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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의료화의 지역적 동력
큰 기업에서 승진을 하고 세 달간 매우 열심히 일한다. … 우울증 증세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반년 남짓 휴직을 한 후에 완전히 회복해서 직장으로 돌아온다. … 이것이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멜랑콜리 유형이다.
― Kasahara Yomishi in Kasahara, Yamashita and Hirose, Utsubyō우울병 1992: 29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는 일과 가족으로부터 해방된 느낌이 들었고 상태는 바로 나아졌다. 그러나 지금은 직장으로 복귀해 나에게 닥칠 일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 43세의 직장인. 회복 중이던 환자가 직장 상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다시 우울해짐.
우울증의 증가
일본에서 과로사karōshi라는 용어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열심히 일해서 스스로를 죽게 만드는 사례를 설명하기 위해 1980년대에 만들어졌다. 일본의 자살률이 급증했던 1990년대 후반에 비슷한 다른 용어들도 대중미디어에서 자주 등장했다. 과도한 업무로 인한 자살을 일컫는 과로 자살karō jisatsu, 이런 행위의 원인으로 보이는 과로 우울증karo utsubyō 같은 용어들이다. 2000년도에는 일본 대법원이 일본에서 가장 큰 광고회사 덴쓰Dentsū에게 직원의 사망에 대해 유래 없는 큰 액수의 보상금을 그 가족에게 지불하도록 판결을 내렸고, 과로사와 우울증에 관한 관심은 더 높아져만 갔다. 덴쓰는 직원의 자살이 본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행위라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만성적이며 과도한 업무로 인해 발생한 우울증의 결과라고 판단했다. 이 판결 이후에 자신의 우울증이 업무로 인한 것이라 주장하는 노동자들이 소송을 제기하였고, 이 중 많은 수가 승소로 이어졌다. 사회 전반적으로 급증하는 법적 분쟁과 우울증 환자수에 놀란 일본 정부는 새로운 정신건강 법안을 마련하고, 스트레스에 의한 정신 질환을 중요한 국가적 문제로 다루고 통제하기 위한 일련의 노동정책 변화를 시작했다.
이러한 결과는 종종 노동자 운동의 승리로 논해지기도 하지만, 나는 일본에서 자살과 우울증에 대한 광범위한 의료화의 시작이라는 측면에 집중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정신의학과 정신과 의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는데, 정신과 의사들은 법적 분쟁과 정신건강 기획에 참여하며, 거대한 사회적 압력하에서 무너지는 사람들이 당시 보통의 일본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질병인 우울증의 희생자일 수 있다고 일본인들을 설득했다. 1990년대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정신과 의사들은 사람들이 그들의 피로감과 무기력을 우울증이라는 개념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매우 효과적으로 유도해왔다. 또한 12년 동안 매년 3만 명 넘는 당시 발생하던 교통사고 사망자 수의 3~6배에 달하는 놀랄 정도로 높은 자살 수치를 목도하던 일본인에게 자살과 우울증의 연관성을 보여주었다. 2000년대 항우울제에 대한 제약업계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함께 촉진된 의료화의 과정은 우울증으로 진단받는 환자수의 급격한 증가로 이어졌다. 1999년에서 2008년까지 우울증 환자수는 2.4배 증가했다Yomiuri shimbun, 2010년 1월 6일. 이제 우울증은 회사에서 병가를 받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고, “매우 희귀한” 질병에서 최근의 일본 역사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질병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일부로서 정신의학은 곤경에 빠진 일본 사회를 구해줄 치료제를 제공해야 한다는 요청을 점점 더 많이 받고 있다.
이 책은 21세기로 넘어가는 일본에서 우울증이 갑자기 “국민병”이 되고 정신의학이 고통에 빠진 사회질서를 교정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등장하는 과정을 검토한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보다 일본인들이 최근까지도 정신의학이 일상생활에 개입하는 것을 거부해왔다는 점에서 놀라운 일이다. 이미 1880년대에 독일로부터 정신의학이 도입되고 제도적으로 구축되었지만, 그것은 심각한 중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일 뿐이었다. “비정상인”을 감금하며 낙인 찍는 역할로 인해 정신의학이 일상의 고통 속으로 확장되어 들어오는 것은 엄격히 제한되었다. 정신의학은 1960년대에 그 영향력이 커지긴 했으나, 반정신의학 운동antipsychiatry movement이 사회 관리를 위한 교활한 수단이라고 비판하면서 확장이 저지되었다. 1912년에 일본으로 도입된 정신요법Okonogi 1971도 “강한 의심의 눈길을” 받았다Lock 1980: 258, Ohnuki-Tienery 1984, Ozawa 1996, Doi 1990. 일부 정신과 의사들은 일상생활의 문제 영역에서 정신의학의 확산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일본이 “서구” 사회에서 보였던 일종의 소외 현상 없이 근대성을 획득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Machizawa 1997 참조. 또한 일본에서 우울증이 특히 “드문” 증상으로 여겨졌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울한 기분을 “병리화”하기보다는 “미화”함으로써 우울증 경험을 대체로 겪지 않은 것이라는 추론도 나왔다Kimura 1979.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러한 가정에 확신을 가지고 있던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Eli Lily & Co.가 시장성 없는 일본에 프로작Prozac의 홍보와 판매를 진행하지 않도록 설득하기까지 했다Applbaum 2006, Landers 2002. 이런 모든 상황들이 1990년대 후반 급격히 뒤집힌 것이다. 전례 없는 수의 일본인들이 우울증으로 고통받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정신의학적 치료를 갈구하게 되었다.
정신과 의사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과학적 진보의 신호로 간주하지만, 북미의 비평가들은 우울증의 증가가 새로운 항우울제의 출현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그들은 이것이 개인화된 생물학적 환원주의를 불어넣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경고는 “의료화 비판”에 근거한다. 즉, 사회적 기원 및 모순과 연관되는 삶의 문제를 개인의 생물학적 문제로 재정의하는 전지구적 흐름 속에서 우울증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북미의 비평가들은 더 나아가 우울증의 생물학화biologization가 자아에 대한 근원적 공격이며, 항우울제 처방을 통한 빠른 치유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의 반발을 잠재우고 그들 고통의 사회적, 정치적 근원에 대한 반성적 역량을 감소시킨다고 주장한다Illich 1975 참조. 일부 비평가들은 생물학적 환원이 더 나아가 생물학적 감시, 비정치화, 그리고 자율성의 감소를 초래한다고 말한다Rose 2007 참조. 또 다른 계열의 비평가들은 우울증의 의료화가 북미 사회에 “슬픔의 상실”Horwitz and Wakefield 2007을 가져왔으며 사람들이 관용, 인내, 고통과 슬픔의 역량을 잃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행복해지는 약”을 복용함으로써 정서적 삶이 변화되는 모습에 주목하는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의료화의 양태가 도덕적 불안을 조성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삶의 곤경에 대처하는 문화적 자원이 박탈되는 것이라고 말한다Elliott and Chambers 2004.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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