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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를 자주 찾는다. 대부분 밤에 온다. 그러고는 내 침대 옆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당신 늙었어. 나쁜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다. 그녀의 음성은 명랑하고,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 그녀는 내 침대 가장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당신 머리숱은, 하고 그녀가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며 말한다. 머리숱은 여전히 많네. 허옇게 세기는 했어. 당신만 늙지 않았어, 하고 내가 말한다. 그게 날 슬프게 할지 행복하게 할지 모르겠어. 우리는 결코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시간이 흐른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그녀는 거의 매일 밤 온다. 이따금은 새벽이 되어서야 오기도 한다. 그녀는 시간을 정확히 지킨 적이 없다. 하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줄어들면 들수록, 나는 그만큼 더 시간의 여유를 갖는다. 나는 기다리는 것밖에 달리 할 일이 없다. 그녀가 늦게 오면 올수록 나는 그만큼 더 오래 그녀를 기다리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오늘 나는 일찍 잠에서 깨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번쯤은 침대를 떠나 그녀를 맞이하고 싶었다. 나는 멋진 바지를 입고 재킷을 걸치고 검정색 구두를 신고 창가 탁자에 가서 앉았다. 그녀를 맞이할 준비가 된 것이다.
벌써 며칠 전부터 날씨가 추워졌다. 지붕과 잔디에는 눈이 내렸고, 마을의 굴뚝들에서는 엷은 연기가 길게 피어오른다. 나는 막달레나의 사진이 들어 있는 작은 사진틀을 서랍에서 꺼낸다. 사진은 오래전에 내가 신문에서 오려낸 것으로 얼굴은 거의 알아보기 힘들다. 종이는 벌써 아주 누렇게 변색되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진으로, 나는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빠짐없이 그걸 들여다본다. 나는 손가락으로 액자의 가는 나무틀을 어루만진다. 내 손가락이 닿는 부위가 내게는 그녀의 피부이고 그녀의 머리이며 그녀 몸의 형체처럼 느껴진다.
다시 창밖을 내다보니 그녀가 밖에 서 있다. 그녀의 입김이 피어오르고,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짓을 한다. 그녀의 입이 움직인다. 나를 부르는 것이다. 밖으로 나와! 그녀가 다시 또렷하게 말한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서 이 말을 읽어낼 수 있다. 우리 산책하러 가. 나갈게, 하고 내가 대답한다. 기다려! 잔뜩 쉰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란다. 그건 늙은이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내 노쇠한 육신처럼 내게 낯설다. 나는 최대한 빨리 외투를 입고 목도리를 두른 다음 서둘러 계단을 내려간다. 문밖 돌계단에서 나는 넘어질 뻔한다. 내가 마침내 집밖으로 나오자 막달레나는 이미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나는 그녀를 따라 강 쪽으로 간다. 내 유년 시절의 마을로 건너주는 도보다리로 간다. 어린 시절에 오리들에게 모이를 주던 작은 연못에 도착한다. 내가 그 시절 자전거를 타다 심하게 넘어졌던 곳이다. 우리 어린 애들이 밤이면 만나 불놀이를 하던 곳이다. 늘 변함없는 이 지역, 나는 이 지역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막달레나는 벌써 다리 가까이 가 있다. 그녀가 얼마나 사뿐사뿐 걷는지 마치 눈 덮인 길 위를 둥실둥실 떠가는 것 같다. 나는 급히 나오는 바람에 지팡이를 잊었다. 그 때문에 빙판길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질까 봐, 그리고 막달레나를 시야에서 놓칠까 봐 불안해서 이리 뒤뚱 저리 뒤뚱거린다. 기다려! 나는 다시 외친다. 더 이상 빨리는 못 가.
영상이 떠오른다. 그녀가 산속에서 나를 앞질러 가던 영상과 시내에서 우리가 길을 찾던 영상, 우리가 팔짱을 끼고 스톡홀름을 거닐던 그날 밤 영상이. 그날 밤 내가 그녀에게 나와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녀가 나에게 키스를 해주던 영상이 떠오른다. 그녀는 내 쪽으로 돌아서서 미소를 짓는다. 빨리 와! 그녀가 부른다. 빨리 이리 오라니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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