시간은 욕조 속 물과 같다. 욕조 안에 겨우 몸을 담갔더니 식은 물이 넘쳐 흐르는 것이다. 교육학자 잉그리트 베스트룬트Ingrid Westlund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경험을 아동의 시간 사회화의 마지막 단계로 보고 있다. 아동은 시계를 읽는 것부터 시작하여 여덟 번의 수업을 통해 서서히 ‘시간 어른’으로 성장한다. 베스트룬트에 따르면 아동이 자신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고 인식하고 무언가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싶다는 바람을 표현하는 순간, 성인처럼 시간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가질 때 비로소 시간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볼 수 있다. 잉그리트 베스트룬트는 자신의 연구 보고서에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갖고자 하는 바람을 이미 12세 아동에게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이는 여아에게서만 관찰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단순히 시계에서 시간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 부족을 느낀다는 사실은 시간이 방향 설정의 수단 그 이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우리는 감정을 시간과 연관시키고, 시간은 우리 안의 감정을 유발한다. 이를테면 시간 압박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무언가를 성취하면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나 한가한 주말을 생각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긴장이 풀리는 것 또한 예로 들 수 있다.
시간 부족을 인식하는 건 냉정하게 말하면 현실을 자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아이들은 다른 많은 영역에서 이론적으로 가능한 것이나 자신이 바라는 것이 모두 성취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경험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간에 대해서도 자신의 가능성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배운다. 하지만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은 “시간 자체는 부족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높은 기대치로 말미암아 부담감을 경험할 때 비로소 발생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기대치가 실제로 실현 가능한 범위보다 클 때 시간 부족을 느낀다. 말하자면 너무 많은 것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주된 이유가 무엇이든 극대화하려는 인간의 욕망 때문일까? 우리는 욕망을 내려놓음으로써 시간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삶에 대해 갖는 소망과 천진난만한 꿈으로 주어진 시간을 꽉꽉 채우고 있다. 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상상력 덕분에 이런 시간의 틀을 뛰어넘을 수 있다. 이는 시간 부족에 대한 호의적으로 시적인 관점일 것이다. 매일 우리가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면 우리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을 이루기에는 현재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경험해보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을 미래로 미루게 된다. 내일이면 우리는 새로운 시간을 갖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시간은 긴 삶에 걸쳐 온갖 꿈과 소망을 실현할 기회를 제공하는 풍부한 자원이라고 볼 수 있다. 시간이 때때로 부족하다는 것은 반대로 우리에게 시간을 풍성히 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시간의 풍만함을 이해하고, 우리의 시간이 풍족하다는 의식을 우리의 시간 사회화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200년 전만 해도 공장 노동자들은 하루에 14~16시간, 주 6일 동안 일했다. 오늘날 생업 활동 시간이 훨씬 짧아졌다는 사실은 우리가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풍요로워졌으며, 우리가 시간 부족을 느끼는 건 정당하지 않다는 논거로 사용된다. 근로 시간이 짧아진 데다가 대부분 국가에서 기대 수명이 꾸준히 증가했다. 150년 전 독일의 기대 수명은 영유아 사망률이 높은 탓에 평균 40세 미만이었고, 60세 이상까지 산 사람은 인구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1960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1870년생 사람들에 비해 평균 30년을 더 살며, 연방 통계청의 진단에 따르면 평균 2030년까지 살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독일에서 태어난 여아는 조부모 세대보다 13년 더 오래 살 것이며, 평균 수명은 83.6세로 예상된다. 같은 연령대의 남아는 여아에 비해 수명이 약 4년이 짧지만, 평균 78.9세까지 살 것으로 예상된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서로를 돌보는 방식이 우리에게 시간을 선사한 것이다. 이론적으로 우리는 우리 일상을 잘게 쪼개어 길어진 삶 곳곳에 분산시킬 수 있다는 인식으로 시간 부족감에 대응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동시에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아동이 겪는 전형적인 시간 사회화와 오늘날 성인이 자신의 삶을 조직하는 기술로써 필요한 시간 관리 능력은 미래보다는 현재에 훨씬 더 초점을 두고 있다. 물론 살면서 한 번은 하고 싶은 일, 60세 혹은 70세에도 실현하고자 하는 일들로 채워진 버킷 리스트Bucket List를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이러한 장기적인 인생 계획은 체계적으로 학습되지 않으며 일상보다는 특별한 소망과 관련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시간 관리 기술을 사용하여 계획한 일들이 이를 위해 할당된 시간에 정확히 들어맞거나 더 빨리 실행되도록 자신의 시간을 구성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활동을 끼워 넣을 수 있거나 새로운 계획을 짜는 시간적 여유가 생기게 될 테니 말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시간을 관리하는 걸 배울까? 아이들은 저녁을 먹기 전까지 방을 정리해야 한다거나 45분의 수업 시간 동안 시험을 치르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해야 할 과제에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배운다. 이 경우 시간이 부족한 이유는 아이들이 기대감에 스스로 부담을 느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 즉 어른들이 의도적으로 활동 시간을 부족하게 주기 때문이다. 시험 과제를 훌륭하게 쓰고 싶다는 아이의 욕구는 모든 학생이 45분 안에 시험 과제를 완성해야 한다는 교사의 기대 때문에 제한된다. 말하자면 시간 부족은 자기 자신의 요구라는 맥락에서 내면적으로 발생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향한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통해 외부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민족학자 라우라 베어Laura Wehr는 “시간은 가장 강력한 사회적 통제 수단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학교는 “이러한 훈육 과정의 핵심 기관”으로, 아이들이 아동의 시간 세계에서 어른의 시간 세계로 옮겨가는 곳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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