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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공기처럼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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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1 “교수님은 왜 공부를 하시는 건가요?”
사회운동 단체의 일을 열심히 돕던 한 학부생이 내 연구실에서 석사과정 공부를 하고 싶다고 찾아온 적이 있다. 왜 공부를 하려 하는지 물었다. “세상을 더 평등한 곳으로 만들고 싶어서요.”
그런 목적이라면 대학원 공부를 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부는 공부인 것이라고. 논문을 쓰다 보면,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다지 놀랍지 않은 상식에 가까운 결론을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문헌을 읽고 정리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도 우리가 가닿는 자리에는 종종 불확실성이 섞여 있다고. 그리고 논리적 엄밀성을 추구하는 학계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어서,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실을 사후적으로 분석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고 그조차도 온전히 해내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학생이 내게 물었다. “그럼 교수님은 왜 공부를 하시는 건가요?”
나는 할 줄 아는 게 이거 하나였다고, 그리고 공부가 가진 힘을 믿는다고 답했다. 공부가 당장 사회 변화를 만들어 내거나 속 시원한 말로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지는 못하지만, 인류가 유사한 문제를 두고서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오랫동안 쌓아온 지식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얻게 되는 통찰이 있다고. 그 통찰의 힘이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어준다고.
모든 논문의 맨 마지막에는 연구 결과의 한계를 서술하는데, 그 부분에서 연구자는 항상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한계에 대한 서술이 개별 논문에는 약점일지도 모르지만, 학술 언어가 지닌 가장 큰 힘이라고. 내 연구는 이러한 가정 위에서 진행되었고, 그 가정이 무너질 경우에는 결과도 힘을 가질 수 없다고 밝히는 화법이 답답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만큼 정직하고 단단한 언어라고.
#2 차별을 경험하고 인지하고 이야기하는 일
깊게 들어가야만 보이는 질문들이 있다. 트랜스젠더의 차별 경험에 대한 연구를 할 때였다. 보통 차별 경험은 “지난 1년간 구직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한 적 있습니까?”와 같은 설문 문항을 통해 측정한다. 우리 연구팀 역시 처음에는 그런 질문들만 사용했었다. 그러나 연구를 하며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을 만나 인터뷰할수록 그 질문들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게 명확해졌다.
한국의 트랜스젠더에게는 구직 과정에서 성별을 표시해야 하는 서류 심사가 종종 큰 장벽으로 작동했다. 법적 성별정정을 한 트랜스젠더와 그렇지 않은 트랜스젠더 모두에게, 자신의 외모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의 첫 번째 숫자가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하는 게 매번 큰 과제였다. 그래서 이들은 종종 취업을 포기하곤 한다. 취업 지원을 포기하게 되니, ‘구직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할 기회 자체가 박탈되곤 한다. 문제는 이러한 장벽이 취업할 때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병원, 은행, 동사무소에서도 많은 트랜스젠더가 차별받을 수 있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 애쓰고 있었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서는 조사에 참여한 트랜스젠더 554명에게 신분증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하는 상황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까 봐 일상적 용무를 포기한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설문 참여자 중 119명21.5%이 병원 이용을, 83명15.0%이 보험 가입이나 상담을, 79명14.3%이 은행 업무를 포기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언제 맞닥뜨릴지 모르는 차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차별을 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 이들의 몸을 망가뜨리는 차별은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항상 함께 존재하며 몸을 긴장시킨다.
장애인의 차별 경험을 측정하는 과정에서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전자제품 매장 접근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때였다. 매장에서 일하는 대기업 직원분들은 친절했지만, 손가락으로 글자를 입력하면 음성이 재생되는 기계를 사용하는 뇌병변 장애인분들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저 멀리서 바라보는 직원분들의 눈빛에서 ‘저분들이 가능하면 내게 오지 않았으면’ 하는 태도가 역력히 느껴졌다. 그 분위기가 동행한 비장애인 연구원에게는 숨이 막힐 만큼 답답했다. 그런데 현장 조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눌 때, 장애인 당사자분들이 그 경험을 차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히려 당황하는 비장애인 연구원을 위로하며 “이 정도는 괜찮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며 알게 되었다. 일상에서 줄곧 그런 눈빛을 감당하며 살아야 했던, 그 모멸적 시선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상시적인 삶의 환경이었던 이들은 그것을 차별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있었다.
사회적 약자 집단의 차별 경험을 측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캄보디아나 네팔 출신 이주 노동자의 노동환경과 건강을 연구할 때였다. 연구자들은 차별 경험이나 우울 증상 같은 경험을 측정할 때, 문항의 타당성이 검증된 표준화된 설문지를 사용한다. 그런데 설문지를 이주노동자들의 모국어로 정교하게 번역해서 제공한다 해도, 모든 설문 참여자 그 질문에 답하지는 못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본국에서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 저숙련 노동자로 와서 일하는 이들은, 실은 가장 위험한 노동환경에서 일하지만 부족한 문해력으로 인해 설문조사에 응하지 못했고, 이들의 차별 경험은 데이터가 될 수 없었다. 설문 문항의 의도와 맥락을 이해하면서 각 나라의 일상적인 말로 설명해내는 통역자가 필요했지만 그런 이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이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통해 질적 연구를 기획할 때는 또 다른 문제를 만났다. 내용만이 아니라 어조와 태도까지 중요한 관찰 대상인 질적 연구의 특성상 통역을 거쳐서 진행하는 연구는 한계가 분명하지만, 연구자가 각 나라 언어를 배우기 어려운 상황에서 통역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문제는 통역자였다. 처음에는 두 나라의 언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이면 된다고만 생각했지만, 통역자는 기계가 아니라 나름의 역사와 경험을 가진 인간이었다.
예를 들어, 네팔은 뿌리 깊은 계급사회이다. 법적으로는 1963년에 카스트제도를 폐지했지만, 출신 계급이 다른 커플이 결혼하려다 살해당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할 만큼 네팔에서 계급 구분은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성직자나 학자와 같이 정신노동을 하는 직업은 가장 높은 브라만Brahman 계급의 몫이고, 달리트Dalit는 카스트제도에 속하지도 못하는 이른바 ‘불가촉 천민’ 계급으로 주로 시골 변두리에서 육체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한국에 유학생으로 와서 두 나라의 언어를 모두 잘 구사할 수 있는 이는 브라만인 경우가 많고 저숙련 노동자로 와서 일하는 이는 상대적으로 낮은 계급이거나 달리트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브라만 계급의 통역자가 달리트 계급 노동자의 차별 경험을 한국어로 통역하는 내용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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